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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Oct 27. 2024

끝까지 발버둥치고, 그래도 안 될 수 있단 것도 깨닫기

    첫 수업의 당혹감


수업은 간단한 워밍업과 드릴, 그날의 기술연습, 그리고 그걸 적용한 포지션 스파링, 그리고 자원하는 관원들에 한해 자유 스파링으로 진행되었다. 처음 온 신입관원을 위한 따로 마련된 커리큘럼은 없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신입인 나를 오래 다닌 관원이 맡아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그래봤자 그 관원도 흰띠였다. 그러니까 파란띠 H 보다 한참 경력이 적다는 소리. 흰 띠에는 하얀 줄이 세 개 감겨있었다. 그 줄이 하나인 사람도, 네 개인 사람도 있었는데, 어쨌든 다 흰 띠 아닌가. 워밍업과 드릴은 어찌저찌 따라갔다. 


기술연습도 다행히 크게 생소하지 않았다. TV로 숱하게 보아온 마운트 자세. 상대가 누워있는 내 배 위에 올라타 있는 포지션인 마운트 자세에서, 깔린 내가 거기서 벗어나는 이스케잎 방법, 그리고 상대와 내 위치를 바꿔놓는 스윕. 이 두가지를 배웠다. Y는 생전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과 동시에 재미를 느끼는 듯 했다. H가 Y의 파트너가 되어 차근차근 일러주는 게 보였다. 


내 연습 파트너가 된 상대는, 나보다 족히 20키로는 덜 나가 보이는, 얄쌍한 몸매의 긴머리의 남자였다. 긴팔 래시가드 밖으로, 손목에까지 가득 빽빽하게 그려진 치카노 스타일의 문신이 보였다. 친절하게 웃으며 하나하나 개념 설명을 해주는데, 마운트 포지션 정도는 뭔지 안다고 굳이 아는 척을 하는 것도 뭣해서 그냥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에 반응했다. 하지만 내심, 가장 기본이 되는 동작인 새우빼기나 한쪽 베이스를 완전히 없애고 그쪽 방향으로 스윕을 시도하는 개념 등은 완전히 새로운 거라 사실 재미있게 수업을 들었다. 


‘아, 이런 거구나. 뭔지 알겠네. 뭐... 재미는 있네. 그런데 낯선 사람이랑 너무 밀착해서 몸을 부대끼는 게 좀 민망한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 Y는 H와 함께 다니니 H가 항상 Y의 파트너를 맡아 챙겨주면, 수업 때 덜 민망하겠단 생각을 했다. Y는 주짓수를 배우는 게 엄청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도 했다. 도복이 생각보다 두꺼워 땀이 많이 흘렀다. 나는 얼른 집에 가서 씻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기술연습 시간이 끝이 났다.


그리고, 포지션 스파링을 했다. 나와 파트너가 돌아가며, 서로 마운트 포지션을 점유하고, 아래에 깔린 사람이 오늘 배운 걸 포함해서, 자신의 몸으로 뭐든 다 해서 마운트 포지션을 벗어나는 연습. 먼저 상대가 내 몸 위에 올라탔다. 


‘잘 부탁드립니다.’


상대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을 맞부딪히고 주먹인사를 했다. 모두가 그렇게 인사를 하는 듯 했다. 나도 똑같이 따라했다.


’내가 그냥 힘으로 들면 들릴 거 같은데?‘


내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상대는 내 목깃을 잡고 턱을 누르고, 다른 팔로 내 겨드랑이를 파고 들고, 싸잡고, 몸을 밀착하고, 무릎을 위로 밀어넣어 내 겨드랑이를 열고, 나중에 알게 된 용어지만 하이마운트를 잡고, 내 양팔을 옴짝달싹도 못하게 만들더니 그 상태로 S 마운트로 내 가슴에 자신의 모든 체중을 실어 올라탔다. 순식간에 내 한쪽팔을 낚아챘다. 내 손목은 마치 낚아채기 편하게 준비된 것처럼 힘없이 딸려갔다. 암바다. 어디서 본 것은 있으니까, 나는 나름 방어를 한답시고 손깍지를 꼈다. 상대는 내 가슴 위에 완전히 올라탄 상태로 내 양팔 사이에 자신의 발목을 비집어 넣더니 툭툭 차서 내 그립을 뜯었다. 그립이 뜯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는 아예 숨을 쉴수가 없었다. 너무 힘든데? 숨이 안 쉬어져. 이마에서는 무슨 드립커피 마냥 땀이 송글송글 계속 배어나와 흘렀다. 


관장이 우리 쪽으로 오더니, 치카노 문신 멸치에게 한마디 했다. 


’서브미션 하지 말고! 마운트 유지만 해.‘


치카노가 머쓱해하며 내 몸 아래로 내려와 다시 마운트 자세를 잡았다. 그제야 숨이 좀 쉬어지면서 살 것 같았는데, 치카노가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네.‘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척 할 수 없는 표정으로 짧게 대답을 했는데, 치카노가 다시 손바닥을 내민다. 인사를 하자마자, 치카노가 다시 내 팔목 소매와 목깃을 잡고 내 가슴 위쪽으로 더 높게 올라오려 한다. 겨드랑이에 팔꿈치를 붙여 방어해야 한다. 이건 아까 배웠다. 그래, 정말 그게 중요하구나. 안 그러면 ㅈ되는 거네. 배운대로 이번엔 방어를 했다. 방어를 하려고 해봤다. 브릿지를 해보라고 치카노가 말한다. 발목을 걸고, 자신의 한팔을 잡아둬야 된다고, 베이스를 없애고 스윕을 해야된다고...


하지만 숨이 안 쉬어진다. 미칠 거 같다. 그 사이 치카노는 하이마운트로 올라탄다. 다시 양팔로 무릎을 미친 듯이 밀면서 상체를 위로 올리며 방어를 해본다. 상대는 내가 브릿지를 할때마다 로데오 선수처럼 균형을 잡으며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분명 2분간 서로 바꿔가며 연습을 한댔는데, 2분이 아직 안 지났다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물에 빠진 것 같다. 숨이 안 쉬어지고, 아무 생각이 안 나고, 공황이 온 것처럼 머리가 하얘지고 순간 덜컥 너무 겁이 난다. 뭐가 겁이 나는건지도 모르고, 그냥 발버둥을 치다가, 그마저도 소용없고, 그조차 시도할 여력이 없어진다. 그냥 대자로 뻗어 팔다리가 축 늘어진다. 관장이 내 쪽을 보며 말한다. 


’마지막 30초! 끝까지~! 끝까지!‘


치카노가 말한다. 


’계속 움직이고 어떻게든 싸워야 되요. 배운 게 안 되면 아무렇게나 계속 움직여서 저를 흔들어 보세요. 제가 기우뚱해서 바닥에 손을 짚게 만들어 보세요. 뭐든지 해야되요.‘


뭐든지...


그래. 물에 빠졌을 때 모양 빠진다고 팔다리 휘젓는 걸 관뒀던가.

불이 났을 때 옆집에 점잖게 노크하며 말을 걸텐가.



    회피를 멈추고 뭐든 할 것


처음 체육관을 방문한 순간, 메타인지가 고장났을 때 했던 쓸데없는 기우 말고,

사실 마음 속 깊이 피어오르던 더 솔직한 걱정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랐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목공을 배웠을 때는 하지 않던 걱정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잘 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고 싶지 않았다.

물론 커피나 목공을 배울때도 그 상태를 넘어서야 하는 부담은 똑같이 있었다.

그때도 낯선 사람들과 긴밀하게 부대껴야하는 허들은 똑같이 존재했다.

하지만 이건 다르다. 주짓수는 또 다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동경하고 흠모하는 어떤 이상이 있는 영역에서,

그걸 잘 해내지 못하는 나를 확인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 사장이나, 나무 의자를 만드는 한량 같은 건,

어쩌면 해봄직하다거나 재밌겠다거나 이도저도 안되면 한번 해볼까할 정도의 영역이라면, 


주짓수라는 생소한 단어로 대표되는 그 영역은, 내 10대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줄곧 집착 혹은 섭렵해온, 요즘 말로 하자면 추구미? 17 대 1까진 아니라도, 1 대 1로 맞다이를 까면 상대 풍체가 어떻든 아우라가 어떻든, 눈을 깔거나 쫄거나 몸이 얼어붙는 일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한다는 강박이 언제부터 있던 걸까. 모든 선생님이 남자이고, 양호선생님마저 양호아저씨였던 남중을 졸업하고, 남고를 거쳐, 신병교육대 조교까지 하면서 더 고착화된 걸까. 


나는 그러니까 싸움에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던 거다.

쉽게 말하자면 개털려서 개털이 돼서 뽀록이 날까봐. 아무도 그걸 가지고 뭐라하지 않을텐데고 혼자 그랬다. 커피를 배우러 가서는, 톱질을 하면서는 그러지 않았던 것을, 주짓숫 체육관에서는 그러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나는 내심 자신도 있었던 게다. 이왕 이렇게 된 거면, 내가 낸데. 그 가락이 어디 가겠어? 싶었던 게다. 그런데, 씨도 안 먹히는 걸 넘어, 숨이 안 쉬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 그대로, 나는 발버둥을 쳤다. 물에 빠졌을 때와 매한가지로, 치카노가 뭐든 해보라고, 끝까지 해야한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 남은 30초 동안, 정말로 지랄발광을 하며 버둥거렸다. 그리고, 나는 계속 바닥에 깔린 채로, 시간이 다 지나갔다. 


그때, 나는 주짓수를 등록하기로 결심했다. 너무 상쾌했다. 발가벗은 기분이었다. 별이 쏟아지는 사막 한 가운데 천장이 뚫린 야외 샤워장에서 뗏국물을 씻어낸 기분이었다. 


’나 뭐 ㅈ도 없구나. 그런데 뭘 자꾸 내외해. 인생 안 살래?‘


영화 시나리오를 쓴다는 것도 그런 심정으로 대했던 것 같다. 

’내 껄 해야하는데...제기랄...‘

이런 식의 핑계를 댈 수 있는 절묘한 공간을 파고들어, 나를 갉아먹으면서 새디스트식의 자위를 한 걸지도 모른다. 


발버둥을 쳐야 한다. 뭐든 해봐야 하고, 끝까지 움직여야 하고, 그래도 안될 수도 있다.


2분동안 포지션 스파링을 하고 나서, 그야말로 온 몸으로, 숨이 다하도록, 뼈가 저리고 근육이 터질 것처럼, 이 단순한 사실을 깨달았다. 


첫 수업이 끝나고, 우리 셋은 다 함께 석달치 등록을 했다.


저녁에 운동을 하니 일찍 잠들었다. 스파링을 하다 심폐지구력이 딸린다는 생각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침 조깅을 시작했다. 


Y와 H는 몇 개월 뒤 두어 곳에서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을 받았다.


나는 실존했던 과학자들을 모티브로 습작 삼아 SF 단편소설을 썼다. 

공기업에 다니는 친척에게 다시 콜백을 해서, 전국 11군데를 돌아다니며 촬영해야하는 홍보영상을 내가 맡겠다고 했다. 


6개월 뒤, 화이트 2그랄을 감았다. 

(주짓수는 화이트벨트, 블루벨트, 퍼플벨트, 브라운벨트, 그리고 블랙벨트의 순서로 승급한다.

 그리고 다음 단계의 벨트로 승급하기 위해선 각 벨트에서 1~4 그랄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연말이 되었다. 바쁘게 지냈다. 저녁 시간을 보낼 다른 자잘한 취미가 다 사라졌다.

담백하고 심플하게 솔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미니멀리즘을 했을 때와 비슷했는데, 그때보다 더 실행력과 결단력이 더 생겼다. Y도 그랬으리라.


새해가 오기 전,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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