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장 거리가 먼 단어가 있다면 아마 ‘부단함’ 일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이 단어를 어디선가 읽는다면 대충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만, 내가 직접 글로든 말로든 ‘부단하다.’ ‘부단히’ ‘부단한’ 따위의 단어를 써 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본 적조차 없다.
부단하다는 단어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본 것은, 게리 비숍의 책 ‘시작의 기술’을 읽었을 때였다. 그의 또 다른 책 ‘내 인생 구하기’를 읽은 것이 먼저였다. 그야말로 ‘내 인생 이제 어떡하냐, 내 나이 마흔에, 난 더 커서 뭐가 될까, 에라이 아 몰라.’ 상태일 때 우연히 가판대에 놓인 책제목에 꽂혀 서점 안의 계단참에서 단숨에 다 읽고 나서 그의 다른 책 ‘시작의 기술’을 찾아보게 된 케이스로, 그야말로 맞춤형 자기계발 공포 마케팅에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아무튼 그 ‘시작의 기술’ 이란 책에는, 니 인생을 흘러가는 똥물에 빠트리지 말고 뭐든 시작해보라고, 그 시작이 어려우면 이 마법의 문장들을 되내어보라며, 7가지 문장을 제시하는데, 나는 그 문장을 한글과 영문 두가지 버전으로 적어 포스트잇에 붙여놓았더랬다.
책소개 칼럼이 아니니, 그 일곱 문장 중 한 문장만 인용할텐데, 이런 문장이다.
‘나는 부단한 사람이다.’
‘I am RELANTNESS.’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주짓수 도복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인 ‘킹즈’에서 나온 한정판 도복 중에도 이 ‘relantness’ 라는 이름의 도복이 있다. 그 이름을 붙인 양반도 주짓수를 하면서 나랑 똑같은 생각을 했나보지? 아님, 게리 비숍의 책을 읽었으려나.
부단함이라니. 내가 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부단하지 않고서는 절대 주짓수를 계속할 수가 없다. 초창기에는 하루에 한시간의 수업만 해도 숨이 턱끝까지 차서 너무 괴로워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미친놈인가 싶은 사람들 뿐이었다. 하루에 한시간이 아니라, 두 타임, 세 타임, 심지어 오전부까지 마치고 알바를 하고 와서 저녁 세 타임 수업을 다 듣는 진짜 미친놈도 있었다. 나는 수업을 받고 다음날 하루는 쉬어야 컨디션이 돌아왔는데, 이 미친 인간들은 이걸 매일하고 있는 게다.
그렇게 1년반에서 2년쯤 하면 이제 드디어 흰띠를 졸업하고 블루벨트를 받을 수 있는데, 그 다음엔 퍼플, 그 다음엔 브라운, 그리고 나면 블랙벨트가 되는 게다. 태권도나 유도로 치면 1년 좀 넘게 하면 감을 수 있는 까만띠를 10년쯤 하면 그제야 맬 수 있게 되는 게다.
내게, 자기도 목디스크가 있다며 살살 하면 된다고 입관신청서를 건네던 우리 관장은, 블랙벨트하고도 2단이었는데, 햇수로 17-8년 차였다.
내가 화이트 3그랄을 감을 때 즈음, 관장이 출장을 간다고 체육관을 1주 정도 비웠는데, 알고보니 그때 그는 월드챔피언 마스터 경기를 뛰러 해외로 나간 참이었다. 그는 UFC 선수였던 김동현이 운영하는 체육관의 주짓수 코치도 맡고 있었고, 초대 주짓수 국가대표였으며, 세계랭킹 11위라는 걸 후에 알게 되었다.
다른 관원들이 그를 부르던 오글거리던 단어가, 세 번째 그랄을 감을 때쯤 내 입에도 착 붙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관장을 나는 '사부'라 부른다.
주짓수는 그러니까 주친자들의 리그다.
주짓수를 접하고 나서의 길은 둘 중 하나, 많으면 셋 중 하나인데,
첫 번째는 첫날이나 길어야 첫 일주일을 하고 나서 다신 오지 않는 길,
그게 아니면,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블루벨트를 감은 뒤에 크로스핏이나 연애를 하러 뛰쳐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길.
그리고, 마지막 길은, 그렇게 매일 스파링을 할 때마다 바닥에 깔려 버둥거리고, 기술연습 때 자긴 바보 머저리라고 자책을 하면서도 블랙을 감으면 몇 살일지, 과연 그날이 올지 머릿속에 그리면서 그 다음날에도 멍든 다리와 다 까진 손에 테이핑을 하고 체육관에 꾸역꾸역 오는 길이 있다.
우리 사부는 '베림보로'라는 기술을 주특기로 하는, 매우 유연한 몸의 경량급 선수다. 베림보로라는 기술을 잘 쓰려면, 인버티드라는 동작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어야 되는데, 그 동작은 연습 때도 인버티드가 잘 되지 않는 관원들에겐 목과 허리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억지로 하지 말라고 하는 동작이다.
심지어 과체중에 허리디스크가 있는 내겐, 부단함 같은 단어처럼 상극인 셈이다. 얄쌍하고 유연한 몸으로 우리 관장의 시그니쳐 기술을 쫓아하는 어린 친구들도 있지만, 내 나이대의 배 나온 아저씨들도 많은 우리 체육관은, 그래서 스타일들이 둘로 나뉜다. 나는 그 두 번째 스타일에서도 특정한 한가지 기술을 집요하게 팠다.
나는 1년동안 줄기차게 바닥에 깔리면서, 계속해서 같은 기술을 연습했다.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동작들로 이뤄진 기술이다. 이게 안되면 그건 내가 제대로 하지 않아서다. 그런 생각으로 계속 했다.
그러는 동안 왼쪽귀는 계속 짓이겨져 피가 차서 부어올랐다. 그때마다 병원에 수차례 들러 피를 뺐지만, 결국엔 소위 만두귀가 되었다. 아주 천천히 타이밍과 정확도가 높아졌다. 정말로 1년이 걸렸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간헐적으로, 스파링에서 상대방을 스윕하고 아주 가끔은 가드패스를 할 수 있게 되는데까지 말이다.
모든 방법으로 끝까지 시도하기.
본명이 아닌 필명을 내세워야 쓸 마음이 들었던 내 자신의 이야기를 그야말로 배설하듯 써재꼈던 글들을 모으고 다듬어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고 주변인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영화와 책을 보며 드는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꾸준히 썼다.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고 유튜브를 했다. 독립출판을 하며 인연을 쌓은 동네서점 주인장과 함께 동네 프리랜서들의 모임을 만들었다. 다른 영역에서 혼자 일하며 부단하게 버티고 있는 사람들과 사소한 호의와 응원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Y에게, Y와 함께 봤고 몇 번이고 곱씹고 함께 얘기했던 영화들과 Y에 대한 글을 써서 보내주었다. 마지막으로 해야 할 무언가가 있다면, 글을 써서 마음을 전하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뺄 것도 덧붙일 것도 없는 글이었다.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때가 되면 더 이상 버티지 말고, 탭을 치기.
10년이 넘는 연애가 비로소 완전히 끝났다는 걸 인정했다.
독립출판한 책이 세상에 나올 때 즈음, JH가 연락이 왔다. 학교에 같이 다니며, JH와 나는 아주 자주 많은 날을 이말저말,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며 밤을 지샜었던 오랜 벗이다. JH는 졸업 후 몇 년간의 고생 끝에, 이윽고 드라마작가가 되어 10년을 꽉 채워 미친 듯이 일해왔고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다.
그러다가,내가 막 출간한 책에 담긴 글들을 그보다 1,2년 전쯤에 브런치에 조용히 쓰기 시작했을 때, JH는 그 글을 읽고 내 생각이 났다며 아주 오랜만에 다시 연락을 했고 그 이후로 다시 연락이 닿게 되었는데, 항상 그래왔듯, 이번에도 내게 먼저 연락을 해준 것이다. 내 근황을 묻기에, 나는 내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고, 이것저것 뭐든 하고 있다고, 아, 그리고 주짓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JH는, 자신의 10년의 커리어를 일궈 낸 회사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우리는 함께 일하기로 했다.
찐텐으로 싸우다 탭을 쳤으면, 첨부터 다시 시작.
JH가 새로 새운 회사의 이름을 같이 지었다.
얼마 후, 나는 블루벨트로 승급했다.
JH가 내 이름이 새겨진 띠를 선물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