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격투기를 많이 배워본 것은 아니지만, 내 짧은 경험에 기대보자면 주짓수가 다른 격투기와는 조금 다른 점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스파링과 시합의 차이, 또 하나는 탭을 치는 행위다.
입식타격의 경우, 시합을 뛰어본 적은 없지만, 태권도 대련이나 킥복싱 스파링이나, 시합과 스파링의 강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태권도장에서는 애초에 보호장구를 풀로 착용하고 하는 대련은 겪은 바 없고, 킥복싱은 보호대와 글러브를 착용하고 하는 스파링이라 해도 전력을 다 할 수가 없다. 시합 준비를 하는 경우라면 강도가 높아질 수는 있겠지만, 막말로 ‘세게충’ 소리를 들으며 상대방을 다치게 하겠다는 마음을 먹는 게 아니고서야, 왠만해서는 100퍼센트 찐텐으로 스파링을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주짓수는 좀 다르다. 심지어 스파링이 아닌 기술연습에서도 시합 때와 똑같이 상대방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술을 끝까지 구사해야하는데, 그래야 기술을 거는 사람이나 기술에 걸린 사람이나, 그 기술의 효과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깃초크를 연습한다면, 초보자들의 경우 자신의 기술이 제대로 걸렸는지, 그립이 정확하게 상대방의 경동맥을 압박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턱이나 목을 아프게만 하는데 그치고 있는지 분간하기 힘들다. 이건 연습을 통해 감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상대방의 목에 초크가 제대로 걸려야만 가능한 일이다.
관절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앵클락 같은 기술도 그립이 헐겁고 상대방의 발목을 제대로 고립시키지 못하고 각도가 모자라면 종아리 마사지에 그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려면, 정확하게 기술을 구사해야 한다. 기술을 거는 디테일 뿐만이 아니다. 보통은 상대방이 어떻게 방어를 하는지도 수업에서 같이 다루는데, 그렇게 상대방이 방어를 시도할 때, 그것을 넘어서는 빠른 움직임이나 근력이 발휘되지 않으면 연습이 되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연습 때도 진짜 상대를 제압할 마음을 먹고 기술을 걸어야 된다는 말이다.
상대방의 몸 위에 올라타거나 가슴, 팔, 다리 등을 압박하고 제압한 뒤 유리한 포지션을 점유하려고 시도하는 가드패스도 마찬가지다. 숙련자가 초보자를 상대로 가드패스를 연습하고, 초보자는 가드 리커버리를 연습한다고 쳐보자. 아무리 숙련자라도, 사력을 다하는 초보자를 건성으로 가드패스할 수는 없다. 어쨌든 정확한 타이밍과 순서에 맞게, 가드패스하는 순간만큼은 실전과 같은 속도와 타이밍으로 움직여야 한다. 초보자의 경우는 두말할 것도 없다. 초보자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 발버둥쳐야 가드 리커버리를 할 수가 있다.
넘어진 상대방의 가슴에 내 무릎을 얹어 나의 체중으로 상대를 압박하는 니온벨리라는 기술이 있다. 이 또한 마찬가지다. 숙련자가 초보자를 상대로 니온벨리를 구사할 때, 숙련자가 이를 대충 그냥 하는 시늉만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왜나면, 무릎에 체중을 싣고 다른 발로 땅을 딛고 상대방의 움직임에 따라 같이 움직이면서 몸의 밸런스를 계속 유지하지 않으면, 아무리 초보자라 해도 이를 뿌리치기 위해 움직일 때, 내 무릎은 상대방의 몸 위에서 바닥으로 그냥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초보자가 아무리 요령이 없고 근력이 약하고 심폐지구력이 딸려도, 니온벨리를 당하고 있으면서 그냥 대충 움직일 수는 없다. 필사적으로 그 포지션에서 벗어나려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자기 명치를 압박하는 상대방의 무릎은 점점 더 무거워질 거고, 이내 가드패스를 당할 거고, 그럼 더 고통스러운 포지션에서 결국은 서브미션에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니, 주짓수의 모든 연습은 결국 실전상황과 거의 차이가 없다.
오늘 수업을 걍 포기하고 놀러 온 요량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리고, 이런 연습이 가능한 이유는 탭이라는 게 있어서다.
정말 실전같은 연습이라면, 무릎이 꺾이면 십자인대가 파열될 거고, 암바에 걸리면 팔꿈치가 박살날 것이고, 초크에 걸리면 기절을 할 것이고, 기절을 했는데도 상대방이 그립을 풀지 않으면..? 아마 죽겠지.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가끔 일어나려나? 일어날지도 모르지. 다행히 아직 사망에 이른 관원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말이야, 방구야. 아, 물론, 시합을 가면 종종 초크를 버티다가 기절을 하는 선수들이 나오기도 한다. 니바, 암바를 버티고 역전승 한 뒤에 그 경기 이후 몇 년을 후유증에 시달리는 선수도 간혹 있고..
이게 다 단순한 동작 하나를 끝내 실행하지 않아서 생기는 불상사들인데, 그게 바로 탭이다.
내게 기술을 건 상대방의 몸에 내 손바닥을 대고 탁탁 두드리는 행위.
손을 쓸 수 없다면 내 발바닥으로 매트를 탁탁 딛거나, ‘탭!’이라고 소리내 말하는 행위.
혹은 많이 다급하다면 이 모든 걸 동시에 다 행할수도 있다. 나는 자주 그런다.
태앱! 이라고 소리치며 손바닥으로 상대를 두들기면서 발도 동동 구른다.
탭은 스스로 졌다고 인정하는 행위이다. 입식격투경기에서도 종종 세컨이 수건을 던져 기권을 하거나 부상에 의한 닥터스톱으로 TKO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경기를 하다가 자신이 스스로 이 모든 것을 멈춰달라고 주장할 수 있는 행위가 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주짓수는 연습 때도 모두가 상대방의 숨통이나 인대를 끊기 위해 백퍼센트를 발휘하지만, 탭 한 번으로 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간다.
상대방이 탭을 치면, 기술을 건 사람은 그 즉시 모든 행동을 멈추고 상대방에게서 떨어져야 한다. 탭을 치는 즉시, 승패는 결정되기 때문이다. 탭은 항복을 의미하지만, 다르게 말하자면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미도 된다. 지금 하는 이 연습이 목숨을 건 실전과 전혀 다르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탭 때문이고, 그렇기에, 탭을 치고 나서 다시 백퍼센트 전력을 다하는 또 다른 싸움을 곧바로 이어서 할 수 있다.
전심전력의 투쟁심과 완전하고 즉각적인 항복.
이 두가지에 대한 감각이 한시간이 조금 넘는 수업 중에 수십 번씩 반복된다.
그리고 그 효과는 부지불식간에 몸에 각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