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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Oct 27. 2024

뭔가 단단히 잘못되어 가는데 뭐 때문인지 모를 때

    긴급조치에 따라


2021년. 

코로나가 발병한지 1년.

허리디스크 재발로 응급실에 실려간지도 1년.


2017년 2월에 처음 입원한 뒤, 2018, 2019, 2020. 

매년 1월말에서 2월 초 사이에, 어김없이 걷지 못하는 상태로 병원에 실려갔다.


담당 의사선생님이 말했다.


‘앞으로 계속, 1년에 한번씩 이렇게 실려올 거예요?’


제대로 살려면 운동을 해야한다.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은 몇 년 째 쌓여왔다. 

살을 빼는 것이 첫 번째, 그리고 근력을 기르는 것이 두 번째, 그리고 나서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허리에 부담이 가지 않는 운동으로는 걷기 다음으로 수영이 최고라고 했다. 


수강료도 싸고 시설도 좋고, 그만큼 등록하기도 어렵다는 시립체육관의 수영강습을 신청하기로 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물을 무서워한다. 

수영을 배워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아니 사실 이 글을 쓰는 오늘까지도, 

2014년 4월에 있던 한 인명사고 때 스마트폰에 찍혔다는 사고 당시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지 못한다.


한달에 한 번, 정해진 날에만 열리는 수영강습 수강신청을 세 번에 걸쳐 시도했다. 

그러니까 시작점에 서는데까지 세 달이 걸렸다. 

지나고보니 차라리 다행이었는데, 그 세 달 동안, 나는 겨우 산책과 조금 빠른 걷기가 가능한 몸이었다. 

신호등이 깜빡일 때와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아주 천천히 뛸 수 있을 정도의 몸상태가 되었을 때, 수영 기초반 수강신청에 성공했다. 


세 달을 배웠다. 25m 풀을 자유형으로 겨우 갈 수 있게 되었다. 배영도 배웠지만, 양쪽 귀가 동시에 물에 잠기는 느낌이 들면 어김없이 몸에 힘이 들어가고 허우적대다가 물을 먹었다. 


네 달째 수강신청을 미처 하지 못했다. 코로나19 집단감염 확산에 따른 긴급조치로, 수영장은 폐쇄되었다. 


산책은 꾸준히 했다. 첫 입원 때 90킬로 중반까지 쪘던 몸무게는 그 동안 찌고 빠지고를 반복하다, 이제 다시 90키로 초반, 80키로 후반까지 내려앉았다. 2021년 2월은 구급차를 타지 않고 지나갔다.



    무엇에 대한 어떤 책임들


구정 때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앞으로 1년간의 먹고 살 궁리를 해봤다. 자잘하게 잡혀 있는 바이럴 광고와 공기업 홍보영상 촬영 스케쥴을 정리했다. 밥벌이가 대충 어떻게든 떼워지면, 그리고 나서 이루고 싶은 것들을 정리했다. 그러니까, 모든 제작지원이니 시나리오 공모전이니 하는 것들을 리스트업했다. 설 당일 오전, 텅 빈 시가지의 까페에 앉아서, 부지런해 보이는 내 모습을 뿌듯해했다. 하지만 그날의 가장 어려운 스케쥴이 남았다.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 집에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짧고 퉁명스럽게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전화기를 건네받은 어머니와 긴 통화를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있는 거실에서 멀찍이 떨어진 작은 방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조용히 말했다. 


‘너흰 그래서, 올해에도 결혼은 안 할 거냐? 정말 무슨 생각이냐?’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요즘 좀 바쁘다고, 근래 정신이 좀 없었다고, 차후에 상황이 좀 나아지면 알아서 할 거라고, 이런저런 레퍼토리를 돌려가며 대꾸하면 그만인 것을, 

나는 처음으로 진심을 말했다. 나는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도, 언제라도, 그 누구와도 그럴 마음이 들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엄두가 안 나는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생각만해도 몸서리쳐질만큼 싫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후의 말은 용케 참았다. 


나는 이 세상에 한 명의 인간이 더 늘어나는 것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랑하고 서로 아끼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자식 걱정을 하고 자기계발을 하고 인생 2모작을 계획하고 근사한 은퇴계획을 세우고, 그게 사람 사는 순리이며, 더 나아가 바로 그런 게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인간들이, 전지구적인 전염병으로 인해 서로 억지로 거리를 두고, 표정을 가리고, 띄엄띄엄 앉아있거나 혹은 각자의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 덕분에 한산하고 조용하고 조금은 침울해진 지구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그러니까, 말하자면, 세상살이의 보편적이고 당연한 속도와 모양을 쫓아 성장을 도모하고 집과 차를 바꾸고 카시트를 사고 싸우고 화해하고 마트에 가고 카트의 짐을 트렁크에 넣고 카트를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주차권을 발권하고 투병하고 간병하고 운동하고 취미생활을 하고 눈이 맞고 바람이 나고 이혼하고 재혼하고 연애하고 끔찍이 아끼고 실망하고 물심양면으로 돕고 발목을 잡고 혐오하고 무시당하고 모욕을 주고 웃고 뒤돌아보고 추억하고 행복하고 슬프고 기쁜 모든 게 진절머리난다고. 


하지만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시작하면 끝없이 뇌를 거치지 않고도 저절로 입 밖에 흘러나올 그 말들을 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내가 인간의, 자식의 도리를 의식하고 있음이라고 생각하는 동안, 핸드폰 너머로는 잠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의 여보세요 라는 말에 냉장고에 김치는 남아있냐는 답이 왔고,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너를 두고 이렇게 말하는 건 나도 처음인데, 너는 정말, 세상 뿐만 아니라 니 인생에도 무책임한 거 같다.’


보통은 내게 먼저 전화를 끊으라고 말하는 어머니는, 그 말을 하고 나서 먼저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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