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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기 반장 May 14. 2024

크리에이터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어릴 때 나는 대체로 비현실적인 소설과 판타지, 무협지 등을 선호하지 않았다. 현실에 바로 적용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활동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과, 공대, 유통으로 이어지는 커리어를 쌓아온 것도 ESFJ의 성향과 밀접한 영향이 있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은 소설을 주로 읽고 글 쓰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게 아이러니다.)


소설이 나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해서였는지 내 안에 자리한 소설가의 이미지도 생경했다. 왠지 소설가라 하면 길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뿔테 안경을 끼고 개량 한복을 입었을 것 같은 자유로운 영혼, 천재 예술가인 동시에 괴팍한 지식인의 모습이 그려졌다. 술에 취해 일필휘지로 어느 날  갑자기 위대한 작품을 척척 써 내려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묘사한 소설가의 모습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직업인으로서 소설가는 천재보다는 범인에, 자유로움보다는 형식에 얽매인 사람으로 설명했다.


"평온한 교외 주택가에 거주하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전한 생활을 하고 날마다 조깅을 거르지 않고 야채샐러드 요리를 좋아하며 서재에 틀어박혀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작가라니, 그런 건 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게 아닐까, 나는 세상 사람들이 품고 있는 로망에 쓸데없이 찬물을 끼얹고 있는 건 아닐까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192쪽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으며 비현실적인 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크리에이터의 ‘오리지널리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엿볼 수 있었다. 동시에 하루키가 말하는 소설가라는 직업에 반전 매력을 느꼈고, 대작가의 솔직 담백한 고백에 용기를 얻기도 했다.


하루키가 소설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즐거움’이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단 한 번도 괴롭다고 느낀 적이 없다고 한다. 연애편지를 쓸 때도 책상 옆에 구겨진 편지지가 한가득 굴러다니는 모습에서 창작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법. 하물며 장편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무통주사를 맞지 않고서야 어떻게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


하루키는 그 이유를 ‘쓰고 싶을 때 즐겁게 쓰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즐거워서 글을 쓰기 시작한 내가 어느 날 조회수와 댓글, 좋아요에 집착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현타가 왔던 적이 있다. 하루키는 내가 즐거워야 독자도 즐거울 수 있다,라며 이 땅에 모든 글 쓰는 이들을 다독이는 것 같았다.


"내가 글을 쓰면서 즐거우면 그것을 똑같이 즐겁게 읽어주는 독자가 틀림없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 수는 별로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걸로 괜찮지 않은가. 그 사람들과 멋지게, 깊숙이 서로 마음이 통했다면 그걸로 일단은 충분하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261쪽


하루키는 신체력 또한 즐거움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설가는 마음속 깊은 어두운 밑바닥에서 이야기를 퍼올려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반드시 ‘피지컬한 강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란다. 저자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마라톤을 하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소설 역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 않는 강인한 체력과 인내심이 처절한 이미지로 떠올랐다.



출처 : https://boards.na.leagueoflegends.com/en/c/skin-champion-concepts/ohFrQXhR-champion-concept-cee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대어와 사투를 벌이는 노인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인간은 파괴될 수 있어도, 패배하진 않는다.)” 신체력을 기른 하루키는 소설가의 인내력으로 오리지널리티가 깃든 이야기를 낚아 올리고 있었다.


소설가란 지난한 과정을 즐기는 동시에 버텨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자격을 갖춘 자만이 오리지널리티를 선물로 받게 되는 게 아닐까. 저자는 오리지널리티란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그리고 틀림없이 그 사람 자신의 것인 어떤 것"이라고 정의한다. 과연 나의 오리지널리티는 무엇일까? 


조급해하지 말고 오늘 당장 즐거움으로부터 글쓰기를 시작해 볼 수 있다. 또한 이렇게 즐거운 글쓰기를 오래 지속하려면 신체력을 강화하는 운동 습관을 만들어야 한다. 일상과 일상이 더해지면 이상이 된다. 마찬가지로 즐거움과 신체력이 쌓여가는 하루하루가 모인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오리지널리티가 될 것이다. 


신선하고 에너지가 넘치며 틀림없이 나 자신의 것인 어떤 것은 이미 내 안에 싹트기 시작했다.




[이학기 반장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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