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 플로리다 서부 해안 탬파와 달리 미술관

December 29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Salvador Dali의 1940년 작 'Daddy Longlegs of the Evening – Hope!'를 관람하고 있는 세은이. @The Dali Museum, St. Peterburg, FL)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Martin Luther King Jr. 의 고향, Atlanta, GA"에서 계속


(사진) 10일에 걸쳐 12개 주를 지나는 경로. 이동거리 총 3,200마일 = 5,120km에 달한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9박 10일로 떠나는 미국 동부 로드트립. 총 이동거리 5,100km, 12개 주를 지나는 일정이다. 이 여행을 통해 미국만의 이야기를 보고 올 수 있기를 바라며 먼 길을 나선다.


첫 번째 플로리다 여행 : Orlando, FL

두 번째 플로리다 여행 : Miami & Key West, FL


Day 7 : 괴짜 미술가 Dali & 플로리다 서부 해안의 하얀 모래

Salvador Dali Museum @St. Petersburg

올 겨울 또다시 오게 된 여름나라 플로리다, 이번 여행에는 앞선 두 번과는 달리 서쪽 해안가를 일정에 넣었다. 세은이 학교 선생님이 이 근처가 자기 고향이라며 우리에게 한번 꼭 가보라고 추천했던 곳이기도 하다. 현지인이 권하는 것은 가급적 해보려 한다. 그래야 그들과 얘기할 거리가 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제 플로리다 서쪽 해안 가장 큰 도시인 탬파(Tampa, FL)에 밤에 도착해서 하루 묵었다. 호텔에서 잘 자고 나서 오전 첫 일정으로, 탬파 베이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다리를 서쪽으로 건너서 바로 옆 동네, 세인트 피터스버그(St. Petersburg, 짐작할 수 있듯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래한 이름이다.)로 향했다. 현대 미술의 이단아라고 불리는 Salvador Dali(이하 'Dali')를 만나러 가는 일정으로 순전히 아내의 취향을 따라 결정된 것이다. 우리는 Dali 미술관(Salvador Dali Museum)으로 간다.

(왼쪽) Dali 미술관 외관. Dali 사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오른쪽) 미술관 내부는 독특한 모양의 나선형 계단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되어있다.
(왼쪽) 스페인 미술가 Dali는 예술의 상업적 사용에 굉장히 적극적인 사람이었다. (오른쪽) Dali가 디자인한 스페인 사탕 브랜드 츄파춥스의 로고

고등학교 미술 교과서 뒷페이지쯤에 가서 짧게 배우는 스페인 현대 미술가 Dali. 혹여나 그의 이름이 낯설게 느껴진다고 해도, 그가 젊은 시절 그렸던 시계가 녹아 흘러내리는 초현실적 그림인 '기억의 지속(The Persistence of Memory)'은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작품일 것이다.

Dali는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범접하기 어려운 상상력으로 회화뿐만 아니라 조형, 영화, 디자인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쳤고, 예술의 상업적 사용에 대해서도 상당히 긍정적인 편이었다. 이런 Dali의 성향이 훗날 현대 미술에 이르러 팝아트로 이어지는 물꼬를 터주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Dali는 작품만이 아니고 자기 자신 역시 굉장히 독특한 이미지로 스스로 브랜딩 했다. 과장된 언행이나 패션 스타일로 세간의 관심을 끌곤 했는데 그중에도 뾰족하게 추켜올린 콧수염은 오늘날까지도 Dali를 상징하는 중요 아이템이다.

그는 상업적으로도 업적을 남겼는데, 미국에선 ‘롤리팝’, 한국에선 막대사탕이라 부르는 스페인 브랜드 추파춥스(Chupa Chups)의 로고 디자인을 Dali가 했다는 것도 유명한 일화다. 카페에서 츄파춥스 회장과 얘기를 나누다가 그 자라에서 신문지 위에 쓱쓱 그려 완성했다고 한다. 오늘날까지 원안을 거의 바꾸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확실히 그는 성공한 마케터임에 틀림이 없다.

Dali는 제2차 세계대전을 피해 스페인을 떠나 한동안 미국에 머물렀지만 여기 플로리다 세인트피터버그에 정착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아무 연고 없는 여기에 그의 미술관이 있는 이유는, Dali의 작품을 대거 수집한 소장가가 이곳을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약간 허무한 이유이긴 하지만 Dali 본인이 이 미술관에 만족했다 하니 문제 될 건 없겠다.


요트가 정박한 작은 항구 옆에 위치한 Dali 미술관은 외벽이 거대한 유리 조형물로 장식되어 있어서 멀리서 봐도 굉장히 독특하다. 그전에 갔었던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시카고 미술관은 거대한 규모로 압도하는 느낌이지만 Dali 미술관은 아기자기한 카페 같은 느낌이 든다.

(왼쪽) Dali 미술관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그림 정보를 AR로 확인 할 수 있다. (오른쪽) Dali의 그림 'Girl with Curls (1926)'를 흉내내는 세은이
(왼쪽) Dali 여동생의 초상화 (가운데) 각종 사물을 녹아내리는 형태로 표현하는 것은 Dali만의 특징이다. (오른쪽) 가까이에서 보면 보통 인물화지만 멀리서보면 다르게 보인다

미술관은 Dali의 이미지만큼이나 발랄하고 명랑한 기이함이 있다. 세은이는 우리가 그동안 갔던 고전작품 위주의 대형 미술관보다는 이곳의 쾌활한 작품이 맘에 드는지 굉장히 신나 한다. 작품의 포즈(Girl with Curls, 1926)를 따라 해보기도 하고 나에게 이것저것 질문도 한다.

"아빠, 이건 자기 여동생을 그린거래. 근데 동생은 되게 싫어했을 것 같아. (Portrait of My Sister, 1923)"

"Dali네 가족도 '흔한 남매'같이 투닥대며 싸우는 사이였나 보다."

몇몇 그림(The Ecumenical Council, 1960)에서는 미술관 앱의 AR 기능을 통해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애니메이션이 더해진 설명을 볼 수 있었는데, 세은이가 좋아해서 나중엔 AR 표시가 있는 그림들만 찾아다니기도 했다.


Dali를 유명하게 만든 기억의 지속(Persistence of Memory, 1931)은 이미 그 당시 MoMA(Museum of Morden Art, NYC)로 판매되었기 때문에 여기선 볼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유사한 느낌의 그림들(Daddy Longlegs of the Evening – Hope!, 1940)을 감상할 수 있다.

Dali의 그림 중엔 착시를 이용해서 중의적인 의미를 보여주는 실험적인 작품도 많은데, 특히 아내 Gala의 나체 뒷모습과 애브라함 링컨의 이미지를 섞어 놓은 대형 인물화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Gala Contemplating the Mediterranean Sea Which at Twenty Meters Becomes the Portrait of Abraham Lincoln, 1976)

(왼쪽) Dali를 대표하는 녹아내리는 시계로 장식된 야외 벤치 (오른쪽) Dali의 수염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

미술관 카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연결된 뒷마당으로 바깥 산책을 했다. 쭉 뻗은 야자수와 요트 정박장 그리고 Dali와 관련된 각종 조형물들이 현실적이지 않은 기분이 든다. 미술관 규모에 비해서 상당히 퀄리티 높은 기념품점에서 아내가 시간을 오래 쓰는 바람에 세은이가 토라져서 좀 애먹긴 했다. 하지만 '기억의 지속'에 나오는 $20짜리 흘러내리는 탁상시계를 자기가 갖겠다고 하면서 해결됐다.


새하얀 모래의 Clearwater Beach - 플로리다 서쪽 해안 일몰

우리는 Dali 미술관을 나와 세인트 피터스버그 시내를 가로질러 서쪽 해안에 다리로 연결된 섬에 있는 클리어워터 비치를 찾았다. 아주 전형적인 플로리다 서해안 해변 느낌이다. 꽤나 유명한 휴양지라 그런지 주차할 곳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의 유명 해변가라면 반드시 있는 해변거리 상점을 지나, 좌우로 끝이 보이지 않는 경사 없이 평평한 해변에 들어섰다. 설탕처럼 완전히 하얀 모래의 백사장엔 '겨울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다.

반도 지형인 플로리다에서는 대서양을 맞댄 동쪽 해안과 멕시코 만에 접한 서쪽 해안(Tampa, Sarsota 등) 양쪽 모두 유명한 해변이 많다. 깊이가 깊고 파도가 센 동쪽(Miami, Palm Beach 등)에 비해 서쪽 해변(Tampa, Sarsota 등)은 얕고 잔잔하며 흰모래로 된 모래사장이 특징이다.

(사진) 플로리다 서쪽 해안은 하얀 모래의 해변이 많다. 설탕같이 곱고 하얀 모래가 가득했던 Clearwater Beach
(사진) 얕고 넓은 해변엔 파도가 거의 없다. 젊은 친구들은 젖은 모래사장에서 Skim board를 탄다. 바다를 가까이 볼 수 있는 Pier 60이 보인다.

올해 2월만 해도 바다만 보이면 물에 뛰어들던 세은이가 그새 컸는지, 여기까지 와서도 물놀이 말고 그냥 바다 구경 하고 싶다고 한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하얀 모래인 백사장에 앉아서, 따사로운 12월 햇볕아래 잔잔한 바다와 뛰노는 아이들, 고등학생들이 웃통 벗고 스킴보드(Skim Board, 파도가 없는 해변에서 타는 작은 서핑보드) 타는 것 등을 보고 있었다. 북적대고 짠 내음 가득한 해수욕장 풍경에 익숙한 우리에겐 이곳마저 마치 Dali의 그림처럼 초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시간 가는 것도 잊은 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우리가 오후에 클리어워터 비치에 온 이유는 사실 석양을 보기 위해서다. 동쪽 해변에서 일출을 본 적이 있으니 서쪽 해변에서는 일몰을 봐야지. 미국의 유명한 해변이라면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나무 부두, 피어(Pier)가 있기 마련이다. 역시나 클리어워터 비치에도 피어들이 있고 그중에도 피어 60이 가장 번화하다. 주변엔 기념품, 간단한 먹거리 등 즐길거리가 많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해가 지기 전에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피어를 따라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좋은 자리를 먼저 잡았다. 다행히 오늘 구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사진) 플로리다 서쪽 바다로 해가 지는 모습
(왼쪽) 아내가 바다 속으로 사라지려는 태양을 꼭 붙잡고 있다. 당연히도 부질없었다. (오른쪽) 우리가 거닐었던 Pier 60 입구

길게만 느껴지던 우리의 미국생활도 이제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아마도 이 여행이 끝나면 시간의 내리막이 더 가파르게 느껴질 것만 같다. 올해 초 미국의 남쪽 끝 키 웨스트(Keywest, FL)에서 봤던 일몰이 생각났다. 그때는 앞날에 대한 희망과 두려움을 느꼈지만, 시간이 많이 지는 지금은 아등바등 살아남아 이만큼이나 정착을 이뤘다. 하지만 곧 모든 걸 남겨두고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저 해가 지는 것처럼 우리의 시간도 흘러가서 언젠가 이 순간도 잊히겠네." 아내도 못내 아쉬운지 바닷속으로 사라지려는 해를 붙잡더니(?) 사진을 찍어달란다. 부질없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웃으면서 이 순간의 기록을 남겼다.


Day 8 : '중간이 없는' 테마파크에서의 하루

어제는 아내의 최향대로 미술관을 다녀왔으니 오늘은 하루 종일 세은이 취향을 맞춰주기로 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테마파크인 부쉬 가든(Busch Garden)에서 놀이기구를 타기로 했다. 원 없이 놀아보자는 생각에 개장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원하는 만큼 있어도 된다는 말에 세은이는 일찍 나오느라 피곤할 텐데도 표정이 밝다.

(왼쪽) Busch Garden 최대 인기 롤러 코스터 Iron Gwanzi. (오른쪽)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서 수직 낙하하고 있다. 최대 스릴 구간이다
(사진) 놀이기구 가는 길에 각종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왼쪽부터 악어, 따오기, 알비노 왈라비

탬파 부쉬가든은 보통의 캐릭터 중심 테마파크와는 조금 차이가 있고 동물원과 놀이기구가 공존하는 공간이 많은 편이다. 놀이 기구들 타러 이동하면서 동물구역을 자연스럽게 지나게 되어 있어서 사람들의 발걸음을 자연스럽게 붙잡아 둔다. 산책 중에 우연히 마주치는 느낌으로 작은 새나 초식 동물들을 볼 수 있는데, 동물들이 울타리 안에만 있지 않고 휴식 공간까지 나와 있기도 해서 세은이가 무척 좋아했다.

미국의 테마파크들은 재미의 수준을 극단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 종종 있다. 한국처럼 모두를 배려해 애매하게 타협하는 방식은 없다고나 할까? 감당할 수 있다면 타고, 그 이후는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라는 전형적인 미국식 태도. 그런 면에서 부쉬가든이 자랑하는 수십 미터 상공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롤러코스터인 ‘아이언 관지’는 미국스타일의 '전형적 극단'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내는 애초에 탑승을 포기했고, 나와 세은이는 망설임 없이 줄에 섰다. 그리고 기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짜릿한 시간을 보내고 내려왔다.


어느새 해가 서서히 기울기 시작하자 세은이가 먼저 그만 가자고 한다. 오늘 묵을 숙소까지는 여기서 두 시간 넘게 이동해야 했기에, 나로서도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밤이 되지도 않은 지금, 어쩌면 세은이는 엄마 아빠 생각해서 일부러 먼저 말을 꺼낸 것이지 않을까?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자라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앞서 가는 세은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그렇게 느꼈다.

(사진) 오늘 저녁 이동 경로

우리는 서쪽 해안의 탬파를 떠나 차를 몰았다. 1년 전, 꼭 한 번은 다시 와서 일출을 보자고 약속했던 그곳. 이번 여행 마지막 목적지는 동쪽 해안의 데이토나 비치다.


"1년 지나 다시 찾은 Daytona Beach, FL "로 계속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