66-3 KFC의 고향, 켄터키 Corbin을 가다

December 25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켄터키의 작은 마을 Corbin에 있는 KFC의 고향 매장인 Sanders Cafe의 입구. KFC의 모든 이야기는 이곳에서 시작된 것이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강추위 속 찾은 Washington DC"에서 계속

(사진) 10일에 걸쳐 12개 주를 지나는 경로. 이동거리 총 3,200마일 = 5,120km에 달한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9박 10일로 떠나는 미국 동부 로드트립. 총 이동거리 5,100km, 12개 주를 지나는 일정이다. 이 여행을 통해 미국만의 이야기를 보고 올 수 있기를 바라며 먼 길을 나선다.


Day 3 : 극한의 한파, 위태로운 운전 그리고 절망에서 만난 기적 같은 행운

호들갑이 아니었던 미 동부의 '기록적 추위'

그제부터 시작된 '미 동부 기록적 한파'는 워싱턴 DC를 떠나는 오늘까지도 엄청나다. 하지만 오늘은 일정상 하루 종일 차 안에만 있는 '이동일'이니 추위와는 크게 상관없을 듯하다. 평소 세은이가 궁금해했던 KFC 할아버지의 집을 보러 가기 위해, 워싱턴 DC에서 켄터키 코빈(Corbin, KY)까지, 700마일 즉 1100km가 넘는 운전을 하는 날이다. 하루 만에, 서울에서 광주를 갔다 서울로 되돌아온 다음에 다시 한번 더 광주를 가는 거리랄까? 그야말로 미국에서만 할 수 있는 초장거리 운전. 이제는 해볼 만하다.

워싱턴 DC를 출발해 남쪽으로 달리니, 고등학교 세계지리 시간에 배웠던 애팔래치아 산맥이 나오고 그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 시작된다. 지도로는 분명 남쪽으로 가고 있지만 산맥 옆 이 길은 고도가 높은 탓에 여전히 춥게만 느껴진다.

엄청 먼 거리를 계속 직진으로 가다 보면 지루하긴 하지만 우리가 지나는 겨울 산속 시골 풍경은 때때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내가 '저기 산속에 뭐가 반짝거려'라고 해서 옆을 지날 때 유심히 보니, 나뭇가지에 내린 눈이 녹았다가 추운 날씨에 다시 얼면서 햇빛을 받아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것이었다. 작은 언덕의 숲 전체가 바람에 맞춰 반짝이며 흔들리는 모습은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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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포토맥 강에 비치는 워싱턴 모뉴먼트. (오른쪽) 내린 눈이 녹았다 다시 얼면서 도로변 나뭇가지엔 반짝이는 얼음 구슬이 달려있었다.
(사진) 남부식 웨지 감자튀김 'Jo-Jo'. 손가락 두세 개 정도 굵기의 큰 녀석이다.
미국 남부로 가는 길 : 버지니아를 지나 테네시, 그리고 켄터키까지 운전

점심 무렵, 식사도 하고 주유도 할 겸 고속도로를 나와서 버지니아 어느 마을(Roanoke, VA)에 들렀다. 주유소엔 차들이 생각보다 훨씬 길게 줄을 서 있어서 좀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내 차례가 되어 점원에게 물어보니 주유 장치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란다. 뉴욕이나 한국처럼 추위가 일상인 지역엔 동결 방지 장치가 기본으로 갖춰져 있지만, 여기는 그런 것까지는 필요하지 않았던 곳이었던 것 같다. 이번 추위가 정말 엄청난 건가 보다. 주유소 들어와서 30분 넘게 줄 서서 기다리고 내 차 주유하는데만 10분은 걸린 것 같다. 정말 기록적 추위에 엄청난 경험이다.


길은 멀고, 시간은 늘 빠듯하니 로드트립 이동일엔 식사는 주유소에서 치킨이나 핫도그, 감자튀김 같은 것으로 대충 해결하곤 했다. 내가 밖에서 차에 기름을 한세월 넣고 있는 동안 아내는 주유소 편의점에 들어가 먹을거리를 이것저것 사 가지고 왔다. ‘Jo-Jo’라는 이름의 감자튀김이 짭짤해서 먹을 만 한데 포장을 보니 ‘남부 스타일’이란다.

미국에서 흔히 ‘남부’라고 하면 단순히 지리적인 남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서부라는 표현은 미시시피강 서쪽이라는 지리적 기준이 있지만, 미국 남부라는 말은 대체로 남북전쟁 당시 '남부 연합'에 속해있던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버지니아는 남부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 웨스트 버지니아는 남부가 아니다. 서부에 있는 뉴멕시코나 애리조나는 지리상 미국의 남쪽에 있지만 남부가 아닌데, 뉴멕시코 바로 옆에 있는 텍사스의 동쪽 지역이 남부다. 미국 동부 제일 남쪽에 있는 플로리다는 북쪽 지역만 남부로 친다.

이 나라를 이해하려면 역사 공부가 정말 필요하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남부'를 제대로 여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지나는 버지니아, 켄터키, 테네시, 조지아, 캐롤라이나 같은 남부에 속한 주들을 지나게 되어있다.


버지니아에서 켄터키까지 이동 중에 경로상 남쪽에 있는 테네시를 잠시 스쳐 지나가게 되어, 주 경계에 있는 웰컴센터에 들렀다. 음악 산업으로 유명한 테네시답게 웰컴센터 입구에서부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 돌리 파튼(Dolly Parton, '9 to 5'와 'I will always love you'로 유명)이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아직 갈길이 많이 남아서 오래 있지는 못하고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곧바로 차에 올라야 했는데,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엘비스를 우리가 미국에 있는 동안 만나러 가는 날이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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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테네시의 고속도로 웰컴사인 (가운데) 멤피스에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집 팜플렛 (오른쪽) '9 to 5'로 유명한 테네시 출신의 가수 돌리 파튼

엘비스가 환영하던 테네시 웰컴센터를 나와 켄터키로 들어설 때는 고속도로를 벗어난 짧은 길로 가야 했다. 켄터키로 향하는 외곽 도로는 한적했지만 고속도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길이라 눈과 얼음이 쌓인 곳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길 상태가 상당히 위험해 보여서 조심조심 지나야 하는데 제설차가 지나간 흔적이라도 보게 되면 반가울 정도다. 하지만 막상 눈을 치우고 있는 제설차를 앞에서 만나게 되면 곤란할 때가 많았다. 제설차는 앞쪽으로는 눈을 치우는 동시에 꽁무니로는 콩알만 한 제설제를 길 위에 뿌리면서 지나가는데, 그 제설제를 직접 맞으면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이게 차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크게 들리고 특히 앞유리에 튀면 ‘깨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제설차를 보면 뒤따르기보다는 가능하면 빨리 추월하고 싶었다. 어두운 산속 빙판길에서 차가 망가진다면 그것만큼 최악의 상황도 없기 때문이다. 여기는 전화도, 인터넷도 잘 되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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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미국의 제설차량. 꼬리부분에서 염화칼슘을 뿌리면서 다닌다.(생성된 이미지) (오른쪽) 운전 주의를 알리는 터널 입구 (Cumberland Gap Tunnel)

긴 시간 외곽도로를 오는 동안, 빙판에 차가 미끌리기도 하고 다른 차의 사고를 목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운전한 끝내 마침내 목적지인 켄터키 코빈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시간은 저녁 7시인데 해는 이미 완전히 져서 밤이 되어있다. 오늘의 중요 미션이 잘 완수됐고 시간도 그리 늦은 편이 아니니 우리는 켄터키 할아버지 집에 가서 한껏 구경하고 원조 치킨을 먹으면 된다.


일단 나의 계획은 그러했다.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KFC가 시작된 곳 Sanders Cafe 그곳에서 만난 기적 같은 배려

켄터키의 작은 마을 코빈(Corbin, KY)은 세계적 규모의 프랜차이즈 식당이 탄생된 곳이다. Kentucky Fried Chicken의 약자인 KFC, 그리고 그 앞에 항상 함께 있는 흰 양복의 할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 작은 마을이 바로 KFC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치킨 장사를 시작했던 곳이고, 우리가 찾아온 이곳은 KFC의 창업자인 할랜드 샌더스(Harland Sanders)의 이름을 딴 그야말로 원조 매장, 샌더스 카페(Sanders Cafe)다. 이곳은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KFC의 역사를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으로도 운영되는 곳이다. 매장 앞에는 KFC 특유의 치킨 버킷 모양 간판이 높이 걸려 있어 멀리서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무사히 찾아왔다는 안도감과, 저녁을 편하게 식당에서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식사 시간 맞춰 도착했는데 넓은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다. "뭔가 이상한데..."

아내가 매장 앞으로 가서 문을 열어보니 잠겨 있다. 아내가 약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데 문에 적힌 영업시간을 읽어보니, 이 매장은 1년 내내 쉬지 않는데 오직 크리스마스 당일 하루만 쉰다고 되어있다. 아... 우리는 1년에 하루 쉬는 바로 그날 여기에 왔다. 완전히 망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세은이가 인상을 찌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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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샌더스 카페 입구 (가운데) KFC 특유의 치킨 버켓 모양 간판 멀리서도 잘 보인다. (오른쪽) KFC의 탄생지라는 안내판
(사진) 주차장에서 본 샌더스 카페. 손님이 전혀 없던 시간, 내부에서 일하던 직원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왜 왔지?'

지나는 이 아무도 없는 샌더스 카페 밖에서 우리가 연신 '망헸다'를 연발하고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갑자기 안에서 문이 열린다.

직원 한 명이 나와서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하소연을 했다.

“우리는 Home of KFC를 보러 하루 종일 운전해서 왔어요. 근데 오늘 영업 안 하는 게 맞나요?”

“네, 오늘은 문 닫는 날이에요. 근데 어디서 왔어요?”

“뉴욕에서 왔어요.” 갑자기 아내가 말을 끊고 끼어든다. “사실은 한국에서 왔어요. 여기 보려고 한국에서 왔다고요.”

잠시 우리 부부와 세은이를 보던 그는 씩 웃더니...
"우리는 내일 영업 준비 하러 나와 있어요. 지금 치킨은 안 팔지만 잠깐 들어와서 구경하고 갈래요?”

세상에 이런 행운이!! 모든 걸 포기한 듯했던 세은이 얼굴에도 금세 화색이 돈다. 굳이 문을 열고 나와서 우리를 안으로 들여보내 준 직원들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글로벌 프랜차이즈 KFC의 역사를 기록한 작은 박물관, Sanders Cafe

여행을 떠나기 전, 켄터키에 가서 KFC를 간다는 나의 계획에 Owen은 정말로 황당해했다. 어떤 미국인도 KFC 먹으려고 켄터키에 가지는 않을 거라고. (Owen의 말에 의하면 켄터키는 대학 야구 또는 경마를 보거나 버번위스키를 사러 가는 곳이다.)

나는 그런 Owen에게 "한국에서는 켄터키가 KFC고 KFC가 바로 켄터키예요."라고 말해주었는데 Owen은 나의 대답에 정말 크게 웃었다.

며칠 간의 운전 및 방금 전 입구에서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는 여기에 들어왔다. 직원을 따라 휴무일인 샌더스 카페에 들어가면서, 내 계획에 황당해하던 Owen과의 얘깃거리가 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KFC 원조 매장, Sanders Cafe는 ‘원조’라는 이름답게 일반 매장보다 꽤 넓다. 입구는 일부러 옛날 느낌 나게 꾸며 놓았는데 한쪽 벽에는 이곳이 역사적 장소임을 증명하는 켄터키 주의 공식 인증서가 걸려 있다. 안쪽 매장 부분은 아주 현대적이고 깔끔하다. 매장 벽에도 KFC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과 물건들이 전시돼 있고, 주방 옆에는 기념품을 파는 매대가 마련돼 있다. 화장실엔 남녀를 구분하는 픽토그램에는 KFC 할아버지의 상징인 넥타이가 그려져 있는데 상당히 귀엽고 재밌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구원(?) 해 준 직원들이 매장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어서 매장 홀에 오래 있지 않고 얼른 옆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주방 바로 옆에 있는 손님들 식사 공간에는 KFC 가 어떻게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는지 그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이 작은 치킨집이 어느 순간부터 ‘동네 맛집’이 아니라 ‘미국식 프랜차이즈 모델’의 상징이 되어 가는 과정을 따라가 볼 수 있다. KFC의 역사는 어찌 보면 단순한 패스트푸드 체인의 역사를 넘어서 미국 현대사의 축소판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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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샌더스 카페 내부 모습 (오른쪽) 화장실 픽토그램에 그려져 있는 샌더스의 넥타이
(사진) 샌더스 카페 내부의 모습. 손님들이 찾아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에도 전시물이 많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 켄터키 시골마을 도로변의 주유소이자 식당이자 모텔이었던 이곳은 '프라이드치킨이 유명한 집'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을 중심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수십 년이 지나 할아버지가 된 식당 주인 샌더스는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다른 식당에 치킨 요리법을 판매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KFC는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그 후 1960년대에 이르러 KFC는 전문 경영인에게 매각되고 기업형 프랜차이즈로 전환되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 것이 KFC의 간략한 역사다.


전시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어린 시절 생각도 난다.

한국에는 1984년 서울 종로에 처음 매장을 열었던 KFC. 내가 어릴 적엔 친구들 사이에서 KFC의 유무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서울에 살지 않던 나는 굳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서 켄터키의 맛을 보고 왔던 기억이 있다. 이곳에 전시된 각종 포스터와 사진들 크고 작은 기념품들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반가웠다. 모든 것이 풍요로워진 지금은 KFC가 그때만큼 소중한 식당은 아니게 되었지만 이제는 세은이가 좋아해 주니 추억은 이어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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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KFC 할아버지의 여러 모습 (오른쪽) KFC의 해외 진출 연혁. 한국엔 1984년에 매장을 연 것으로 되어있다. 한국 첫 매장은 2022년에 문을 닫았다.
(사진) 이미 매각된 원조매장 샌더스 카페를 '대형 프랜차이즈 KFC'가 되찾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할랜드 샌더스와 그 당시 마케팅 담당 존 닐의 사진

사실 글로벌 대기업이 된 KFC의 본사는 이곳 코빈이 아니고 켄터키 주 대도시인 루이빌(Louisville, KY)에 있다. 샌더스 역시 말년을 루이빌에서 보내며 생을 마쳤으니 이곳 코빈은 그의 인생의 젊은 시기를 보낸 곳 정도의 의미가 있는 곳으로만 남게 될 뻔했던 사연이 있다.

국도를 따라 샌더스 카페에서 쉬어가던 차량들은 고속도로인 I-75가 개통된 이후에는 더 이상 코빈에 들러야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다. 교통의 흐름이 바뀌어 매장 운영이 어려워지자 프랜차이즈 사업에 집중하던 할아버지 샌더스는 결국 이 작은 식당을 매각하기에 이른다. 시간이 흘러 KFC가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는데 규모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샌더스는 사업 자체를 매각하여 KFC는 전문 경영진의 회사로 전환된다.

그 시점에서 KFC 본사는 샌더스 카페가 브랜드의 시작을 설명하는 데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이 시골 식당을 기업 차원에서 재인수하였다고 한다. 그 후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대형 프랜차이즈의 ‘원조 매장’이자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매장에 얽힌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조용한 소도시가 유명 관광지가 된 것까지는 아닌 듯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라 찾아오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더러 있을 뿐, 조용한 곳이다.


고아였던 할란드 샌더스, 코로넬 센더스에서 KFC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이곳에서는 KFC의 시작뿐 아니라 '할랜드 샌더스'라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볼 수도 있다.

샌더스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학교는 커녕,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했다고 한다. 도로변 주유소에 세를 들어 작은 식당을 꾸려가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상당히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젊은 시절, 주유소 운영을 둘러싼 다툼 끝에 총격전까지 겪고 살아남았다는 일화(상대는 사망)는, 아무리 20세기 초 미국이라고 해도 그를 둘러싼 환경이 매우 거칠었음에 분명하다.

국도변 주유소 한편에서 시작한 그의 식당은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고 한다. 만족스러운 맛뿐만 아니라 조리 시간이 빨랐기 때문에, 손님들, 특히 시간 없는 트럭 기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던 모양이다. 그렇게 샌더스는 어느새 주변 지역에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 되고 그 결과로 켄터키 주 정부로부터 ‘코로넬(Colonel)’이라는 명예 직위를 받게 된다. 굳이 번역하자면 군대의 대령을 뜻하는 말이지만, 켄터키 주의 명예 코로넬은 실제 군대와는 무관한, 지역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뿌려지는 일종의 공로상 같은 것이다. 이후 사람들은 그를 자연스럽게 ‘코로넬 샌더스’라고 불렀다. 우리에게도 그의 본명인 할랜드 샌더스보다는 코로넬 샌더스가 익숙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샌더스 대령님' 정도 느낌이다.

조실부모(早失父母)에 사고무탁(四顧無託)하던 샌더스에게 명예가 생기자, 그는 옷차림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하얀 정장과 나비넥타이의 이미지는 이 무렵부터 자리 잡았다고 한다. 그렇게 노력하여 그는 더 이상 주유소에 세 들어 식당을 하는 처지를 벗어나, 아예 주유소를 인수하며 ‘자기 가게’를 갖게 되고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도 나름의 성취를 이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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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930년대 시골 식당으로 운영되던 당시의 주방과 모텔, 주유기 등을 재현해 두었다. (왼쪽) 주방 (가운데) 모텔 (오른쪽) 주유기

그러나 세월이 지나 주변에 고속도로가 새로 개통되면서, 차들은 더 이상 코빈에 멈추지 않고, 손님은 줄고, 식당 운영은 점점 버거워졌다. 이미 60대에 접어든 샌더스는 모아둔 돈도 없었고, 체력도 예전 같지 않았으며, 자식들에게 기대어 살 처지도 아니었다. 그때 그에게 남아있던 건 평생 만들어 온 치킨 레시피뿐이었던 것 같다. 소스의 배합 그리고 압력솥을 통한 빠른 조리 방식.

그는 이 레시피라도 팔기 위해 차에 몸을 싣고 길을 나섰다. 이름난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치킨을 만들어 보이고, 그 방식으로 메뉴를 만들어 팔게 해 주고 자신은 수수료를 받는 계약을 제안했다. 계약을 따내기 위한 과정은 외면과 무시를 감내해야 하는 엄청 먼 여정이었고, 샌더스 본인의 표현으로는 ‘천 번의 실패’였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훗날 인터뷰에서 "천 번까지는 아니고 수백 번?"이라고 했다 한다.)

긴 여행의 끝에 마침내 그는 집에서 무려 1,600마일, 약 2,600킬로미터나 떨어진 서쪽,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 이르러서야 첫 번째 프랜차이즈 계약에 성공하게 된다. 지금 도로 사정에서도 4일은 꼬박 운전해야 닿을 수 있는 곳이니 가는 길에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을지 짐작이 된다.

(어쩌면 켄터키 문화에 이미 익숙했던 주변 지역에서는 ‘켄터키 스타일 치킨’이 새로울 게 없어서, 켄터키를 잘 알지 못했던 유타에서야 비로소 KFC가 적합한 시장이 된 것은 아닐까?)


예순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길에 도전하고, 거듭된 실패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던 한 노인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자신이 가진 한 가지를 끝까지 밀어붙인 한 남자의 역사적 기록 같다. 40대 중반의 나에게는 그가 이룬 결과와 성공 자체보다는 그의 집념이 더 오래 기억 남는다.

(사진) "성공한 사업가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성공을 이룬 Harland Snaders의 동상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코빈에서, 우연히 만난 친절덕에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KFC 할아버지의 이야기. 비록 애초 계획했던 프라이드치킨과 KFC 기념품을 사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숙소까지 가야 할 길이 아직 남아 있어서 너무 늦기 전에 샌더스 카페를 나와야 했다. 우리에게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 준 직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사진) KFC 할아버지와 사진 한 컷


"Mammoth Cave, KY & Broad Way, Nashville, TN"로 계속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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