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2022
(커버 이미지 : Football 경기장인 Rentschler Field 외벽에 그려진 University of Connecticut의 상징 'Husky'.)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참고 : 미국 스포츠 입문기 & 실내 풋볼 경기 직관기 & NFL 직관기, Let's Go Giants
Giants의 경기를 보고와 큰 감명을 받은 나는 아내와 세은이에게도 풋볼이라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다. 특히 세은이는 이런 거 한번 보고 나면 학교 반 친구들이랑 할 얘기도 많아질 것 같은데... NFL은 너무 비싸니 아내나 세은이 같이 풋볼 초보를 데려가기는 돈 아깝고, 대학리그 정도면 가격이 만만해서 적당히 괜찮을 것 같다.
미국인들이 대학 스포츠(NCAA)를 찾게 되는 이유
미국 모든 스포츠를 경기당 관중수로 순위를 매기자면 NFL이 압도적 1위이다.(경기당 6만 9천 명, 모든 경기마다 잠실종합경기장이 매진되는 수준) 그러면 2위는 야구나 농구인가? 아니다 관중 동원 2위는 대학 리그인 NCAA(National Collegiate Athletic Association, 미국 대학 체육 연합회)의 풋볼 리그다.(경기당 4만 1천 명)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기는 한데, 풋볼은 1주일에 경기가 한 번 뿐이고 팀당 경기수가 1년에 20번도 안되니 관중은 더욱 몰리게 되는 구조라 이해는 된다. 물론 여유로운 테일게이트 파티나 스트레스가 확 풀리도록 소리를 지르는 등, 다른 종목과 구분되는 관람문화도 사람들이 풋볼에 몰리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대학 리그 경기를 관심 있게 보는 데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의 어쩔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미국 전역에 NFL 같은 프로팀의 경기가 열리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되는 지역이어야 프로팀을 유치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텍사스, 플로리다 같이 사람도 많고 돈도 많은 주에는 풋볼뿐 아니라 프로팀이 각 종목별로 2~3개씩 있기도 하지만 아이다호, 앨라배마, 아이오와처럼 메이저 프로팀이 단 한 팀도 없는 주들도 많다.
프로팀이 없는 곳에서는 그 빈틈을 주로 대학 리그가 채우는 구조로 운영된다. 그런 이유로 프로팀이 없는 지역에 대학리그 강팀이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왜냐면 그런 지역일수록 신입생을 유치하는데 많은 홍보가 필요해서 스포츠팀에 투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예 주 정부 차원에서 특정 대학 스포츠팀을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 대학 스포츠팀은 그 지역을 대표하게 되고 팀의 실력도 프로팀 수준에 견주어 크게 모자라지 않으니 그 지역 사람들에겐 사실상 프로팀이나 마찬가지다. (반대로 프로팀이 많은 뉴욕엔 인기 스포츠 종목에 상위권 대학팀은 없다. 아마 홍보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몰려오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비즈니스 관점을 떠나서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건, 작년에 대학 농구를 보러 갔을 때 이미 봤던 대로, 대학 스포츠 경기에는 대학생들만의 요란한 응원 문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밴드부가 행진하며 음악을 연주하고 치어/댄스팀은 묘기 같은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은 대학 경기를 찾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특히 그 모든 것에 익숙한 학교 졸업생이라면 당연히 대학경기를 찾지 않겠는가.
미국 대학 스포츠 리그 그리고 익숙한 이름 'Ivy League'란?
미국엔 수천 개의 대학이 있고 대학 체육 협회인 NCAA에 등록되어 있는 학교만 해도 1,100개가 넘는다. 이렇게 많은 학교 수, 그리고 그 학교들 간의 물리적 거리가 어머어마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미국 대학의 스포츠 경기를 단일 리그로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미국 대학 스포츠는 지역 또는 학교 특성에 따라 10~20개 팀으로 된 여러 개의 작은 리그들로 구성된다. 대학 리그들은 단순히 지역으로만 묶는 것은 아니고 경기 성적, 지원 규모 등에 따라 비슷한 수준의 학교들끼리 경쟁할 수 있도록 팀이 꾸려진다.
대학 풋볼은 'ACC', 'Big Ten', 'SEC' 같은 리그들이 최상위 등급이고 FBS(Football Bowl Subdivision)라는 서브 디비전으로 따로 분류되어 매년 챔피언십 우승을 두고 경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FBS에 속한 팀들은 경기 수준과 인기가 프로팀 못지않아서 토요일마다 미국 전역으로 경기가 중계방송 되기도 한다. (미국인에게 풋볼은 한 경기 한 경기 모두 소중하기 때문에 대학 경기는 반드시 토요일에 한다. NFL경기 일정인 '월/목/일'과 절대 겹치지 않기 위함이다. 참고로 고등학교 경기는 금요일에 한다. 엄청난 풋볼 사랑이다.)
우승을 노리는 FBS에 속하지 않은 풋볼 팀들은 대부분 2부 디비전인 FCS(Football Championship Subdivision)에 속하게 된다. 상대적으로 관심도 덜하고 중계도 없다. 지역 TV에서는 편성되려나?
그런데 그 FCS 소속 리그 중에 아주 유명한, 심지어 한국인들도 모두 알고 있는 리그가 하나 있다. 바로 '아이비리그(Ivy League)'가 FCS 리그 중 하나이다. 오래된 상위권 명문 대학의 모임 정도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아이비리그는, 실제로는 동북부 8개 학교가 참여하고 있는 NCAA산하 지역 대학 스포츠 리그를 말한다. 물론 미국에서도 아이비리그라는 말이 꼭 학교 스포츠 리그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원이 그렇다는 거다.
(Ivy League Schools : Brown RI, Columbia NY, Cornell NY, Dartmouth NH, Havard MA, UPenn PA, Princeton NJ, Yale CT)
아이비리그는 학교들의 명성에 비하면 풋볼 성적은 소소한 편이고, 그나마 Princeton 대학은 최근에 농구에서 눈에 띌만한 성적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전반적으로 운동보다는 학업중심의 학교들이고 스포츠 팀을 활용한 학교 홍보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풋볼은 큰 투자가 필요한 종목이라 "돈 안 써도 학생 많이 오는데 굳이?"인 것이 아닐까.
요즘 세은이가 학교 체육시간에 풋볼을 배운다고 한다. 공 던지기와 잡기를 배운다면서 TV에 나오는 풋볼 중계를 보면서 흉내를 내고 재잘거린다.
'아, 이제 풋볼을 같이 보러 갈 때가 되었는가.'
더구나 5학년 되어 학교 밴드부에 속해서 트럼펫도 배우고 있으니 응원단 구경하러 가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다. 대학경기가 비용면에서 만만하니 일정을 잡아봐야겠다.
NCAA D1중에서도 최상위 등급인 FBS에 속한 팀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알바니 주변 갈 만한 거리에 있는 FBS에 속한 학교들을 찾아봤는데, UConn(코네티컷 대학교, University of Connecticut)가 2시간쯤 거리에 있다. UConn은 농구로 전국 우승(March Madness)을 여러 번 했을 정도로 운동으로 유명한 학교지만, 풋볼은 그 정도까지는 못되고 FBS 파워랭킹 중위권에 있다. 그래도 그 정도면 우리에겐 충분히 재밌을 것 같다. 홈경기가 우리 주말 일정과 맞아서 예약($40)을 완료해 두었다.
경기날 UConn의 풋볼 구장인 렌슬러 필드(Rentschler Field)에 도착했다. 미국 내 수많은 주립대학 중 한 곳일 뿐인데도 우리나라 월드컵 경기장에 비해도 될 만큼 풋볼 경기장 규모가 엄청 크다. 주차장에서부터 NFL 경기에서 봤던 것과 굉장히 비슷한 분위기다. 주차장 입구부터 길게 늘어선 차들, 테일게이팅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아이들과 캐치볼 하는 아빠(내차에 맞지 않게 저쪽 멀리 좀 가서 하지...) 등등. 그래도 한번 가봤다고 이런 모습이 조금은 익숙하다.
오늘의 상대는 남쪽 버지니아에서 온 리버티 대학(Liberty University)이다. 오늘 이 경기는 리그 최종 순위 결정전이라 양 팀 모두 설렁설렁 뛰어선 안 되는 상황이다.
입구에서 QR코드로 티켓을 체크하고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가판대에서 'UConn'이라고 크게 적힌 티셔츠를 하나 사서 입고 들어간다. 경기를 즐기러 왔으니 피아식별은 분명하게 해야 하니까. 세은이에게도 UConn 응원술을 하나 사서 들게 했다. 나름 기념품인 셈이다.
경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대학팀 특유의 화려한 응원 공연이 시작된다. 관악기 위주의 마칭 밴드와 치어팀의 일사불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치어팀은 응원구호를 외우게라도 하려는 듯 팬들의 호응을 계속 유도한다. 저 멀리 한쪽 구석엔 빨간 옷을 입은 원정 팬 구역이 있고 작은 규모의 원정 응원단이 기죽지도 않고 열심을 다하고 있다. 원정팀의 노력은 가상하지만 나는 이미 티셔츠에 투자했으니 오늘은 UConn이 반드시 이겨야 한다.
늘 그렇든 미국 국가인 'Star Spangled Banner'로 경기가 시작된다. 홈팀이 초반부터 시원하게 앞서가면 좋으련만 비슷한 실력의 두 팀은 정말 치열하게 치고받는다. 미국 대학 경기의 상징인 응원 밴드는 관중석 한 섹터를 아예 차지하고 앉아서 경기상황에 맞는 연주를 하고 필드 위의 치어팀은 팬들을 향해 끊임없이 Uconn 응원 구호를 외친다. 수비 상황에서 사람들이 외치는 'Go Get Him!'도 NFL때 보다 훨씬 과격하게 들리고 터치다운이라도 했다 하면 응원단과 홈팬들은 아주 그냥 난리가 난다.
경기 시간은 거의 마무리되어 가는데 UConn이 겨우 3점 앞서있고 상대의 반격은 만만치 않다. 역습 한방 이면 뒤집힐 점수차이라 불안하지만 일단은 희망을 걸어본다. 모두의 염원에 부응하듯, Giants 경기때와 비슷하게도, 경기 종료 2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UConn이 상대의 공격을 잘 방어하여 공격권을 가져오는 데 성공한다. 모든 사람이 승리를 예감하여 흥분하여 우리 팀 공격임에도 환호가 쏟아지는 동안 UConn 공격진은 차분히 시간을 흘려보내서 36-33으로 승리를 확정 지었다. $30짜리 티셔츠 투자가 성공하는 순간이다. 사방에서 폭죽과 함성이 쏟아진다. 승리의 쾌감이 NFL 못지않다.
그런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흥분한 학생들이 갑자기 경기장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게 아닌가. 경기장엔 선수, 응원단, 관객이 모두 뒤엉켜 다 함께 축하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TV 뉴스로만 봤던 'Field Storming'이 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원정 선수들이 아직 빠져나가고 있어서 혹여나 사고가 있지 않을까 했지만, 경찰도 곳곳에 있어서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저렇게 좋을까. 젊은 학생들의 열정이 부럽기도 하다. 사실 이런 장면은 미국 대학 스포츠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흥분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나서, 우리도 잠깐 내려가서 그들과 승리의 기쁨을 함께 했다.
풋볼의 매력은 선수들의 압도적 체력과 조직력, 전술이 맞부딪치는 경기 그 자체만이 아니라 관중이 참여하는 응원 문화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인 것 같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 팬 참여형 응원 문화,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는 열정이 사람들을 풋볼 경기장으로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미국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이 재밌는 풋볼을 더 이상 보러 갈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아쉬울 것 같다.
Fondly,
C. Parker.
- 나중에 알게 된 것
이 경기는 단순한 최종 순위 결정전이 아니었다. 동부 지역 플레이오프 게임(Myrtle Beach Bowl) 진출권이 걸린 중요한 경기였는데 UConn에게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기회였다고 한다. 그래서 팬들이 승리에 더욱 흥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경기 승리를 거둔 UConn은 Bowl 게임에 진출해서 아쉽게 패했다.
관중이 경기장으로 몰려내려오는 Field Storming은 어쨌든 NCAA 규정위반이다. 그렇지만 내가 UConn에서 본 일은 보통 벌어지는 수준에 비해 아주아주 점잖고 양호한 수준이라 벌금은커녕 기사 한 줄 나오지도 않기는 했다.
사실, 챔피언십 진출을 목전에 둔 풋볼팀이 있는 학교들은 이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례로 테네시 대학(University of Tennessee)에서는 대승을 거두게 되면 학생들이 필드에 내려와서 골포스트를 뽑고, 그걸 어깨에 지고 나가서 경기장 밖에 있는 테네시 강에 던져 넣는 전통 아닌 전통이 있다고 한다.
올해는 테네시가 그야말로 미국 전국구 초 강팀, 앨라배마 대학을 꺾는 이변을 만들어 냈는데, 경기 종료 휘슬이 불리자마자 수만 명의 학생들이 모두 필드로 뛰어 내려와서는 '옛날 전통'을 되살리는 사고를 저질렀다.
내가 살고 있는 뉴욕에서도 이 뉴스가 며칠 동안 오르내릴 정도였는데 학교는 경기장 수리비에 별도로 NCAA에 $100,000의 벌금을 내야 했다고 한다. 말로만 들으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영상으로 보면 조금 무섭고 심각하다. 우리에게 이런 일까지는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뉴스 영상 : "Tennessee fans tear down goal post after win over Alaba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