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무책임한 것과 내 인생에 무책임한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분명 어떤 차이가 있을텐데, 무엇이 무엇에 먼저 영향을 끼치는 걸까.
이래나저래나, 어머니 말마따나 ‘올해도’ 결혼 생각을 하기엔 정신이 없던 건 사실이었다.
모두가 일자리를 잃어가는 마당에 난 각본 각색 계약을 했다. 원작 웹툰을 드라마화 하겠다던 제작사는 결국 머지않은 훗날, 뜬금없이 유튜브를 시작해야겠다며 헛발질을 하더니 드라마 제작은 엎어졌지만, 어쨌거나 나는 일을 마무리했고, 잔금을 받았다. 다시 광고를 찍고 기획서를 썼다. 1년은 버틸 수 있으리라.
그 즈음, Y는 수백억짜리 드라마의 스크립터로 일했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같이 산책을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었다.
바쁘고 분주하고 한가하고 조바심에 한번씩 불안해 짜증이 솟구치다 사라지는 날들이, 지난 10년과 똑같이 흘러갔다. 회사를 다니던 몇몇 후배와 친구들의 연락이 부쩍 늘었다. 그들은 전염병과 긴급조치에 당황했고 고민했고 힘겨워했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할 말이 없었다. 나의 지난 10년은 집합금지 명령에 막막해하고 긴급지원금에 매달려야하는 오늘과 한치도 다를 게 없이 흘러왔다.
Y는 A급을 넘어 S급의 작가, 연출, 배우진이 한자리에 죄다 모인 드라마 현장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무시당했고 따돌림 당했다. 뭣 같은 일들에 관한 긴 이야기이고 할 얘기가 많지만, 여기 쓸 이야기는 아니다.
Y는 일 하던 곳에서 나왔다. Y는 홀로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완성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것은 여기 쓸 이야기와 연관이 있다.
그 프로젝트를 도울 사람으로, 나는 내가 아는 후배 H를 소개시켜주었다. 이미 Y와 H는 구면이었다.
H는, Y가 연출하고, 내가 각색한 단편영화에 여주인공의 대역과 무술감독을 겸했고, 그 영화는 여러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고 입상을 했다. Y는 바로 그 단편영화의 수상경력이 포함된 프로필로 드라마 스크립터가 되었지만, 그곳에서 나오기 직전, 근무시간에 벌어진 술자리에서, 영어도 잘하고 계산기도 잘 두드리니, 차라리 그냥 사무실로 출근해서 회계를 배우고 해외전화를 받거나 영어 메일 답장을 쓰면 어떻겠냐는 말을 들었다.
H는 아마츄어 복싱을 했다. 국대 상비군이었고, 다른 수많은 운동을 했고, 크고 작은 영화에서 수많은 여배우들의 대역을 했고, 마찬가지로 뭣 같은 일들을 겪었다. 대부분의 일들은 여기 쓸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 중 여기 써야 할 게 하나 있다. H는 촬영현장에서 싸인에 맞게 몸을 날렸다. H를 제외한 서너명이 동시에 실수를 했다. 실수라기엔 너무 우연이고, 우연이라기엔 너무 한심한데, 말하자면 그 실수는 아무도 그 스턴트 장면을 위험하다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게으르게 일했기에 벌어졌기 때문이다.
시간을 재촉하고, 안전장치 확인을 대충하고, 무전도 잘 안되어 수신호를 주고받고, 전달사항을 빼먹고, 리허설을 하는둥마는둥 넘어간 채로 슛에 들어갔다. H는 마주 달려오는 두 대의 차량 사이에 몸이 끼었다. 그나마 충돌 직전에 몸을 띄워서 상반신 아래만 꼈는데, 그래서 엉치뼈, 볼기뼈, 넙다리뼈가 박살이 났다. 책임을 져야할 인간들은 바닥을 드러냈고, H는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 현장의 PD와 조연출과 무술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화장실도 혼자 못가는 상태의 H에게 24시간 간병인이 붙게 하려면 내가 전화를 해야한다는 사실에 Y는 분노했다.
Y와 내가 H의 병문안을 간 날, Y와 H는 의기투합했다. H는 이제 홀로 어떻게든 버텨내면서, 오로지 자신만의 프로젝트를 만들어내고 싶어했다. Y처럼.
Y와 H는, 그 둘 스스로가 오롯이 자신의 몸으로 자기 앞에 놓인 벽을 정면으로 돌파하는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내기 위해, Y는 자신의 뜻대로 몸을 쓰는 법을, H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법을 서로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몇 달 뒤, 다행히, 경이로운 회복속도라는 말을 드라마나 영화 대사가 아닌 실생활에서 듣게 된 H는,
목발이 필요없게 되었을 때 Y에게 주짓수를 배우자고 제안한다.
H는, 그 당시에 이미 5년 전에 주짓수 블루벨트를 감았다.
이후 스턴트 일을 하면서는 주짓수 체육관에 좀처럼 가지 못하는 상태였고, 그러니 자신도 다시 주짓수를 수련하면서 Y도 동참하길 원한 것이다. Y는 용기를 냈다. Y와 H는, 처음부터 나에게도 함께 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그 무엇에든 의례 그렇게 답해왔던대로, 똑같은 대답을 되풀이했다.
‘나는 지금은 그럴 정신이나 여유가 없어.’
언제쯤 그럴 정신이나 여유가 생기는 걸까. 아마 언제든 생기면 생기는 거겠지.
그리고 당연히, 영원히 그러지 못할 이유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그때의 나의 이유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은 이런 것들이다.
나는 몇 년을 머릿속에서 굴리고 메모를 하고 설정집까지 만들며 집착하던 아이템을, 결국 기획안으로 만들었는데, 마음 한켠으로는 이건 영화나 드라마화가 힘들 거라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내용도 판타지 sf인데다가, 어린 나이의 주인공들이 나와야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제약이 있어서였는데, 아니나다를까 각종 콘텐츠 공모전에서 여지없이 고배를 마시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OTT 플랫폼에 올라 온,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핵심장면이라고 생각했던 구체적인 이미지들이, 마치 내가 적은 메모를 보고 촬영하기라도 한 듯,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감독은 원작소설을 직접 쓴 작가였다. 그는 이 원작을 드라마화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을 했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다가, 마침 코로나 직전에 제작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는데, 제작이 완료되고 나서는 곧바로 코로나가 터졌다. 그 드라마의 내용은 마치 코로나를 예견이라도 한 듯, 현상황에 관한 우화로 읽히며 자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코로나는 물론이고 메르스가 있기도 전에 이 이야기를 생각했었지만, 여태 붙잡고 있으면서도 어떤 성과도 내지 못했고, 이제 내 원안보다 훨씬 풍성한 드라마를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꼴이었다.
뭐, 어쩌라고. 맞다. 뭐 그게 대수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냥 이런저런 모든 것들에 반응하며 굳이 화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문제인지 아닌지도 그때는 생각하지 않았다.
또 다른 자잘한 계기나 이유도 여럿 있었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는 커다란 규모의 도서전에 상하차와 도서 세팅을 하는, 그러니까 노가다 알바를 갔다가, 전시를 총괄하는 매니저가 나를 알아보고, (그는 내가 다른 현장에서 어떤 브랜드의 시리즈 광고를 촬영할 때 마케팅 책임자로 만난 적이 있었다.) 깜짝 놀라 감독님이라 부르며 여기서 뭐하시냐며 아래위로 훑어본 일이라던가,
요즘 업계가 힘들다며 그래도 넌 네 작품에 몰두하며 네 걸하니까 좋지 않냐며, 내가 쓰고 있는 시나리오를 자기한테 피칭해보라던 친구나, 그리고, 요즘 어떤 걸 쓰고 있냐고 집요하게 캐물어서, 마지못해 이런저런 걸 구상중이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직접 좀 더 대중적인 걸 해보시라며, 내 졸업단편이 재밌긴 했지만 자기에겐 내용이 어려웠다며, 이런 아이디어 어떠냐며 카페에 앉은 자리에서 읽어보지도 않고 잠시 들은 내 시나리오를 입으로 이리저리 뜯어고쳐보던 후배..
그리고 전염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회사생활이 너무 불안하다며 우리집까지 찾아와 한참을 떠들다가, 갑자기 나더러 빨리 결혼을 하라고 했다가, 자기 배우자와 싸운 이야기를 했다가 자식 자랑을 했다가 돈 걱정을 하다가, 혼자 넓은 방 두 개를 네 맘대로 쓰니 좋겠다고 부러워하다가, 그래도 사람이 혼자 오래 살면 이상해진다며, 금연했다더니 내 담배를 연신 내 방 안에서 피워대다가, 나와의 대화로 힘든 마음이 풀렸다며 웃는 얼굴로 돌아서던, 불안하다던 그 회사 명의의 리스로 새로 뽑은 포르셰나 골프 GTI를 끌고 사라지던 애들.
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라며 내 연락처를 어떻게 알아낸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미팅 자리에서 결국 단가를 후려치더니, 지가 짠 콘티를 지가 찍는 날 맘에 안 든다며 바꾸고, 그러면서, 바보같은 캐릭터를 넣어서 자신과 비교되게 웃긴 내용으로 찍자면서, 딱 봐도 안될 거 같은 아이템을 가지고 와서 자신이랑 협업을 제안하는 애들이 있다며, 그런 애들이 딱 이런 차림 이런 표정이라며 나를 가리키며 이름을 묻던, 경이롭도록 당당하게 ㅈ같던, 소개팅 앱 만든 회사 대표. 급조한 바보 캐릭터를 내 이름으로 부르더니 나보고 연기를 자기보단 잘 할 거 아니냐던 그 새끼.
나를 화나게 하는 건 언제나 사람, 관계였다.
비대면 거리두기로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다같이 서로 멀찍이 떨어져 동시에 시름시름 앓다가 조용히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마스크를 끼고 텅 빈 눈으로 듬성듬성 서서 배차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광역버스를 기다리며 목을 길게 빼고 있는, 나 아닌 다른 인간들을 보고 있을 때, 나는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우린 다 죽겠구나. 그때 그 실감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가.
그런데 주짓수라고?
복싱도 킥복싱도 스쿼시도 아니고... 주짓수?
서로 콧바람까지 느낄 수 있게 바짝 들러붙어서 피부를 맞대고 엎치락뒤치락해야 하는 그 주짓수?
H는 Y를 데리고 주짓수 체육관을 두 군데 쯤 돌아봤다. 실력이 괜찮은 유색벨트 고인물들과 신입 회원들이 골고루 많은 곳, 관장의 성격이나 실력이 마음에 드는 곳을 찾는 듯했다. 두 곳은 이런저런 걸리는 게 있어 썩 맘에는 들지 않는다며, 다른 곳을 또 찾아보겠다고 했다.
2021년 6월 9일.
세 번째로 찾은 체육관은 Y의 집에서 거리가 조금 먼 곳에 있었다. Y와 H는 굳이 내게 차로 데려달라고 했다. 수업시간 2-30분 전쯤에 맞춰 도착했다. 둘은 어차피 자기들이 1일체험을 하는 동안 나도 기다려야 하니, 체육관 구경이라도 하라며 나를 같이 안으로 데려갔다.
3층 엘리베이터를 내리자 마자, 도복을 입은 캐릭터가 그려진 통유리창과 유리문이 보였다.
멜론 TOP100 최신가요가 새나오고 있는 체육관 안 쪽은 파란색 매트가 깔려있고, 카운터 뒤로 메달이 수십개, 그리고 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을 번쩍 들고 포효하고 있는 사진들이 액자에 잔뜩 걸려있었다.
'H가 괜찮은 곳을 찾긴 했나 보군.'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카운터 앞 소파 빈자리에 털썩 앉았다. 센 척하고 싶거나 여유있어보이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냥 허리가 너무 뻐근해서 빨리 앉고 싶었다. 사진 속 관장이 턱걸이를 하다가 우리를 보고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오셨죠?’
H가 말했다.
‘아, 네. 1일 체험 해보려구요. 수업이 6시 맞나요?’
‘네, 주짓수 해본 적 있으세요?’
‘저는 블루벨트고, 여긴 처음이에요.’ H가 답했다.
‘오, 그래요? 잘 오셨습니다.’
Y와 H에게 탈의실 위치를 알려주고, 도복 사이즈를 묻는 관장의 무뚝뚝한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피었다.
소파에 앉아 카운터 쪽을 보니, 정수기도 있고, 어쩌면 복숭아아이스티 티백 같은 것도 있겠구나 싶었다. 수업 전인 것 같은데 이미 관원들이 많아 보였는데, 다행히 그 누구도 딱히 우리를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여기 소파에 몸을 구겨넣고 앉아서 있는듯 없는 듯 그냥 구경을 하다가 무사히 갈 수 있겠다 싶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스티 하나 타먹다가 내려가서 담배나 피고 올라와야지...'
내 시야에 관장의 손이 불쑥 들어왔다. 열손가락의 모든 손마디가 뭉툭하게 튀어나온, 두꺼운 손.
관장이 말했다.
‘형님은 옷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내가 보기엔 A2? 입으시면 맞을 거 같은데?’
‘아.. 전 얘들 데려다주러 온 거에요.’
‘1일체험은 공짜니까, 오늘 하고 다시 안 오셔도 되요. 혼자 앉아계시면 심심하실텐데.’
‘그게 아니라, 저는 허리 디스크 때문에 안되요. 나이도 있고.’
‘아...그래요?’
관장은 갑자기 래시가드 상의의 한쪽 어깨를 슬쩍 내리더니, 목 뒤의 수술자국을 보여줬다.
심지어 얼마되지 않은 상처처럼 보였다.
‘저도 그저께 목디스크 때문에 시술받고 왔습니다. 안 위험합니다. 살살하시면 되요.’
한시간 반 뒤, 나는 Y와 H와 함께 석달치 등록을 했다.
H는 세명이 동시에 등록을 했는데 뭐 없냐고 물었고, 관장은 그럼 첫 석달만이라면서 3만원씩 깎아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나는 그 날 패닉이 왔다. 왜?
아니, 애초에 왜 관장의 몇마디 말에 마음이 동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