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시합은 ‘화이트 2그랄, 수련 6개월 이하’ 라는 비기너의 요건에 간신히 들게 된 화이트 2그랄, 수련 6개월 차에 출전했다. 다행히, 그날 우리 체육관에서 같은 시합에 출전한 선배들이 정말 많아서, 몇주동안 같이 체력훈련도 하고 스파링도 하면서 준비를 했다. 시합장에서도 같은 체육관 관원들이 서로의 경기가 벌어질 때 옆에서 맹렬하게 응원과 코칭을 해줘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 첫 경기가 열리기 전까지 긴장을 도무지 놓을 수가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날 나의 첫 번째 경기는 나와 비슷한 체격과 나이의 상대가 아닌, 나보다 최소한 10살, 최대로는 스무살이 어릴지도 모르는 20대, 그리고 체중도 나보다 얼마나 더 나갈지 알 수 없는 상대와 붙을 수도 있는 앱솔루트 경기였기 때문이다.
여느 격투기나 무술 시합처럼, 주짓수도 체급이 나뉘어져 있다. 체급 뿐만 아니라, 띠 별로도 나뉘어져 있다. 그러니까, 흰띠는 흰띠 끼리, 파란띠는 파란띠 끼리, 같은 띠끼리 경기를 치른다. 화이트 –68kg, 블루 –82kg.. 이런 식으로 말이다. 거기 더해, 출전 선수의 나이도 등급이 나뉜다. 키즈, 중등부, 고등부, 어덜트(만 20세 이상), 마스터1(만 30세 이상), 마스터 2(만 35세 이상), 마스터3 혹은 시니어(만 40세 이상)..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당시 내가 해당하는 부문은, ‘마스터3, 화이트 비기너, -88KG’ 이 되는데, 여기에 두 가지 악재가 발생했다. 우선, 내 체급에 마스터3는 고사하고 마스터2에 해당하는 나이대의 선수가 아무도 출전을 하지 않은 것이다. 주최측으로부터, 같은 체급의 마스터1에 출전하겠냐는 연락이 왔다. 주변 관원들 모두 뽐뿌를 넣었다. 어덜트도 아니고 마스터1이면 상대도 최소 서른이 넘었으니 할만하다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두 번째 악재는, 내 체중이 81-81.5kg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는 건데, 심지어 몇 달간 꾸준히 살이 빠져 더 이상은 체중조절이 잘 안되는 상태일 때, 그러니까 억지로 감량을 하지 않는다면 가장 상태가 좋고 가벼운 몸무게일 때였다는 거다. 그런데, 출전할 수 있는 체급이 –82kg, 혹은 –88kg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주짓수 시합의 계체는 도복을 입은 상태에서 이뤄진다. 도복은 가벼우면 1.5kg, 무거우면 2kg 쯤 된다. -82kg 체급에 출전하려면 안전빵으로 2kg 쯤은 감량을 해야했다.
그럴 일인가... 게다가 나는 날 잘 안다. 난 그걸 못 뺄거야. 억지로 단식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럼 시합장에서 이미 지쳐서 아무 것도 못 할 거야. 그래서? -88kg 체급으로 시합 신청을 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내 상대는 갓 서른에, 평체가 90이 넘는데 체계적인 감량으로 88kg를 딱 맞춰나온 상대일 수도 있는 게다. 내가 왜 이 시합에 나선다고 한 거지...?
그런데, 이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든 사태가 발생한다. 그걸 설명하려면, 아까 말하다 만 앱솔루트 부문에 대한 얘기를 마저 끝내야 한다. 앱솔루트 경기란, 말 그대로, 같은 띠, 같은 나이대의 선수들이, 체급의 구분없이 무제한급 경기를 치르는 걸 말한다.
주짓수의 꽃을 앱솔루트 경기라고도 말한다. UFC 플라이급 초대 챔피언이자, UFC 역사상 최다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 경량급 역사상 최고의 파이터, 드미트리우리 존슨은 요즘도 가끔 주짓수 대회를 나가는 모양인데, 플라이급, 그러니까 60KG 조금 넘는 그가, 한번씩 무제한급 경기, 그러니까 주짓수 용어로는 앱솔루트 부문에 출전해서 우승을 하는 기염을 토하곤 한다. 가장 최근에는 자기보다 체중이 못해도 한 30KG 넘게 나가는 블랙벨트를 메이저대회에서 꺾고 우승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보다 크고 빠른 상대를 제압하는 무술.
주짓수가 그걸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바로 앱솔루트 경기인 것이다.
첫 시합에 등록할 때, 다른 관원들의 달콤한 말에 넘어간 나는 앱솔루트 경기도 신청을 했다. 어차피 평체가 80킬로가 넘는데, 나보다 무거운 상대를 만날 확률보다 나보다 가벼운 상대를 만날 확률이 훨씬 높으니 신청해보라는 말은 일리 있어 보였다. 게다가 어차피 참가비를 내고 나가는 시합인데, 운 나쁘면 첫 경기에 지고 집에 오거나 구경만 하고 와야되는데, 간 김에 체급 경기, 앱솔 경기 두 개를 신청하는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 결정적이었다.
그런데, 마스터 3로 신청한 체급 시합이 마스터1로 바뀐 것도 모자라, 경기 전날, 출전한 선수들의 각기 다른 사정과 스케쥴로 이리저리 어지럽게 조율되고 변경되던 와중에, 내가 참가하기로 한, ‘마스터3, 화이트, 앱솔루트’ 부문 출전자들이 모두 출전을 포기하거나 체급 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엔 주최측에서도 민망하게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그.. 어덜트 부문은 나가실 수 있습니다...허허..’
마스터1도 아니고 어덜트...
그러니까 '20대 애들. 체중이 얼마나 나갈지는 알 수 없음..'
‘네, 그래요. 해볼게요.’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전화를 끊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번이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 시합이다, 제기랄.’
그리고, 시합날이 된 거다.
내 주짓수 인생의 가장 첫 시합은, 마스터1 체급 경기가 아니라, 어덜트 앱솔루트 경기였던 거다.
나에게 줄기차게 시합을 권유했던 퍼플벨트 형님이 나중에 나에게 말했다.
‘나도 서른 넘어서는 어덜트 시합을 나가본 적 없는데, 너 진짜 대단하다.’
놀리는 거야?
시합은 어떻게 됐냐고?
아니나다를까, 딱 봐도 90kg은 넘어보이는, 심지어 유도 경력이 있어보이는, 20대와 붙었다. 스탠딩 싸움에서 이미 나를 자빠뜨리려고 와사바리, 아 그러니까 발목받히기로 나를 넘어뜨리려고 줄기차게 시도했는데, 우리 관원들은 야유를 하고 항의를 할 정도로, 발목을 받히는 게 아니라 거의 걷어차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오히려 상대가 바로 가드 포지션으로 나를 끌고 들어가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몇주동안 계속 연습한 건, ‘닥치고 싱글렉’ 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까스로 균형을 잡으며 몸을 낮추고 버티다가, 내가 먼저 한쪽 무릎을 꿇고 들어가 상대 한쪽 다리를 끌어안았다.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는 상대 다리를 더 당기고 흔들고 위로 들어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심판이 우리 둘의 움직임을 멈췄다. 장외 판정.
아.. 시합이랑 스파링은 천지차이구나.
상대방도 내가 버티는 힘과 당기는 힘에 숨이 가쁜 듯 했다.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미 전완근은 다 털린 거 같은데, 몇분 남았지? 왜 안 넘어지지? 왜 못 넘겼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매트 가운데서 경기가 재개됐다. 나는 줄기차게 싱글렉을 노렸다.
상대는 와사바리를 관두고 상체를 낮춰 모드를 바꿨다. 옆에서 응원하던 관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형, 지금 먼저 가드로 가도 되요. 서서 버티지 말고, 가드로!’
하지만 난 다시 한번 싱글렉을 노렸다. 그리고? 실패. 바닥에 깔리고, 이리저리 괴롭힘 당하다가 키락에 걸려 탭. 끝. 앱솔루트 부문 첫 경기 광탈.
혼이 빠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경기가 끝나고서야 이제 몸이 풀린 듯 했다.
오후에 출전한 마스터1 체급 부문은 아무런 긴장도 없이 나섰다.
난 아까 유도도 배운 갓 전역한 20대 90키로 넘는 애랑 싸웠다고. 삼십대, 88킬로, 할만하지 뭐.
진짜 그랬을까? 진짜 그랬다. 내 상대방은 지금 나와 하는 경기가 오늘의 첫 경기인 듯 했다. 몸이 뻣뻣한 게 느껴졌다. 깃을 잡자마자, 앱솔루트 경기 때와는 다르게, 내가 당기면 딸려오고 내가 밀면 휘청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손쉽게 내가 원하는 가드 포지션으로 가서,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스윕을 시도했다.
가까스로 균형을 잡고 나를 뿌리치던 상대는, 나를 들어올리고, 나의 체중과 중력을 이용해서 내 가드를 깨뜨리려고 시도했는데, 그러다가 힘에 부쳤는지 다리가 풀리면서 나를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 치면서 내 위로 넘어졌다. 그러는 사이 내가 서브미션을 시도할만한 틈이 나왔다.
그걸 막 시도하려는 순간, 주변의 우리 관원들과 사범님이 큰 소리를 치며 뭐라뭐라하는 게 들렸다. 심판이 나와 상대방을 떨어뜨리더니, 매트 가운데 세우고 내 팔을 번쩍 들었다.
주짓수에서는, 상대방을 들어올려 바닥에 매다꽂는 행위는 치명적인 부상이 생길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반칙이다. 그걸 슬램이라고 한다. 들어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페널티가 주어지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즉시 실격.
상대방의 ‘슬램’ 반칙에 의한 실격. 나의 승리였다.
4강전을 치른 나의 결승전 상대가 직전 경기에서 부상을 당해 기권을 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어라? 금메달?
내 첫 시합이 그렇게 끝났다. 체육관에서 다들 축하를 해주었다.
내 시합을 참관했던 관원들이 다른 관원들에게 이런저런 얘길 했다.
‘아니 슬램을 당하면서 암바를 꺾으려고 하더라고, 저 형.’
‘저 형 지금 힘들다고 헉헉대자나? 근데 어덜트 앱솔루트 나가서 백키로 쯤 되는 유도 선출인 애를 넘길 뻔 했다니깐?’
‘저 형, 첫 대회에서 자기 나이대보다 두 개 낮은 마스터1 나가서 금메달 딴 형이야.’
나는 아무 말 안 했다. 그리고 완전 다 백프로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 뒤로 시합 안 나갔냐고?
시합에 나가려면 블루 감기 전에 나가야한다는 내 개인적인 생각은 변치 않았다.
그 뒤로 그랄을 하나 더 감을 때마다 한번씩 나갔다.
메달은 동메달 하나 더 챙겨오는데 그쳤지만. 뭐 어때.
깨달은 바가 있으면 되지. 내가 깨달은 건 이거다.
내게 있어서 첫 시합에 나서기 싫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는 것.
H의 말마따나, 최선을 다한 사람은 승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주짓수에 재미가 붙어 한 주에 서너번을 수업을 들으러 꼬박꼬박 체육관에 나오면서도,
한달이 넘도록 첫 스파링에 나서기 두려웠던 건 겁이 나서도 힘들어서도 아니라,
초보자이면서도 제대로 못하는 자신을 마주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첫 수업 때 온몸으로 느낀 것도 사실 이거다.
나는, 못하고 싶지 않아서, 모양 빠지게 발버둥치기 싫어서, 피하고 있다.
하지만, 준비가 되고 앞으로 나서고 나면,
완벽을 버리고,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 먹은 상대방과 마주했다면, 그럴 생각할 겨를은 없다.
그때부터는, 나의 평소실력과 상대방의 평소실력이 모든 영역에서 서로를 확인한다.
주짓수는 서로가 없이는 수련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이기거나, 상대를 통해 무언가 배우거나.
Win or Learn.
그럼, 첫 시합, 첫 경기의 패배에서 내가 배운 건 뭘까?
상대방이 뭘 두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혼자 두는 오목처럼, 나는 하나의 길을 계속 밀어붙였다.
하지만 상대방은 내 움직임에 맞춰 자신의 계획을 바꿨다.
주짓수 기술 수업은 언제나, 기본적인 하나의 기술과 상황을 알려주고, 그에 따른 상대방의 여러 가지 반응을 상정한 또 다른 베리에이션을 설명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니까, 반드시 이렇게 해야한다는 걸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럴 땐 이게 중요하고 저럴 땐 저게 중요하다는 걸 체득하는 과정이 된다. 이럴수도 저럴수도 있다. 유리해지기도 불리해지기도, 안전해지기도 위험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뒤집을 수 있고, 뒤집힐 수 있다. 다 끝난 것 같다가도 모든 게 50 :50 의 상황이 되기도 한다.
블루벨트가 되면 그제야 주짓수가 뭔지 좀 아는 상태라고 말하고들 한다.
나도 그런 것 같다.
3년차가 되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갔지만, 요즘 내겐,
주짓수를 생각하면 이 두 단어가 떠오른다.
Smooth & Flexible.
부드럽고 유연하게.
모든 걸 그렇게 대처할 수 있다면 좋겠다.
주짓수가, 그나마 그럴 마음이 생기게 해준 듯 하다.
자, 이제 이 에세이의 마지막 엔딩을 어떻게 해야할까? 아직도 질문은 계속된다.
나는 왜 계속 매트에 오르는가.
왜 다치고 아픈데 그걸 자꾸 하게 되는가.
주짓수는 어쨌든 무술이다.
명상의 연장선상에 있는 요가 같은 거랑은 다르다.
자기 수련이라고 하지만, 결국은 살상을 목적으로 하는 무술이 아닌가.
그러니까, 호승심?
강해지고 싶은 마음?
나를 이기고 싶은 건가?
나를 뛰어넘는 게 중요한가,
남을 이기고 싶은 건가?
무엇 때문일까..
왜 강해지고 싶은가.
아니 그것보다는 불안해하고 싶지 않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은 건가.
마음의 평화. 이너피스.
확실히 주짓수를 배운 뒤로, 화가 잘 나지 않는다.
그럼 다시, 명상을 하면 되는 거 아냐?
왜 그렇게 몸을 굴려?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이란 말이 있지만, 몸이 튼튼하면 머리를 안 써도 된다.
그런 의미에서, 몸을 굴리는 것이 의미가 있다.
태권도 5단에 유도1단에 180에 120키로의 거구인 내 후배가 주짓수를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한 적 있다.
한판으로 깔끔하게 상대를 넘기면 되는데, 넘어뜨려놓고 또 눌러놓고 관절을 꺾고 목을 졸라 더 괴롭히는게 맘에 들지 않는다며...
보통은 반대로 생각하지 않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빠져나올 수 있는 법을 배운다는 게 메리트인데, 이미 이 후배는, 자신이 그런 상황에서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의례히 자기가 제압을 하는 상황을 상정한다는 것.
실제로 몇 년간 주짓수를 수련한 내가 그 후배와 맞붙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후배는 주짓수를 배울 필요까진 없는 마음가짐을 이미 가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맘 먹으면 제압할 수 있다거나 혹은 누구에게도 쉽게 제압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바꾼 건가.
그런데 처음 주짓수를 아무것도 모를 때, 근거없는 자만심이 있었을 때와는 무엇이 다른가.
겸손을 배운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감과 겸손이 양립할 수 있다는 것.
이것 또한,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감각의 연장선상인지 모른다.
확실한 건 없다. 하지만 나는 나에 관해서라면 잘 안다.
그러니까 자신을 잘 아는 것. 내 위치를 아는 것.
중요한 건 자신이다. 자신을 알게 되는 것.
이제야, 나를 알아가고 있다. 나는 변한다. 변할 수 있다. 변해도 된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어쩔 수 없다. 어쩔 수 없다가도 달라질 수 있다.
이래도 나, 저래도 나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게 이건가 싶다.
고대 올림픽의 나라, 그리스의 시민답게 소크라테스도 레슬링을 수련했었을까.
스파링 한판 해보고 싶어지네.
자, 스파링 준비가 된 분들은 지체없이 앞으로 나오세요.
- F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