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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pt Oct 27. 2024

스파링에 나서기 완벽한 상태란 없다.


주짓수 체육관에서 기술연습이 끝나면 스파링이 시작된다. 스파링은 강제성이 없는데, 이래나저래나 주짓수도 격투기라서, 결국은 부상의 위험이 아예 없진 않기 때문이다. 자원하는 사람에 한해서 진행이 되는데, 다른 곳은 어떤지 가보지 못해 모르지만, 우리 체육관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이런 식이다.


우선 다들 도복 매무새를 가다듬고, 물도 한 잔 마시고 땀도 닦고 있자면, 그 날 수업을 진행한 관장님이나 사범님이 말한다. 


‘스파링 준비된 분들은 앞으로 나오세요.’


그 말과 함께, 스파링 준비가 된 사람들은 앞으로 나와 한쪽 벽에 일렬로 선다. 도열한 관원들을 보며, 지도자는 관원 각각의 경력과 체급, 그리고 각각의 주짓수 성향에 맞게, 스파링 파트너를 짝지어 준다. 어그레시브하고 덩치가 큰 관원은 그걸 잘 받아줄 선배를 붙여준다거나,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는 초보자에게는 가드 플레이를 하면서 공격을 잘 이끌어낼 선배를 붙여준다거나, 시합이 임박한 관원에게는 사범이나 관장이 직접 스파링을 해서 부족한 점을 체크해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어쨌거나 스파링이 아직 무섭거나, 몸 상태가 별로거나, 아님 그냥 기술수업만으로도 너무 지쳐서 쉬고 싶다면 매트 한켠 구석으로 물러나 스파링을 참관한다. 남이 스파링을 하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자신과 체격이 비슷하거나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한 다른 관원의 스파링을 보면서 자신에게 모자란 부분을 학습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직접 스파링을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아니, 좀 더 과장해서 말하자면, 스파링을 하지 않으면 주짓수를 배우지 않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복싱으로 치면, 샌드백이나 미트를 치는 것과, 움직이는 상대방에게 내 펀치를 맞히는 것의 차이 정도일까. 미트를 아무리 예쁘게 쳐도, 정작 스파링 때는 자세가 다 무너지고 호흡이 엉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주짓수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적절하게 자세를 잡아주면서 관절기나 초크에 걸려주는 기술연습과, 사력을 다해 방어하는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도를 미리 들키지 않으면서, 상대방의 완력을 이겨내면서 내 기술을 성공시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시합에 나서는 것은 스파링과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주짓수가 그 무술의 특성상 스파링 때도 실전과 거의 흡사한 강도로 연습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같은 체육관 관원들이 매일 몇 번씩 진행되는 매번의 스파링에서 절대지지 않으려고 무리해가면서까지 탭을 치지 않고 버티면서 카운터를 치거나 목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도록 상대방의 목깃을 움켜쥐고 뒤흔들거나 손가락이 삘 기세로 그립을 뜯어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시합에서는 그 모든 일이 일어난다. 더 크고 중요한 시합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게다가 아드레날린이 솟구친 상태에서 시합 중에는 통증을 잘 느끼지도 않으니, 그냥저냥 생활체육대회니 뭐 체육관에서 하던 스파링이랑 뭐가 크게 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시합에 나섰다가 당황하는 경험은 모두가 겪었을 것이다. 


내가 시합을 나가는 걸 망설이고 있을 때 한 선배가 내게 해준 말이 시합을 딱 한번만 경험하고 나니 곧바로 이해됐다. 


‘내 기분에는, 내가 흰 띠일 때, 기술연습 수업만 반년 듣는 것보다 스파링을 한달 하는 게, 그리고 그것보다 시합을 한번 나가는 게, 주짓수가 더 빨리 는 거 같아.’


그런데, 나는 첫 스파링을 하기까지도 한달이 걸렸다. 물론 처음 오자마자 자신이 원한다고 해서 곧바로 스파링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지는 않는다. 일단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룰이 있는지, 무얼 목표로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하는지 최소한은 알 수 있어야 스파링에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 간의 차이는 뚜렷하게 존재한다. 이를테면, 유도나 레슬링을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스탠딩 싸움이나 테이크다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으니 기술을 이해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훨씬 빠르다. 몇몇은 주짓수를 배운지 며칠 지나지 않아 곧바로 스파링에 나서고, 몇몇은 몇 달 혹은 1년을 배운 선배들을 상대로 테이크다운과 가드패스를 쉽사리 성공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결국은 나와 똑같이 의지와 체력과 지각을 가진 누군가를 상대로, 서로가 제압을 하기 위한 모든 수를 써야 하는 상황에 스스로 걸어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억지로 누군가가 등을 떠밀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준비가 되면 앞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준비’가 완벽하게 된 순간이라는 건 결코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물론 준비를 하긴 한다. 시합 몇주전부터 체력을 끌어올리려고 오전부, 저녁부 수업을 모두 들으면서 수십번의 스파링을 하기도 하고, 따로 웨이트를 하기도 하고, 특정 상황에서 특정 기술을 성공시킬 확률을 높이기 위해 반복적인 드릴 훈련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준비를 해도, ‘이제 됐다.’ 라고 단언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오히려 얘기치 못한 변수가 생기는 경우가 생기면 모를까. 시합 며칠 전 인대가 살짝 늘어난다거나, 발목을 삔다거나, 손가락이 꺾인다거나, 시합 전날 잠을 잘못자서 목에 담이 걸리거나, 소화불량이나 감기에 걸린다거나 하는 일은 다반사다. 그러니, 그 준비된 상태라는 게 도대체 언제 어떤 식으로 찾아오느냔 말이다. 


물론, 프로 격투기 선수라면 그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기본이겠지만, 모든 것에 만전을 기하는 프로 선수들마저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그러니까 자신의 훈련과 그래서 준비된 자신의 최선에 대해 백프로 단언하지 않는다. 트래쉬 토킹을 하면서는 그럴 수 있겠지. 1라운드에 기절을 시켜주겠다던가, 한손으로 싸워도 될 정도의 상태라던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어떤 격투기라도 단 한번의 시합을, 아니 스파링을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최선을 다하겠지만 완벽은 없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것은 모두의 기본이라는 말 또한 뼈저리게 실감한다. 매트 위에서, 링 위에서, 이만하면 됐다며 관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폐지구력이 딸려 숨이 가빠지고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을지언정, 그 전에 그냥 드러눕는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상대방에게, 나 또한 똑같은 존재다. 나는 멈출 생각이 없다. 그러니, 그런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럴 수 있게 완벽하게 준비가 된 나의 상태라는 것은 그냥 판타지다. 


그럼 걍 모든 게 운인가. 그날의 컨디션? 날씨? 습도? 온도? 몸무게? 내 땀냄새나 입냄새가 상대에게 트라우마를 입힐만큼 지독한지의 여부?


H는 예전에 아마추어 복싱을 했을 때 얘기를 하곤 했다. 자신은, 링에 올라간 그 순간, 승패는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럼 걍 천부인권설 마냥 천부승패결정권 같은 게 있단 말인가. 모든 게 신의 뜻, 인샬라인가. 그게 아니라, 더 이상 뭘 더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 그럼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다는 자기확신에 찬 말인가. 그런데 이상하다. 그런 자기확신이 있다면, 승패는 결정되어 있다고 말할 게 아니라, 링에 올라간 순간 승리를 확신한다고 말해야되는 것 아닌가. 


H의 말은 그러니까 이런 뜻이다. 자신은 상대를 분석하고, 자신을 가다듬고, 게임플랜을 수행할 근력과 카디오와 순발력과 지구력을 단련하고 생각하기 전에 이미 몸이 움직일 수 있을 정도로 반복숙달을 했고, 그렇다면 이제 승패는 자신과 똑같이 ‘준비’해왔을 상대방과 자신이 맞붙었을 때, 단지 거기에 딸려오는 결과일 뿐이라는 소리다. 그러니까, 공이 울린 뒤에, 그제야 그 순간에 그 곳에서 무언가를 더 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럼 그게 완벽한 준비가 된 상태가 아니고 뭐냐고 내가 물었을 때, H는 말했다. 


하지만, 몸 상태가 최고였던 어떤 경기에서는 졌고, 

시작하자마자 손가락이 부러진 상태로 싸운 어떤 경기에서는 이겼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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