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022
(커버 이미지 : NY Yankees의 역사를 빛낸 두 스타 선수, Lou Gehrig과 Babe Ruth의 사진. 1927년 이벤트 투어 경기(Fresno, CA )에서 일본 이민자 야구팀과 함께 찍은 것이다. 당시엔 선수 개인이 오프 시즌 중에 자체 팀을 조직하여 이벤트 경기를 다니기도 했다.)
*뉴욕시티(NYC)로 표기하지 않은 "뉴욕"은 뉴욕 주(NYS)를 의미하며 대도시가 아닌 교외지역입니다.
** 참고 : New York Yankees 직관기
미국에는 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사람들을 선정하여 기념하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이라는 문화가 굉장히 보편화되어 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것은 동서고금 어디에나 있는 것이지만, 음악이나 스포츠 같은 대중문화와 관계된 명예의 전당은 미국이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명예의 전당이라는 말 자체도 미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1900년 New York University의 Hall of Fame for Great American이 최초의 명예의 전당)
미국엔 여러 가지 분야의 명예의 전당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야구 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이 아닐까.
미국 4대 스포츠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곳이기도 하고 한국 스포츠 뉴스에서도 종종 나오는 곳이라 그렇게 생소하지는 않다.
야구 명예의 전당은 뉴욕주 쿠퍼스타운(Cooperstown, NY)에 있는데, 이곳은 집에서 그다지 먼 곳은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들이 가듯 다녀 오려한다. 하지만 뉴욕시티나 보스턴에서는 5시간 정도 운전해야 하는 곳이니 미국에 여행으로 와서는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조용한 시골 마을 Cooperstown과 '미국' 야구의 기원
쿠퍼스타운은 뉴욕주 정중앙에 있는 고속도로가 닿지 않는 아주 작은 시골마을이다.
국도를 따라 달리면 우리 집에서 쿠퍼스타운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미국에서 이 정도면 가까운 곳이고 나무가 우거진 시골 국도를 달리는 것도 나름 운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야구는 미국의 국민 스포츠인데, 어째서 야구 명예의 전당은 찾아가기 힘든 이런 시골마을에 있는 걸까? 궁금해서 이유를 찾아봤는데 생각보다 복잡하다.
19세기말 평화롭게 야구를 즐기던 미국사람들 사이에선, 야구가 미국 고유의 문화가 아닌 유럽에서 넘어온 것이라는 뜬금없는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타도 유럽'을 외치던 그 당시 미국 애국자들에게 이런 논란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들은 야구의 기원을 찾는 위원회(The Mills Commission, 1905)까지 만들어서 이 사랑스러운 게임이 미국 고유의 스포츠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위원회는 결국 누군가의 제보(?)를 토대로 "야구는 1839년에 쿠퍼스타운에 살던 A. Doubleday(당시 이미 사망한 육군 장군)가 이 고안해 낸 미국 고유의 스포츠"라는 결론을 내고야 만다.
이 결정에는 그 증언 외에는 어떠한 문헌적 근거도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 조차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결정을 내리고 나선 애국심으로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아무튼 그 뒤 약 30년이 지나고, '어쨌거나 야구의 고향'이라고 정해진 이 작은 마을 쿠퍼스타운에 어느 자선가의 투자로 명예의 전당이라는 것이 세워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 긴 시간 동안 이 명예의 전당엔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진실을 눈 감는 것이 애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지만 그때는 이곳이 야구의 성지로 되어버린 후여서 되돌릴 수는 없었다고 한다.
(야구의 실제 기원은 당연히 유럽으로 추측된다. 14세기 프랑스 서적에서 야구와 유사한 운동의 그림도 발견되었고, Baseball이라는 단어 자체가 유럽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용어이다. 명예의 전당에서는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름다운 마을에 아름다운 이야기만 있을 줄 알았는데 좀 씁쓸한 뒷맛이 있다. 그래도 현재에 와서는 과오를 인정하고 더 이상 진실을 덮지 않으니 쿠퍼스타운이 앞으로도 좋은 전통으로 이어지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명예의 전당을 대표하는 야구하는 '사람들'
시골 읍내 느낌의 쿠퍼스타운 중심가엔 야구 관련 기념품을 파는 상점들로 가득하다. 그 길을 따라 끝까지 가면 마을 제일 안쪽에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는 오래된 벽돌 건물인 '야구 명예의 전당'이 나온다.
입장료 $28을 내면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하루동안 유효해서 중간에 나가서 밥을 먹고 와도 된다. 볼거리가 많은가 보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본다.
입구로 들어가면 명예의 전당을 대표하는 세 선수의 동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Lou Gehrig(루 게릭), Jackie Robinson(재키 로빈슨), Roberto Clemente(로베르토 클레멘테)
이들은 야구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후대의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에 이 자리에 동상으로 남아있다.
- 선수로 전성기를 보내던 중 온몸의 근육을 쓸 수 없게 되는 희귀병에 걸려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Lou Gehrig. 그는 당시엔 이름도 몰랐던 그 병에 자신의 이름이 붙여져 '루게릭 병'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되었고 관련 의학 연구에 많은 관심을 이끌었다.
- 미국 야구 최초의 흑인 선수였던 Jackie Robinson. 흑백 인종 차별이 심했던 그 시절 경기장 안팎에서 그가 인내하고 극복해야 했던 것들이 매우 많았을 것이다.
- 푸에르토 리코 출신 Roberto Clemente도 유색인종으로 수많은 차별을 이겨내야 했다. 선수 생활을 하며 중남미 빈곤층을 위한 자선활동을 하던 중 비행기 사고로 사망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지역 사회에 기여가 많은 선수 한 명을 매년 선정하여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수여하고 있다.
세 명의 동상이 의미하는 가치를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 야구는 단지 여가와 게임의 의미 그 이상인 것 같다.
역사적 순간의 기록 : Lou Gehrig의 은퇴
거의 모든 미국 박물관이 그렇듯, 입구를 지나 본격적인 관람을 하기 전에 강당에서 영상을 먼저 보고 가도록 안내하고 있다. 자리에 앉으니 곧 영상이 시작된다.
명예의 전당을 소개하는 이 15분짜리 영상은 1939년 미국 독립기념일, 양키 스태디움에서 있었던 Lou Gehrig의 은퇴 연설로 시작된다.
그는 무려 2,130경기 연속 출장(14년 개근)을 기록할 만큼 체력, 자기 관리 및 실력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선수였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For the past two weeks you have been reading about a bad break...
Yet today(today, today...) I consider myself the luckiest man on the face of the earth.
여러분들은 지난 2주간 저에 대해 좋지 않은 뉴스를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오늘, 오늘... 메아리친다) 저는... 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참지 못하고 흐느낀다.)
그러더니 이내, 연설하는 Lou Gehrig의 목소리 뒤로 누군가 똑같이 따라서 하는 소리가 겹쳐 들리고 소파에 기대어 앉아 Lou Gehrig의 연설을 따라 하고 있는 어느 할아버지의 장면으로 오버랩된다.
그 역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된 선수로, 어릴 때부터 Lou Gehrig을 존경해서 그의 연설을 외우고 다며 또 다른 전설적 선수의 이야기로 영상이 이어진다.
영상을 통해, 명예의 전당이 사람들로 하여금 야구가 단순히 게임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느껴지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했음을 알 수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대를 이은 추억과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엔 가족단위로 방문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역사적 순간의 기록 : Jackie Robinson이 받은 편지들
2013년에 개봉된 영화 중에 '42'라는 제목의 야구 영화가 하나 있었다.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야구 선수 Jackie Robinson에 대한 영화로 42는 그의 선수시절 등번호다.
그가 활약했던 1940년대는 미국 내 유색인종 차별이 매우 심해서 백인들의 게임에 흑인이 참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야구를 좋아하는 흑인들은 자신들의 '니그로 리그'를 따로 차려야 할 정도였는데, 출중한 실력을 뽐내던 Jackie Robinson은 니그로 리그를 떠나 백인만의 '메이저 리그'에 합류(1947)하여 그 거대한 벽에 마침내 균열을 만들어 낸다.
차별의 벽을 뚫고 들어간 그에겐 선수 생활 내내 지독한 괴롭힘이 따라다녔는데, 명예의 전당에는 Jackie Robinson이 받았던 협박편지 원본이 전시되어 있어서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다.
We are going to kill you if you attempt to enter a ball game at Crosley field.
크로슬리 필드(Cincinnati, OH)에 들어오기만 해 봐. 죽인다.
We have already got rid of several like you. One was found in river just recently.
너 같은 건 이미 몇 마리나 없애봤지. 얼마 전 강에서 한 마리 발견됐다는데... 알아두라고.
Jackie Robinson의 메이저 리그 데뷔는 미국에서 법으로 인종차별을 금지한 것보다 무려 17년이나 앞섰다. 흑인이 백인들과 야구를 한다는 건 그야말로 큰 사건이었고 그는 오랜 시간 차별과 조롱을 받아야만 했다.
그 모든 것을 인내하면서도 야구장에 나와선 준수한 성적을 거두었으니, 오늘날 명예의 전당에 그의 특별 전시 코너가 차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가 만든 작은 균열 이후 흑인들의 메이저 리그 진출이 이어졌고 니그로 리그는 점차 퇴색하여 미국 야구는 통합된 메이저 리그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훗날 그의 등번호 42번은 메이저리그 모든 팀에서 영구 결번되었다.
모든 세대의 추억을 보관하고 있는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은 야구에 관련한 모든 역사를 볼 수 있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것저것 살펴보다가 알아볼 수 있는 선수 이름이 나오면 반갑기도 하다.
1930년대 뉴욕 양키스 전설의 홈런타자 Babe Ruth의 유니폼도 전시되어 있다. 그야말로 풍운아로 한 시대를 살다 간 그와 같은 팀에서 친구이자 라이벌로 지낸 모범생 Lou Gehrig과의 이야기는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 Lou Gehrig이 갑작스러운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가장 슬퍼했던 사람이 Babe Ruth였다.
홈런 하면 빼놓을 수 없는 Hank Aaron의 사진도 꼼꼼히 보았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매년 가장 뛰어난 타자에게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한다. 중요한 기록이 되는 사진들이 많았는데 홈런을 치고 돌아올 때 난입한 관중이 함께 베이스를 도는 장면은 지금 보면 좀 우습기도 하다. 그래, 옛날엔 그랬다.
운동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어릴 때 동시에 여러 종목을 다 잘할 수도 있지만, 대개 프로 수준에 오면 한 가지를 잘하기도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훌쩍 뛰어넘는 운동 천재에 대한 기록도 있다.
1990년대 중후반에 활약한 운동 괴물 Bo Jackson은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압도적이었다. 풋볼과 야구, 즉 NFL과 MLB를 동시에 정복한 유일한 선수로 단순히 양쪽을 경험한 정도가 아니다.
한 해에 한꺼번에, 다시 말해 봄/여름엔 야구를 하고 가을/겨울엔 풋볼을 했으며 심지어 양쪽 모두에서 올스타에 뽑힐 정도의 실력이었다고 한다. '전무후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Bo Jackson의 유니폼 아래로 여러 종목에 '도전'했던 몇몇 선수들의 물건도 전시되어 있는데, 농구를 잠시 떠났을 때 마이너리그에서 잠시 야구를 했던 농구황제 Michael Jordan의 야구 배트가 소박하게 느껴질 정도다. (Bo Jackson은 부상으로 인해 선수 경력이 짧았기 때문에 MLB, NFL 어디에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지는 못했다.)
어린 시절 취미로 야구 선수의 사진 카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게 잃어버리곤 & 잊어버리곤 해서 그저 한때의 추억이랄까.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실속 없는 '사진 쪼가리'에 돈 쓰는 걸 엄마들은 애초에 못마땅했는데 그건 미국 엄마들도 똑같다.
명예의 전당에는 연도별로 야구선수 카드를 모아둔 섹션이 있는데 이곳의 이름은
"The cards your mother threw away".
그렇다 엄마가 내다 버린 어린 시절 추억의 카드는 여기에 다 모여있다.
여기 모인 수많은 메이저 리그 선수들 중에 한국 선수를 찾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다. 나는 박찬호, 김병현, 류현진 같은 한국 선수 카드를 찾아보면서 그들의 경기를 보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카드는 야구 선수를 기념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그들과 함께 했던 나의 추억이 담간 카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잘 갖고 있을걸...
추억을 영원히 그리고 모두와 공유할 수 있는 이곳의 기록
명예의 전당은 관람을 3층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어있다. 관람객들은 3층, 2층 순서로 야구의 역사와 추억을 보고 난 뒤, 1층에 와서 그제야 Hall of Famer들의 현판(Plaque)이 전시된 'Plaque Gallery'를 만나게 된다.
미국 야구 역사를 빛낸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을 업적과 함께 동판에 새겨서 전시하고 있는 이곳은 명예의 전당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다.
이곳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려면 까다로운 심사를 거치는데, 당연히 야구 자체로 위대한 업적이 있어야 하고 은퇴 후에도 타인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곳에 이름이 새겨진다는 것은 정말 큰 명예가 아닐 수 없다. (선수만이 아니고 구단 관계자 및 기타 야구 관련 직업인들도 헌액 되어 전시된다.)
1층 넓은 홀엔 관람객 눈높이 정도에 미국 야구의 영웅들 현판이 입성 연도별로 걸려있는데 사람들은 이곳에 찾아와 자신의 추억 속의 선수를 찾아 사진도 찍고 야구와 함께한 자신의 지난 시간을 회상하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내 기억 속 선수들을 찾아 그들의 기록을 보고, 그때의 나를 되짚어보고, 이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간과 그때 함께였던 친구들을 흐뭇하게 떠올려보았다.
쿠퍼스타운은 미국에 사는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와보고 싶은 곳임에 분명할 것 같다.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단순한 은퇴한 야구 선수의 기록만이 아니라 야구하는 사람들의 역사와 이야기이고 그것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알려주고 있어서 상당히 인상 깊었다.
미국인에게 야구는 대를 물려서 하는 게임이고 그것을 통해 할아버지와 아빠, 아들이 같은 추억을 공유한다는 것. 미국인들에겐 야구의 역사에 가족의 역사가 투영된 다는 것. 옆집 Mark네는 아이들과 뒷마당 야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의 집을 샀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것이 이곳 명예의 전당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가 아닐까 한다.
이 작은 시골 마을 쿠퍼스타운엔 사실 야구만 있는 게 아니다. 이곳엔 미국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쿠퍼스타운은 그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쿠퍼라는 사람이 만든 마을'에서 유래했다. 'Cooper's Town'이 'Cooperstown'이 된 것이다. 이 마을을 세운 이의 이름은 Judge William Cooper.
그의 아들인 James Fenimore Cooper는 유명한 문학작가로, 발매 당시 미국과 유럽 모두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역사소설 'The Last of The Mohicans (모히칸 족의 최후, 1826)'의 저자이다.
미국의 독립 이전 시대인 '프렌치 인디언 전쟁(1754~1763)'때 영국인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벌어졌던 일을 다루고 있는데 뉴욕, 그것도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Lake George 옆에 있는 어느 요새(Fort Willam Henry)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먼 훗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성공을 거두게 되는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봤던 영화 '라스트 모히칸 (1992)'이 바로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것이다.
위대한 문학가가 살았던 이 작고 외진 마을엔 시간이 흘러 1920년대에 작은 변화가 생기는데, 대도시의 삶에 싫증을 느낀 어느 성공한 사업가 가문이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된다.
뉴욕시티에서 재봉틀 사업('Singer')을 운영하는 Alfred Clark이 이곳에 별장을 세웠고, 그의 네 아들 중 막내인 Stephen Clark은 쿠퍼스타운에 특별히 애착을 갖고 지역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된다.
야구 명예의 전당도 실은 그의 작품이고, 쿠퍼스타운의 또 하나의 볼거리인 '페니모어 미술관(Fenimore Art Museum)'도 그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미국 역사 소설의 시초가 된 James 'Fennimore' Cooper를 기념하여 이름 지어진 이 미술관엔 18, 19세기 미국 작품들, 원주민 미술을 주로 전시하고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지하 전시장에서 Keith Haring의 회고전을 하고 있어서 뜻밖의 좋은 시간이 되었다.
큰 형 Edward의 저택을 개조하여 만든 미술관의 뒷마당은 호수가 보이는 탁 트인 유럽풍 정원으로 되어있어서 한참을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Stephen의 둘째 형인 Robert Clark은 매사추세츠 Willamstown에 있는 Clark Art Institute를 설립한 사람이다. 이곳에는 루벤스, 르느와르, 로뎅, 드가 등 유명한 유럽 작품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https://tv.kakao.com/v/376314369
Fondly,
C. Par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