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 September 2022
(커버 이미지 : 뉴욕은 한국과 기후가 크게 다르지 않아서 한국 작물을 기르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깻잎 10 뿌리 정도 기르면 우리 가족 셋이 여름, 가을 동안 먹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깻잎은 들깨의 잎으로 영어로는 Perilla Leaf라고 한다. '깨'를 말하는 Sesami는 참깨를 말하며 잎을 먹지 않는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미국 생활 정보 & 식당 Tip 문화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미국에서 살던 이야기를 쓰는 중에 생각나는 작은 생활 팁들을 메모합니다. 틈틈이 작성하고 몇 개씩 묶어서 공유하려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는 것이라 순서나 흐름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주로 뉴욕주 알바니(Albany) 인근에서 겪었던 일들입니다. 구체적인 정보는 본인의 지역에 맞게 다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필요하신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운전 정보에 대해 : 미국에서 운전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운전면허 취득기
뉴스 및 정보 습득 관련해서는 : 미국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
미국엔 파는 물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마트가 있다. 그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식료품을 파는 Grocery일 것이다. 큰 규모의 Grocery라면 보통 식료품만을 팔고 있지는 않고, 한국의 이마트나 홈플러스처럼 각종 생활 용품도 파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Grocery라고 해서 모두 같은 것은 아닌데, 한국에서는 마트 별로 물건의 종류, 가격과 분위기가 거의 비슷하지만 미국에선 마트에 따라 물건이 천차만별이고 심지어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의 계층이 아예 다르다. 당연히 그 분위기도 확연히 차이가 있다. 사는 지역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실제로 정해진 등급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내 경험 기준으로 나름대로 등급'을 매겨보려 한다.
1등급 : 가입비를 내는 회원제 마트 - Sam's Club, BJ's, Costco 등
연회비를 내야 물건을 구입할 수 있는 회원제 마트는 확실히 안전 및 품질과 서비스에서 충분히 검증된 곳이다. 상품을 결제할 때 회원카드를 제시해야 하고 가입비는 1년에 $50 정도이다. 이 작은 진입장벽이 있어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만 오는 곳이다. 직원들도 친절하고 주자창에서도 특별한 일이 없다. 회원만 할인이 되는 주유소를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마트의 등급이 육류/채소/생선 같은 냉장 식자재의 종류와 품질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집 주변에 있는 Sam's Club에서는 횟감 연어(Sashimi Grade)를 한국보다 30%나 싸게 팔고 있었다. 대륙 그 자체인 미국에서 바다 생선을 냉장으로, 심지어 회로 먹을 수 있는 지역은 별로 없기 때문에 이것은 엄청난 상품이다. 미국 내륙에도 초밥집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냉동 생선을 해동해서 쓰는 것이라 푸석한 식감이 있다. 하지만 Sam's Club에서 파는 횟감 연어는 해동제품이 아니고 진짜 냉장이었다. 동네 마트들 중에 횟감 생선을 파는 곳은 이곳이 유일했다.
Costco 한국 멤버십을 그대로 미국에서 쓸 수 있는데 한국 가입비가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가능하면 한국에서 가입하는 것이 좋다. 우리 집에서 너무 멀어서 Costco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2등급 : 조금은 비싸지만 좋은 품질 - Trader's Joe, Whole Food Market, Hannaford, Market32 등
회원제는 아니고 누구나 와서 상품을 살 수 있는 곳들이다. 1등급에 비해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한데 회원제가 아니니 이해할 만한 수준이다. 채소와 육류의 품질이 꽤 좋은 편이다. 냉장 생선을 다루기는 하지만 횟감까지는 없고 냉동 생선이 주력인 경우가 많다. 보통 음식을 조리해서 파는 Deli 코너가 있어서 무게를 달아서 판다. 몇몇 물품만 제외하면 1등급 마트들과 크게 다른 점이 없고, 여기까지도 중산층들이 주로 오는 마트다. 보통은 필요한 물건을 마트 한 군데에서 모두 구할 수가 없기 때문에 1등급, 2등급 마트를 섞어서 다니게 된다. 특히 로컬 맥주는 마트 별로 유통되는 맛과 종류가 천차만별이어서 원하는 맛을 찾으려면 여러 곳을 갈 수밖에 없다.
마트 안에 약국이 있는 경우가 많고 복권과 신문도 판다. 내 생각엔 2등급까지가 한국의 마트와 비슷한 수준일 것 같다.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인지 미국 마트에서도 한국 식품을 구할 수 있는 것이 더러 있었다. 한국 만두나 라면을 파는 동네 마트를 발견하면 메모해서 냉장고에 붙여두었다.
1st Tier - Trader Joe's, Whole Food Market
2nd Tier - Hannaford, Market32, Price Chopper, Wegman's, Safeway, Publix, Albertson
3rd Tier - Shop Rite, Aldi, Target(식료품 코너)
3등급 : 미국의 서민마트 - Walmart
Walmart는 다른 마트들과 달리 미국 전역에 분포해 있고 그야말로 서민의 마트다. 월마트는 굉장히 보편적인 마트여서 '이런 건 어디서 팔지?'라거나 '이런 것도 마트에서 파나?' 하는 애매한 것들은 정확히 내가 찾던 것이 아니더라도 비슷한 게 반드시 있었다. 약국, 사진관, 전자제품, 가전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팔고 있다. 보편적인 곳이니 만큼 가격은 조금 저렴한 편인데 가격이 싼 만큼 2등급 마트들보다 낮은 품질이라고 봐야 한다. 채소가 신선한 편이긴 하지만 2등급 마트의 과일이나 채소를 맛본 사람이라면 굳이 월마트에서 사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문턱이 낮은 곳이다 보니 약간 정돈이 덜 된 느낌도 들고 직원들도 친절하지는 않고(위협적인 게 아니고 그냥 친절이 없는 사람들) 특유의 음침한 느낌이 있다. 월마트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냥 보통 사람들인데 일부 특이한 행색의 사람들을 볼 때도 있었다. 사람들과 마찰을 겪은 적은 없지만 확실히 1,2등급 마트에서는 보기 힘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해가 지고 난 월마트 주차장은 확실히 음침한 느낌이 든다. 미국인들에게도 이런 월마트의 분위기는 놀림거리가 되는지 'People of Walmart'라는 웹사이트가 있을 정도다.
미국에 처음 정착할 때는 자주 찾았지만 적응이 될수록 가지 않게 되는 곳이다. 참고로 Albany에 있는 Crossgates Mall 근처에 있는 Walmart는 미국 내 최대 크기 매장인데도 분위기는 여타 매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4등급 : 웬만해선 들어가 볼 마음이 들지 않는 곳 - 'Food' Mart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허름해 보이는 동네엔 작은 구멍가게 크기의 'Food Mart'라는 간판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이건 가게는 보통 도시 변두리의 밀집된 주택가에 많고 창문과 문엔 방범창이 둘러져 있다. 식료품을 파는 곳은 Grocery이고 간이식당은 Cafe라고 하는데 Food Mart라는 직설적인 작명이 굉장한 이질감을 준다. '식품 가게', 어느 누구도 이곳에 신선한 과일, 채소 또는 친절한 직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미국에서 Food Mart(또는 Shop, Store)라 하면 저소득층 대상으로 통조림이나 가공 식품 중심의 식재료를 파는 곳인데 최근 한국에서도 관심을 갖는 사회 현상인 'Food Desert(신선 식품이 유통되지 않는 도시 빈민 지역)'를 대표하는 상점이다. 낙후된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점이라서 '맨발 출입금지'라던가 '옷을 입은 사람에게만 판매합니다.'같은 쉽게 납득이 안 되는 경고문이 입구에 붙어있는 경우도 많았다.
Food Mart가 있는 동네에 왔다면 가능하면 차에서 내리지 말고 그대로 지나서 최소한 월마트라도 찾아가길 권한다.
미국 동북부는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고 눈도 비도 견딜 수 있는 만큼 오는 편이다. 한국보다 다소 건조한 느낌이 있지만 이 정도면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기후가 적당하고 집에 마당도 있으니 채소를 길러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사실 동네사람들도 소규모로 채소를 길러 먹곤 한다. 옆집 Tim의 집에도 뒷마당에 울타리를 쳐 놓은 작은 텃밭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너무 대놓고 앞마당에서 밭농사를 지으면 동네 HOA에서 못하게 한다고 듣기는 했다.
몇 달 전에, 한국에 돌아가는 주재원 한 분이 작은 요거트 컵에 담긴 들깨 싹을 작별 선물로 나눠 준 일이 있었다. 그분도 어느 누군가에게서 물려받은 것인데, 작년에 들깨 씨앗이 열리도록 기르고 그 씨를 잘 받아다 겨울 지나 봄이 되어 조심조심 키운 것이다. 나는 클로버 잎 크기 정도로 자라난 아주 작은 어린싹 10 뿌리를 선물로 받았다. (우리가 쌈으로 많이 먹는 '깻잎'은 바로 이 들깨의 잎이다. 영어로는 'Perilla Leaf'. 흔히 '깨'라고 하면 떠오르는 'Sesami'는 참깨를 말하는 것인데 참깨는 잎을 먹지 않는다. 사실 참깨와 들깨는 아예 종이 다른 식물인데 한국 이름이 유사한 것뿐이다.)
선물 받은 아기 깻잎은 쑥쑥 자라서 특별히 뭘 하지도 않았는데도 금세 손가락 길이만큼 자라서 옮겨 심어야 할 때가 됐다. HOA나 집주인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동물들이 뜯어먹을까 봐 마당에 직접 심지는 않고 버려진 큰 화분이 있길래 마트(Lowe's & Home Depot)에서 흙을 사다 채워 넣고 띄엄띄엄 심었다.
이틀에 한 번씩 아침마다 물 주기 외에 특별히 해준 것이 없었는데도 여름이 되자 깻잎은 손바닥 크기만큼 커지기 시작했다. 1주일에 한번 정도 수확을 했는데 한 녀석 당 두장씩만 뜯어도 20장이라 우리 세 식구가 고기 구워 먹기엔 충분했다. 한국에서 먹던 채소는 대부분 미국 마트에서 대체품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오로지 이 깻잎만큼은 한인마트까지 가야만 살 수 있는 채소다. 비싸기도 하고 구하려면 멀리까지 가야 했는데 이렇게 직접 생산해서 먹으니 소소하게 도움이 되고 깻잎 크는 걸 보는 재미도 있다.
자신감이 생긴 우리는 유튜브를 보고 몇몇 작물을 추가로 시도해 보았는데, 파를 제외하고는 큰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파 역시 쉽게 기를 수 있는 작물이지만 미국 마트에 넘치도록 있어서 큰 이득이 없었고, 특히 세은이가 좋아해서 길렀던 방울토마토는 새들의 먹잇감이 되어 우리가 먹을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깻잎과 파는 향이 나는 채소여서 동물들이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마트나 파머스 마켓에 가면 씨앗이나 어린 채소의 싹을 파는 코너가 따로 있다. 미국에선 대부분 집에 마당이 있으니 다들 이렇게 농사지어 먹고사는 것 같다. 우리는 이 정도 작은 수확물에도 감지덕지하고 있었지만, 이민 와서 5년째 살고 계신 세은이의 피아노 과외 선생님은 간단한 농사뿐만이 아니라 닭을 키워서 계란을 생산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얘기를 더 들어보면 고충도 만만치 않으신가 보다. 닭을 키우면 하늘에 매(Hawk)가 보일 때 이만저만 긴장되는 게 아니란다. 마당 울타리를 여우가 뚫고 들어와 닭을 물어간 적도 있어서 닭장을 아주 제대로 지어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물이 얼기 때문에 닭들이 목말라 죽을까 봐 겨울엔 여행으로 집을 비우기가 굉장히 어렵다고... 역시 거저 얻는 건 없는 법이다.
우리는 매주 일요일마다 세은이 얼굴만큼 커진 깻잎을 따며 소소한 행복이 느낀다.
미국에선 재판을 할 때 일반 시민을 '배심원(Juror, Jury는 12명의 Juror 세트를 말함)'으로 법정에 참석토록 하여 판결의 일부를 담당하게 한다. 배심원은 미국 재판에서 유무죄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자리다. 하지만 미국인에게 이 배심원이라는 것은 사실 한국의 예비군과 아주아주 비슷한 성격을 갖는 것 같다. 법원 출석은 미국 국민의 의무이기 배심원으로 선정이 되면 무조건 가야 한다. 그래서 학교 또는 회사에서 이것으로 인한 결석/결근 또는 기타 불이익을 주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아주 적은 금액의 수고비를 받는 것까지 우리의 예비군과 너무나 비슷하다. 나라에 봉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자부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좀 그렇지 않다. 재판 보안 목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배심원의 몇 배수를 선정, 출석시킨 다음에 재판 직전에 실제 참석자를 확정하는 방식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애써서 시간 빼고 회사 일도 미루고 왔는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허탕치고 돌아오는 사람이 대다수이니, 그래서 미국 사람들이 귀찮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라고 한다. 아... 이 역시 한국 예비군과 똑같아.
그런데 한국 시민권자인 나에게 배심원 설문지가 우편으로 도착했다. 출석 요구서는 아니고 자격이 있는 건지 아닌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미국엔 한국 같은 주민등록이라는 것이 없으니 내가 여기 살고 있는 건 알아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리 카운티 정부라고 해도 쉽게 알 수가 없었을 거다. 설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당신은 DMV, SSA, 납세자 명단 등에서 무작위로 선정된 배심원 대상자입니다. 이것은 출석 요구서가 아니며 배심원으로 당장 봉사하도록 요청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의 모든 설문을 작성하여 10일 이내로 회신하시기 바랍니다.
1. 생년 월일은?
2. 영어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까? (이 질문은 마트에서 물건 사는데 불편이 없느냐는 것을 묻는 질문이 아니다. 법률용어를 이해할 수 있는 영어 수준이 아니라면 'No'에 체크해야 한다.)
3. 미국 시민입니까? 아니라면 설문을 종료하고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4. 우리 카운티 거주자입니까? 아니라면 설문을 종료하고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5. 18세 이상인가요? 아니라면 설문을 종료하고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우편으로 보내주세요.
6. 중범죄로 처벌받은 이력이 있나요? 그렇다면 설문지 뒤편에 처분 내용을 적어서 보내주세요. 뉴욕주 법에 의거 복권되었음을 증명한다면 배심원 자격이 있습니다.
7. 지난 6년간 뉴욕주의 다른 카운티 법원이나 연방 법원에서 배심원을 하신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배심원 출석 확인서 사본을 보내주세요.
허위로 작성한 답변은 Penal Law에 의해 처벌받게 됩니다.
이 설문에 회신하지 않으면 배심원을 하는데 아무 결격사유가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출석 요구서를 보낼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출석해서 나의 부적격을 설명해야 하니 매우 귀찮아진다. 그래서 우편을 받은 바로 다음 날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한국 시민'이라고 체크해서 회신했다. 다시 연락 오진 않았다. 한국에서 민방위까지 마치고 온 아저씨는 이런 류의 연락이 매우 성가시다.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