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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자연, 역사, 예술의 휴양지 케이프 코드

여행 14 (2/2), September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필그림 정착 400주년을 맞아 Provincetown Museum에 기증된 그림. Mayflower와 Provincetown에 있는 Pilgrim Monument를 콜라주 느낌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필그림(Pilgrim)은 사전적으로는 순례자라는 뜻 입니다만 미국에서는 '1620년 영국 청교도 순례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청교도 및 필그림'은 '1620년 영국에서 온 청교도 순례단'을 뜻합니다.


'미국 역사가 시작된 곳 - Plymouth'에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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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미국 동북부 Plymouth, Cape Cod 일대의 지도, 필그림들은 케이프 코드의 북쪽 끝에서 부터 안쪽 해안을 탐험하고 플리머스까지 가서 비로소 정착할 수 있었다.


첫째 날 (2/2) : 케네디 가문의 오래된 별장 - Hyannis

작은 해변 옆 Korean War Memorial, 그리고 JFK를 추억하는 작은 공원

플리머스에서 케이프 코드로 들어가다 보면 하이애니스(Hyannis)라는 곳을 지나게 된다. 지도 검색을 해보니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물(Korean War Memorial)이 있길래 잠시 가보기로 했다. 워싱턴 DC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나는 세은이에게 한국 전쟁 관련된 것들을 자꾸 보여주고 싶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바라보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또한 한국에 돌아가면 할 수 없는 경험이다.


도착해 보니, 해변에 있는 작은 공원, 그 가운데 참전 용사의 동상이 보인다. 동상 뒤편으로 유엔기, 성조기. 매사추세츠 주깃발과 함께 태극기가 보이고 동상의 기단부에는 한국전쟁의 연혁이 짧게 적혀있다. 단출하다.

동상으로 가는 바닥 벽돌엔 케이프 코드 출신 참전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미군 최고 훈장인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이의 이름을 볼 수 있는데 장진호(Chosin Reservoir)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Thomas Hudner)라고 한다. 알링턴 국립묘지에서도 장진호에서 사망하여 명예훈장을 받은 이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정말 혹독한 전투였던 것 같다.

작지만 충분히 기품 있는 공원을 거닐면서, 미국 사회는 공공을 위해 봉사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나 쉽사리 찾아올 수 있는 곳이지만 경건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좋다. 세은이가 나중에 한국에서 한국 전쟁을 공부하게 될 때 지금 이 순간이 기억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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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Hyannis의 베테랑 기념공원엔 한국전 참전 기념 동상이 있다. (오른쪽) 동상 기단부에 적힌 한국 전쟁 연혁. 바닥 벽돌엔 이 지역 참전자의 이름이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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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JFK 기념 공간. Hyannis에는 케네디 가문의 별장이 있다. (오른쪽) 소박한 해변인 Verteran Park Beach. 바다엔 요트가 아주 많이 떠 있었다.

미국 전역 어디에나 있는 긴똥새(긴 모양의 똥을 아무 데나 싼다고 해서 세은이가 붙인 별명, 캐나다 거위를 말함)를 따라 공원을 돌아보다 보니 JFK의 기념 공간이 나온다. 넓고 둥근 배치가 알링턴 국립묘지의 JFK 가족 묘와 오묘하게 비슷하고 가운데에는 Eternal Flame 대신 분수대가 있다. 근데 이게 왜 여기에?

케이프 코드 지역의 입구에 해당하는 '하이애니스'는 케네디 가문의 별장(Kennedy Compound)이 있는, JFK가 당선 수락 연설을 했던 곳으로 JFK의 정치적 고향과 같은 곳이다. 마치 지금의 트럼프에게 프로리다 마러라고 리조트가 있는 것과 같다. 그러하니 이곳에 추모 공원이 있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지도에 보면 기념관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에 JFK의 집과 아버지 조셉, 세 동생 로버트, 에드워드(Ted), 유니스 각각의 집이 모여있는 주택 단지인 'Kennedy Compund'가 있는데 일반인은 들어갈 수 없는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보기로 하자.


긴똥새가 거닐고 있는 공원에서 나오면 가족들이 쉬고 있는 작은 해변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의 수많은 요트들은 이곳이 참 여유롭고 부유한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 과연 유명 정치가문의 별장이 있을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변을 빠져나오는 길에는 상류층이 많이 찾는 고급 휴양 섬(Nantucket & Martha's Vineyard)으로 가는 페리 항구가 있다. 주변 도로에 차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데, 미국에서 중류층이 될까 말까 한 이 아시아 이민자 가족은 휴양섬은커녕 하루 밤 $200가 넘지 않는 저렴한 숙소를 향해서 지나쳐 갈 뿐이다. (배 시간이 자주 있는 게 아니어서 섬을 가려면 시간을 길게 잡고 와야 한다.)


둘째 날 : 천혜의 자연 Cape Cod & 독특한 문화의 Provincetown

케이프 코드 국립 해변 (Cape Cod National Seashore)

본격적으로 케이프 코드 자연 지역에 들어서면 갈고리처럼 생긴 지형의 양쪽으로 형성된 해변을 감상할 수 있다. 만(灣)을 형성하는 서쪽 해안은 수심이 얕은데 동쪽 해안은 대서양과 맞닿아 수심이 깊은 편이다. 특히 이 동쪽 해변은 단일 해변의 총길이가 무려 60km(속초에서 강릉까지의 거리)가 넘는 그야말로 끝없이 펼쳐진 그림 같은 모습을 자아낸다. 미국 국립 해변으로 지정될 정도인 이 동쪽 해변은 워낙 넓어서 아직 여름 시즌인데도 한산해 보이는 곳들이 꽤 있을 정도였다.(그래도 유명한 장소는 미어터지겠지만...)


세은이가 듣기 싫어할 만한 케이프 코드 역사 얘기를 하나 하자면, 전기공학자 마르코니가 인류 최초의 무선 통신 탑을 설치했던 곳이 바로 케이프 코드의 해변이라고 한다. 실험실 수준의 연구에서 벗어나 실제 사용을 위해 상업용 단계로 끌어올린 것이 이곳에서였다. 마르코니가 세운 케이프 코드 스테이션에서 1903년에 미국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영국 국왕 에드워드 8세와 대서양 너머 실시간으로 무선 통신에 성공하게 되는데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크게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아쉽게도 지금 이곳에는 그때의 역사를 알려주는 푯말 말고는 그냥 바다만 있고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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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지난 10,000년 동안 케이프 코드의 갈고리 모양 지형의 변천을 설명하는 안내문 (오른쪽) 숲과 해안이 어우러진 케이프 코드는 많은 사람이 찾는 휴양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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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미국 동북부에서 판매되는 감자칩 모델인 Nauset 등대. (오른쪽) Province Lands Visitor's Center 전망대. 갈고리 모양의 제일 북쪽 지점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과자는 단연코 포테이토 칩이라고 할 수 있다. 세은이 학교 급식에서 식사로도 나오기도 하니 '과자'로 치부할 수는 없는 물건이다. 포테이토 칩의 원조가 뉴욕 사라토가라서 그런지 마트에 가면 굉장히 다양한 브랜드가 있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Cape Cod', 등대가 그려진 포장지로 유명한 제품이다.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포장 속 등대(Nauset Lighthouse)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어줘야 한다. 마트에서 미리 준비한 오리지널 맛 포테이토 칩과 함께.


동쪽 해안을 따라 계속 달리다 보면 케이프 코드 갈고리 모양 제일 북쪽 지점에 모래사장에서 차를 운전할 수 있는 구간이 있었다. 여기는 플로리다의 데이토나 비치처럼 단단한 모래가 아니기 때문에 입구에서 타이어 공기압을 빼고 해변으로 진입해야 하고 게다가 사전에 허가증(ORV, Off Road Vehicle Permit)까지 받아야 한다고 해서 우리는 그냥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했다.


우리는 갈고리 머리 쪽에 도달해 언덕 꼭대기에 있는 방문자 센터(Province Lands Visitor's Center)를 찾아서 바다와 해변, 숲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자전거를 타고 오거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는데, 이렇게 자연에서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이 한 곳에 모여있는 곳이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역사의 마을 Provincetown, 그곳에 뿌리내린 독특한 문화

케이프 코드 갈고리의 북쪽 끝을 돌아 안쪽 끝까지 가면 이 일대에서 가장 큰, 실제로는 아담한 도시인 프로빈스타운 (Provincetown)에 도착한다. 사실 이곳이 필그림들이 타고 온 Mayflower의 최초 기착지였다. 하지만 이 지역은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땅에 소금기가 많고 식수가 부족해서 필그림들이 여기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고 한다. 그들은 그렇게 케이프 코드 만(灣) 안쪽을 한 달 가까이 메뚜기처럼 탐색을 하고 플리머스까지 가서야 비로소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을의 한가운데 가장 높은 언덕에는 필그림 최초 도착지임을 기념하는 77m짜리 기념탑(Pilgrim Monument)이 세워져 있다. 케이프 코드는 시골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냥 자연 지대이고, 프로빈스타운은 높은 건물 하나 없는 작은 도시라서 이 기념탑은 아주 멀리서도 잘 보인다. 입장료 $18를 내고, 탑에 올라 전망대에서 케이프 코드를 내려다보고 1층에 있는 박물관도 구경한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케이프 코드의 모습도, 박물관의 여러 작품도 맘에 들어서 필그림에 대한 우리의 공부가 프로빈스타운에서 이렇게 완성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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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Provincetown에 있는 Pilgrim Monument와 전망대에서 바라본 케이프 코드 전경
20220904_132822.jpg (사진)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연도별 필그림의 정착의 역사

기념탐을 마지막으로 해서 역사 공부를 마치고 시내를 둘러본다. 프로빈스타운은 100여 년 전부터 예술가의 도시였고 성소수자들의 마을로도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고 특유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쉽게 느낄 수 있다. 위험한 느낌은 없고 거리가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라 활기차 보인다.

예술가들이 모여있는 곳이라 특이한 소품 상점들, 작은 전시장 그리고 코미디 공연을 하는 소극장도 많다.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은 많지만 짧은 일정이라 아쉽게 분위기만 느끼고 간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을 프로빈스타운 해변가에서 랍스터 롤 식사를 하고 모래사장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필그림들의 이야기를 여기까지 직접 찾아와서 본 건 미국 역사 상식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미국인들은 중고등학교 때 배우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거기에 부자들의 휴양지를 살짝 엿본 것도 여기까지 와서 얻은 좋은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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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Provincetown 시내. 성소수자의 도시답게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다. (오른쪽) 식당에 전시된 공연 포스터. 과연 공연과 예술의 동네.

내가 Judy 선생님에게 플리머스에 여행 간다고 했을 때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는 곳이지. 필그림의 역사를 잘 공부하고 오렴.'이라고 하시면서, 시간이 되면 채텀(Chatham)이라는 곳을 한번 가 보라고 하셨다. 친구들과 케이프 코드 여행 오면 가끔 들르는 곳이라며.

흠... 이런 추천을 들으면 반드시 가 봐야 한다. 그래야 다녀와서 Judy와 얘깃거리가 생기지 않겠는가.

어차피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지나는 곳이라 잠깐 커피 한잔하러 들러보았다. 분위기가 유명한 관광지라기보다는 그냥 작은 어촌 항구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느낌에, 아내는 '할머니 선생님이 좋아할 만하네.'라고 한다.


바다에서 어선 하나가 부두로 다가오더니 잡아 온 것들을 바쁘게 내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바닷속이 뭔가 부산하게 움직이더니, 만선을 기다리던 물개 떼가 머리를 빼꼼 내밀기 시작한다. 바쁘게 물고기를 손질하는 어부들을 쳐다보며 뭔가를 노리고 있는 모습이다. 어부가 생선 손질하고 남은 것을 바다에 던져줄 때마다 우르르 몰려다니는 물개들은 굉장히 볼만했다. 야생 물개를 처음 본다며 세은이가 만족하니 모두가 즐겁다. 역시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 되어야 한다. "선생님 덕분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20220904_165633(0).jpg (사진) Chatham 항구에서 어선을 기다리는 물개들. 아구(Monkfish)를 많이 잡은 어선들이 있었다.


이렇게 짧은 여행을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처럼 차고에서 우리 셋 다 같이 박수를 치고 마무리했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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