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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New York Yankees 직관기

July 2022

by Clifton Parker

(커버 이미지 :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 최고 인기팀인 뉴욕 양키스의 홈구장 Yankee Stadium. 경기 시작 전에 선수들이 몸을 풀고 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참고: 미국 스포츠 입문기 & NFL 풋볼 (NY Giants) 직관기


드디어 메이저 리그를 보러 간다. 그것도 뉴욕 양키스라니.

미국을 대표하는 스포츠를 꼽는다면 당연히 풋볼이 1순위이지만 야구의 인기 역시 만만치 않다. 실제로 관중수를 따져보면 경기당 관중수는 풋볼이 압도적이어도, 풋볼에 비해 경기 수가 10배나 많은 MLB(Major League Baseball)는 총 관중수에서 NFL을 압도한다. 프로리그뿐 아니라 대학 풋볼/야구리그까지 고려하면 두 종목을 관중수로 우열을 가르기엔 쉽지 않을 것이다. 풋볼은 그야말로 미국의 스포츠지만, 야구 역시 미국이 종주국이고 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곳이다.

30년 전에 박찬호가 최초로 MLB에 진출한 이래로 김병현, 추신수, 류현진, 김하성 등등 여러 한국 선수들이 미국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한국에서 밤늦은 시간 혹은 아침에 미국 야구를 보는 모습은 이젠 그렇게 이상한 모습이 아니다. 아주 오래전, 엄마 몰래 늦은 밤에 거실로 나와 박찬호 선발 경기를 보던 20세기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이제 미국 와서 살고 있으니 메이저리그 야구 한 게임 정도는 봐줘야 할 것이다. 심지어 지금 이곳은 그냥 미국도 아니고 무려 '뉴욕'이니까.


미국 야구의 성지 Yankee Stadium

야구에 큰 관심 없다고 해도 '뉴욕 양키스'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심지어 이름은 모른다 치더라도 뉴욕을 의미하는 'N과 Y'가 겹쳐져 있는 그 특유의 로고는 진짜 전 세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 같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는 철학 아래 이름 없이 번호만 새긴 핀 스트라이프(세로 줄무늬) 유니폼, 120년이나 된 팀 역사와 다른 팀을 압도하는 27번의 우승 이력 등은 꼭 미국 야구팬이 아닐지라도 이 팀에 흥미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냥 관심정도가 아니라, 뉴욕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뉴욕 양키스의 경기를 직접 보러 가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야구는 게임수가 많으니 예약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스포츠 티켓을 '시가'로 팔고 있는 미국이라 가격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나는 전통의 라이벌 보스턴 레드삭스와의 주말 낮 경기를 예매했는데 볼만한 자리(1루 2층 좌석)는 $200 정도 한다. 구장 내 자체 주차장이 없어서 주변에 있는 사설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양키 스태디움(Yankee Stadium)은 뉴욕시티 5개 보로(Borough, 자치구) 중 하나인 브롱스(Bronx)에 있다. 위치상으로는 맨해튼 섬 너머 뉴욕시티의 가장 북쪽 지역이다. 영화 조커(Joker, 2019)의 배경이 되는 곳인데, 같은 뉴욕시티라고 해도 남쪽으로 다리 건너 지척에 보이는 맨해튼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드디어 경기날 세 시간이나 운전해서 NYC에 도착했다. 나는 주차비를 아껴보겠다고 경기장에서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곳($20)을 예약해서 주차했는데, 음산해 보이는 주택가를 빠져나오면서 주차장에 돈 아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정말 엄청 했다. 역시 주차장이 싼 건 이유가 있다. 경기 끝나고 돌아올 때 조심해야겠다.


열심히 걸으니 멀리서도 양키 스태디움이 눈에 들어온다. 상점들이 즐비한 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거대한 경기장이 있는 게 조금은 낯선 느낌이다. 아직 경기시간까지는 1시간이 남았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다. 입구 바로 옆 지하철 역에서도 사람들이 계속 쏟아져 내려오고 경찰들이 차도를 통제하고 있다. 경기 전에 기념품점에서 유니폼이라도 사서 입고 들어갈까 했는데 거기도 줄이 길다. 여긴 나중에 오고 일단 자리로 들어가자.

20220717_123156.jpg (사진) 미국 최고의 인기 야구단 Yankee Stadium 입구. 기념품점은 6번 게이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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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Yankee Stadium 내부. 45,000석이 넘는 대형 구장이다. (오른쪽) 최고의 홈런타자 Aaron Judge(#99)가 몸을 풀고 있다.

역사는 오래된 팀이지만 지금의 경기장은 2009년에 지은 비교적 새것이어서 깨끗하고 세련되며 관중 편의성도 좋다. 1923년부터 2008년까지 사용했던 기존 경기장은 바로 길 건너에 있었다는데 지금은 일반 공원으로 쓴다고 하니 경기 끝나고 나서 들러봐도 좋을 것 같다. 관중석 난간에는 MLB 팀들 중에서 가장 많다는 22개의 영구 결번과 27번의 우승 연도가 걸려있어서 전통 있는 구단의 자부심이 느껴진다.

점심을 우선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주문해 봤는데 식사가 될만한 건 핫도그와 치킨뿐이다. '양키스'라는 이름 말고는 사실상 특색 없는 냉동 제품 튀김인데 가격도 너무 비싸서 상당히 아쉽긴 하다.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는 걸까? 음식이 엄청 빨리 나온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그리고 기념이니 월마트 가격의 10배쯤 되는 양키스 맥주도 한 캔 사서 마셨다.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는 별명답게 올해의 양키스는 압도적인 한 해를 보내고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는 어제 게임에서 이미 크게 졌다. 확실히 기세가 양키스에 있다. 레드삭스는 오늘은 꼭 이기려는지 부상에서 돌아온 좌완 에이스를 선발로 냈다. 하지만 양키스도 제일 비싼 투수, 에이스인 Gerrit Cole(#45)이 선발로 나오니 누가 이길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클린 홈런왕인 Aaron Judge(#99)가 또 홈런을 쳐낼 것인가가 오늘의 관전 포인트다.


늘 그렇듯이 미국의 스포츠 행사는 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미국인이 아니니 잠시 일어서서는 것으로 그들의 행사에 존중을 표한다. 오늘 시구는 할아버지가 된 베트남전 참전용사가 했다.

자 준비는 끝났고 이제 시작한다. "Play Ball!"

20220717_132255.jpg (왼쪽) 양 팀 선발투수 Gerrit Cole과 Chris Sale. 라이벌 전에 걸맞게 양 팀 모두 에이스가 선발로 나왔다.
20220717_135204-ANIMATION.gif (오른쪽) 1회 말 Boston Red Sox의 선발 투수 Chris Sale이 역투하고 있다.

양키스의 홈경기라 1회 초는 레드삭스가 공격한다. Garrit Cole이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에 섰다. 엄청 열정적인 풋볼팬들 분위기와는 다르게 야구팬들은 상당히 점잖은 편이다. 자리에 앉아서 'Let's Go Yankees' 정도 따라 외쳐주면 분위기 맞추기에 충분하다.

양키스 에이스의 몸 쪽 빠른 공에 레드삭스 선수 하나가 큰 동작으로 넘어지자 팬들은 엄살피지 말라며 야유를 쏟아낸다. 1회 초는 3루수(DJ LeMahieu, #26)의 진정한 메이저 리그급 수비로 실점 없이 마무리된다.

그러더니 1회 말에 방금 멋진 수비를 보여준 3루수가 1번 타자로 나와서 첫 타석부터 곧바로 안타를 쳐낸다. 운이 좋다. 오늘 뭔가 잘 풀리려나 보다.

그러던 중 레드삭스 투수가 2 아웃을 잡아 놓고 타구에 손을 맞는다. 경기장 화면으로 보니 꽤 큰 부상인 것 같아서 바로 병원으로 가는 듯하다. 우리 팀이 이기면 좋겠지만 누구든 부상이 나오는 건 좋지 않다.

선발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레드삭스 교체 투수가 몸을 풀 시간도 없이 등판해야 했고, 양키스 타자들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맹타를 휘둘러 3점을 내는 데 성공한다. 그 후로 레드삭스의 후속 투수들이 계속 교체되며 막으로 했지만 양키스는 4회에 무려 8점을 내면서 승부를 99% 결정지은 상태가 되었다. 이미 기울어 버린 경기에 관심이 없어진 팬들은 승패보다는 Aaron Judge의 홈런 퍼레이드만을 기다린다. 하지만 경기 후반부에 홈런 없이 교체되었는데 팬들은 퇴장하는 모습에 아쉬움의 박수를 쳐준다. (2H, 0BB, 1 RBI)

(영상) 7회 말이 되면 모든 관중이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노래를 부르는 것은 미국 야구의 오래된 전통이다.

큰 점수차에 긴장이 사라진 팬들은 이제 즐기기에 바쁘다. 미국 야구는 7회 공수교대 시간에 아이들 노래인, 'Take me out to the ball game'를 다 함께 부르는 전통이 있는데 화면에 비치는 관중석은 모두 즐거운 표정이다. 사실 이 정도로 이기면 야구장 맨날 오고 싶을 것 같긴 하다. 평생 단 한 번의 기회에서 운 좋게 대승을 함께한 '20세기 한국 소년'도 즐겁게 따라 불렀다.

이후 레드삭스는 큰 힘쓰지 못하고 9회 초 2 아웃까지 오게 되고, 마지막 한 타자를 남기고 양키스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승리를 기다리는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양키스 마무리 투수가 2루 앞 땅볼로 경기를 끝내면서 결국 13-2로 대승을 낚아낸다. '직관 승리를 또 보다니,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20220717_171152.jpg (사진) "Yankees Win", 선발 Chris Sale이 부상으로 조기 강판된 Red Sox를 Yankees가 13-2로 아주 크게 이겼다.
(영상) NY Yankees 선수들이 승리를 자축하며 경기를 마치고 있다. Yankees의 승리곡은 Frank Sinatra의 "New York, New York"이다.

팬들의 환호 속에 경기가 끝나자, 양키 스태디움에 승리 음악이 나오는데 무려 Frank Sinatra의 'New York, New York'(링크 : 2009년 월드시리즈 우승장면)이다. 이 수 십 년 된 고전 팝송은 오래된 팀 역사에 걸맞은 곡 선정이라는 느낌이다. 팬들이 다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모두가 기분 좋게 집으로 간다.

아까 들어올 때 지나쳤던 기념품점에 Judge의 유니폼을 사려고 했지만 워낙 인기 선수라 경기가 끝난 뒤엔 남은 것이 없다. 아쉬운 대로 오늘의 수훈 선수 중 하나인 3루수의 유니폼을 집어 들었다. (#26 DJ LeMahieu)

20220717_171500.jpg (사진) Yankee Stadium 안쪽 벽에 전시되어 있는 레전드 선수들의 사진 배너 (The Great Hall)

야구장을 다녀와 며칠 뒤, 여느 때와 같이 사람들에게 주말 활동을 공유하였는데 도서관 선생님 Judy가 선물을 하나 주겠다며 도서관에서 보자고 한다.

"도서관 옛날 책들 정리하다가 나온 건데, 내 주변에 이런 거 좋아할 사람은 딱 한 명뿐이라 미리 챙겨놨지."

양키 스태디움의 역사에 관련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현재의 새 구장을 지으면서 사라진 된 옛 구장의 사진과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나를 위해 미리 챙겨뒀다는 것도 참 고맙다. 한국에 돌아가서 양키스를 보게 되면 Judy가 떠오르겠네.

[꾸미기]20250216_111857.jpg (사진) Judy가 선물해 준 Yankee Stadium에 관한 책. 지금은 헐려서 공원이 된 예전 구장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다.


Fondly,


C. P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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