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나 유튜브가 없던 때, 케이블 TV는 신세계였다. AFKN으로 보던 NBA나 WWF 프로레슬링 경기를 한국 캐스터들이 중계방송을 해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는, K-1, PRIDE, UFC 같은 격투기 경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최홍만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네덜란드로 대표되는 킥복싱, 태국의 무에타이, 일본의 가라데, 극진 가라데를 평생 수련한 푸른눈의 사무라이, 브라질의 주짓수, 레슬링 엘리트로 시작해 피맛을 알고 싸움꾼이 된 괴물들... 이종격투기라는 단어에는 이미 인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원초적인 흥미가 내포되어 있다. 누구랑 누구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하지만 누가 뭐래도 가장 기이한 사건은 그레이시 가문의 희한한 무술이었다. 일본의 유도가가 브라질에 정착해서 전파, 발전시켰다는 브라질리언 주짓수. 그 중 가장 체계적이고 강력한 레거시를 가진 그레이시 가문의 선수. 도복을 입고 등장한 80키로 남짓한 체구의 남자는 UFC 1회 대회에서 우승했다. 호이스 그레이시라는 그 남자는, 자신의 형은 자신보다 몇배는 세다고 말해 충격을 줬다. 호이스 그레이시는 다음 UFC 대회에서도 우승을 한다. 초창기 UFC를 그야말로 발 아래 두고 지배하던 그레이시 가문은 전세계를 충격에 빠트렸다.
입식격투 대회의 대명사였던 K-1과 이종격투기의 가장 큰 흥행을 이끌던 PRIDE를 둘 다 보유하고 있던 일본은 UFC 의 기세와 명성을 꺾고 싶었을 것이다. 호이스 그레이시는 결국 일본으로 불려왔다. 호이스 그레이시는 시간 무제한이라는 지금 기준으로는 거의 있을 수 없는 룰을 제안한다. 판정이 아니라, 반드시 탭을 받거나 KO시키겠다는 의지였으리라. 그와 맞붙은 것은 일본의 한 프로레슬러였다. 경기가 한시간 반이 넘어가던 때, 그레이시 측에서 수건을 던졌다. 호이스 그레이시가 기권패를 하고 나서, 그레이시 가문의 형제들이 그 프로레슬러를 잡으러 일본에 당도한다.
그레이시 형제들을 홈그라운드로 불러들여 연달아 승리한 ‘사쿠라바 카즈시’의 별명은 말 그대로 ‘그레이시 킬러’가 되었다. 그리고 사쿠라바 카즈시의 명대사, ‘프로레슬링은 강합니다.’는 프로레슬링이 쇼가 아니라 진짜라고 믿던 초등학교 시절의 나를 다시 소환하는 듯 했다. 일본은 격투기의 심장이 되었다. 수많은 연말이벤트나 콘서트가 있겠지만, 그 특유의 비장한 BGM과 함께 시작되는 ‘프라이드 : 남제’ 이벤트야 말로 역시나 한해의 최고의 마무리라 여기던 시절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야쿠자의 개입으로 중계권을 잃은 후, 일본 격투기는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각의 링을 주름잡던 프라이드와 K-1의 챔피언들이 UFC로 진출했다. 역시나 이종격투기의 본고장은 일본이라는 자부심으로 UFC를 침공했던 챔피언들은, 케이지에 갇혀 처참하게 두들겨 맞고 연달아 패배했다. 60억분의 1이라고 불리우며 10년 동안 단 한번의 패배도 하지 않았던 러시아의 얼음 황제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마저 그의 홈그라운드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UFC 출신 선수에게 하이킥을 맞고 기절했다.
그 사이, 각자 다른 도복과 트렁크를 입고 싸우던 선수들을 부르던 이종격투기라는 단어는, MMA라는 단어로 대체되었고, MMA 선수들은 모두 타이트한 파이트 쇼츠를 입게 되었고, PRIDE는 UFC에 흡수합병되었고, UFC는 명실공히 MMA의 대명사가 되었다.
시간이 썩어나는 대학교 복학생이던 나는, 그간의 변화를 방구석에서 모두 목도했다. 케이블 TV로 UFC 1회 대회부터 정주행을 했다. 킥복싱 베이스의 K-1 무패의 챔피언들이, 레슬링 베이스의 그다지 이름없는 선수에게 허무하게 패배하는 경기도, 가라데 기술 일변도로 싸우던 파란 눈의 사무라이로 불리우던 선수가 자신을 이긴 킥복서를 상대로 리벤지에 성공하는 경기도, 키 190에 몸무게 160키로이면서 체지방률이 10퍼센트가 넘지 않는, 아마도 스테로이드 약물을 양껏 주입한 걸로 보이는 인간병기 ‘밥 샵’이, 이름 그대로 크로아티아의 수호자인 ‘미르코 크로캅’에게 왼손 스트레이트를 맞고 안면이 함몰되어 주저앉아 흐느끼며 경기를 기권하는 순간도 보았다. 그 무시무시하던 크로캅이, ‘내가 경기에서 쓸 수 있는 그라운드 기술은 1000가지가 넘는다.’ 라던 ‘호드리고 노게이라’를 경기 내내 두들겨 패다가, 라운드 종료 직전 리버스 암바에 걸려 패배하던 경기도 실시간으로 보았다.
이게 다 무슨 얘기냐면, 돌이켜보면 나는 오타쿠였다는 소리다. 프로레슬링 기술 중 몇몇은 숱하게 실행에 옮긴 끝에, 정말로 잘못 따라하다 자칫하면 큰일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앵클락, 암바, 트라이앵글 초크는 어떻게 쓰는지 TV를 보고 배워 알았단 소리다.
Y와 H는 주짓수를 배우기 시작할 때 즈음부터 스턴트우먼에 관한 다큐멘터리 혹은 장편영화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그래서 그들이 찾아봐야 할 영화들을 내게 물어왔다. 무술팀에서 몇 년을 일했던 무술팀 동생들보다, 내가 장르별 액션영화를 더 많이 보았다. 액션스쿨에 다니는 몇몇 연습생은, 내게 생소한 무기라며 통파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했다.
이게 다 무슨 말인가. 무엇 때문에 이 얘길하고 있는가.
지금 그 말을 하려고 하니 민망해 계속 미루고 있는 중인데,
그러니까, 나는 처음 관장이 1일체험을 해보라고 권유를 했을 때,
나는 마음 한구석에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어떤 걱정이냐면...
태권도 2단, 킥복싱도 반년 정도 했고, ufc1회 대회부터, 프라이드, K-1, 연말 이벤트 남제 경기까지 다 챙겨보던...내가?
암바나 트라이앵글초크, 리어네이키드 초크나 앵클락 정도는 TV로 보고 연습해서 어떻게 쓰는지 알 정도인.. 내가 굳이?
프로레슬링, 홍콩영화, 무협영화, 헐리웃액션영화...
무술팀인 H보다 액션영화를 더 많이 봤고 액션스쿨 연습생에게 통파와 쌍절곤을 가르쳐주었던 내게..?
주짓수를 해보겠냐고?
누군가와 싸우고 싶긴 했다. 화도 많았다. 그래서 더 하기 싫었다.
그땐 진심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걱정이다... 그러니까 무슨 걱정?
초보랍시고 누구 따라왔다면서 겸연쩍어하더니 결국은 첫 체험에서 즐겁게 운동하러 온 고인물 생활체육인들을 내가 다 발라버려서 분위기를 이상하게 만들면 어떡하지?
이런 메타인지가 박살난 기우.
그리고, 다행히, 아니 당연히, 첫 수업이 채 끝나기 전에 메타인지가 돌아왔고, 멘탈이 박살났고, 더 나아가서, 물에 빠진 것 마냥 패닉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