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들은 죽으면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이 말이 슬프다. 그리고 그 미련함에 조금은 반발감이 든다. 그 짧은 생을 내내 이기적일 인간만을 바라보다 떠났으면 다음 생은 부디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 빌기나 할 것을. 그리하면 언제든 눈가를 두드리는 눈부신 작열을, 코끝을 스치는 청록의 향내를 맡으며 그 문을 박차고 나갈 수 있을 텐데. 늘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며 그 애정을 온 마음으로 속삭일 수 있을 텐데 말이야.
나는 언제나처럼 주문을 받았다. 옵션 변경으로 고객과 간단히 메시지를 주고받은 뒤, 요구사항에 맞춰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짜낸 것을 포장해 발송까지 마쳤다. 늘 그렇듯 보드라운 털을 지닌 채 앙증맞은 발자국을 찍어낼 아이와 그 모습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볼 보호자를 상상했다. 그러나 며칠 뒤 돌아온 후기는 예상치 못한 내용이었다.
“워낙 케이프가 잘 어울리던 아이였는데, 별님이 되고 나서도 예쁘게 입혀주고 싶어 구매했어요
…
… ”
정성스레 짜낸 편물이 둘러있어야 할 위치에는 어쩐지 개구쟁이 같은 표정의 고양이 사진만이 멀거니 올려져 있었다. 근처에는 아마도 그 녀석이 좋아했을 간식과 장난감. 그리고 사랑스러운 이름이 각인된 인식표.
나는 예기치 못한 상실 앞에서 차마 어떤 답도 할 수가 없어 고객과 나누었던 메시지를 찬찬히 다시 읽어 내려갔다. 서너 번의 대화 내용 중 어디에서도 슬픔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객은 그저 평범하고 발랄한, 아이를 사랑하는 보통의 반려인처럼 말했다. 후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멀거니 바라보게 될 그 사진과 애잔한 첫 문장이 없었다면 내가 만든 케이프를 입을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이 고객이 그 상실의 고통을 견디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전혀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
수많은 마음이, 지난하여 꽉 틀어 막혔으나 차마 해소할 수 없는 그 마음들이 이제는 그저 ‘그렇게 되어버린 일’이 되기까지 그녀는 얼마나 많은 고단함을 감내해야 했을까. 나는 사뭇 가슴이 저려 몇 번의 타이핑과 몇 번의 지우기를 반복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소중한 후기 감사드립니다. 이 이야기를 읽고 저 또한 세 고양이를 키우는 입장에, 먹먹한 마음이 들어 어떻게 답변을 남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어떤 말로도 고객님께 위로가 될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보호자분과 함께했던 아이의 삶은 정말 행복했을 거라,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게도 언제나 열심히 사랑해야 할 동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매일, 매 순간 행복하세요.”
다음날 고객은 내게 꽤 큰 금액의 후원을 남겼다. 나는 고작 몇 문장을 그럴싸하게 써냈을 뿐인데, 그 마음이 감히 면구하여 고개를 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꽤 많은 동물을 키워봤지만, 단 한 번도 그 생을 온전히 제대로 함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 글은 나의 부끄러운 역사이자 치부가 되겠다.
이 이야기들을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기에, 이것을 쓰는 일은 나에게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음을 밝힌다.
(이후 내용에는 동물학대, 가족 문제와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읽는 과정에 불편함을 느낄 수 있으니 주의 부탁드립니다.)
나의 첫 반려동물은 ‘똘똘이’라는 이름의 똥개였다. 그 녀석은 내가 다섯 살 무렵 우리 집에 왔다. 보신탕집에 팔려 갈 뻔한 새끼강아지를 부모님이 데려온 것이라 들었다. 똘똘이는 그 이름처럼 참 영특하고 똘똘했다. 단지 배변을 잘 가리고, 개인기 따위를 잘해서는 아니었다.
녀석은 유독 엄마를 좋아했고, 몇 달에 한 번 집에 들러 그 옆자리를 차지하는 아빠를 질투했다. 하여 누워있는 그의 다리에 느닷없이 오줌 세례를 퍼붓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느 날은 산행하던 부모님을 따르다가 예쁜 암컷에게 한눈을 팔아버린 것인데, 그 똥개가 영 탐탁지 않던 아빠는 이때다 싶었던 모양이다. 엄마를 데리고 서둘러 하산해 버리고는 내심 걱정하는 엄마를 달래며 근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들려오는 웅성거림에 밖을 내다보니 그들의 냄새를 쫓아온 영특한 똘똘이가 식당 문을 긁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잃어버린 척 똘똘이를 내다 버리려던 아빠의 야심 찬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내가 여덟 살 무렵, 우리 가족은 이사를 했다. 조용했던 2층 주택에서 수많은 발자취가 오가며 문이 쾅쾅 여닫히는 아파트로의 이사는 그 강아지에게 퍽 예민한 변화였을 테다. 똘똘이는 매일 짖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어느 날, 집이 사뭇 조용했다. 늘 달려들어 침을 잔뜩 묻히고 꼬리를 흔들던, 윤기 나는 황색 털과 까만 콩 같은 눈의 내 강아지 똘똘이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스치는 주민들의 날 선 민원과 부모님의 난처한 표정. 나는 불길한 예감에 신발을 마구 벗어던지곤 안방으로 뛰어들며 다급히 물었다.
“똘똘이는ㅡ?!”
숨도 고르지 못하는 어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이 곤란하다는 듯 굳었다.
“너무 짖어서, 더 이상 집에서 키울 수 없게 됐어. 대신에 여기 아파트 경비실에서 키워주신대. 언제든지 놀러 오라셨어.”
그런 게 어디 있어. 나한테 말도 안 하고. 가족이라며. 가끔은 엄마의 맥주와 눈물도 할짝대주며 그 슬픔을 나눠 가져 주는 소중한 가족이라며.
그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똘똘이를 볼 수 없었다. 똘똘이를 보기 위해 몇 번이고 들락이던 경비실이었으나, 근무자가 바뀌었다는 대답만이 돌아올 뿐이었다.
어느 날의 나는 덜 닫힌 부모님의 방에서 “그래도 보신탕집에 팔려 가 죽을 팔자, 몇 년이라도 즐겁게 살다 갔으니 된 거 아니겠어.” 따위의 대화를 듣고 말았으니, 미련스러움에 경비실 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그 마음이 척박해지기 그지없는 것이다.
두 번째는 ‘단비’였다. 목줄 착용이 권장이 아닌 의무가 되고 그 의식마저 완전히 자리 잡아갈 동안 나의 엄마는 여전히 예전에 머물러있었다. 나는 그것이 내내 불만이었으나 변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에 점차 입을 닫아갔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 가 점심을 먹는 시간쯤이면 늘 현관을 열어두었다. 그러면 단비는 혼자 집을 나서서 얼마간의 자유로운 산책을 즐기다가 돌아왔다. 그래, 단비도 참으로 영특한 강아지였다. 영특하지 못했던 건 그 아이가 세상 모두에게 예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우리에게 있었다.
윗집의 아저씨는 화가 많았다. 특히 길가에 아무렇게나 뉘어진 동물의 용변을 모두 단비의 탓으로 돌리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 정도가 협박의 수준에 이르렀을 때 나는 엄마에게 제발 단비를 밖에 풀어놓지 말라고 부탁했으나, 언제나 그렇듯 내 엄마는 본인의 의사가 더 중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힘겨루기가 이어지던 어느 날, 단비는 건물 화단에 싸늘한 사체로 발견되었다.
심증은 있었으나 물증이 없는 탓에 무력한 슬픔만 삼켜야 했다. 왜 단도리하지 못했냐는 원망은 정말로 그렇게까지 할 줄 몰랐다는 멍청한 답변 앞에 허망하게 스러질 뿐이었다.
그 후로도 우리 집에는 몇 번의 생이 더 들고 났다. 엄마는 늘 그런 식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품에 안고 들어와 정을 붙일 만하면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냈다. 엄마는 나 하나 똑바로 키워낼 능력도, 건강한 마음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무슨 개를 자꾸만 키우겠다고. 몇 번의 실패를 겪고도 개에게 먹이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생각도 없으면서. 나쁜 버릇은 훈육하기보단 그저 매가 약이라 믿는 주제에.
어느 날의 엄마는 개가 멍청하다며 좁은 베란다에 며칠을 가두었다. 무더웠던 여름으로 기억한다. 나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몇 번이고 몰래 문을 열어주려 시도했으나, 녹슬어 버린 그 문은 조금만 움직여도 요란한 소리를 냈다. 벌컥 열리는 방문에 심장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강아지를 새로 입양받으려던 내 친구에게는 중고 물품이나 나눠주듯 "우리 강아지를 데려가라"며 난처하게 굴었다. 사실 엄마는 그 강아지를 친구에게 떠넘기고 지인에게 더 비싼 강아지를 받아오려 했던 거였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라는 동요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우리 반에서 제일 잘 사는 친구였다. 너무너무 창피했던 나는 그 학년 내내 친구를 피해 다녀야 했다.
화가 잔뜩 났던 날의 엄마는 "인생도 마음대로 안되는데, 개 하나도 마음대로 되는 게 없다"며 2층 베란다에서 강아지를 무자비하게 집어던졌다. 순식간에 벌어진 끔찍한 일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뛰쳐나가 경련하는 작은 강아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혹시라도 엄마가 다시 화를 낼까 봐 울음소리도 삼켜야 했다.
나는 아직도 분노로 뒤틀려 돌아버린 눈동자와, 무자비한 공포 앞에서 무력하게 주저앉아 덜덜 떨어야 했던 그 밤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몇 번의 생이 들락이는 동안 언제나 내 의견 따위는 섞일 수 없었으니, 어느 순간 그에 익숙해진 나는 작고 따뜻한 것들이 주는 온기에 무뎌져 버린 것이다.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울부짖던 어린 날의 나는, 언젠가부터 그들이 몸과 마음이 아픈 엄마의 공허감을 채워주는 소모품에 불과하다 여기고 말았을 테다.
나는 지금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엄마가 아닌 내가 직접 데려온 아이들이다. 손바닥만 하던 녀석들이 이제는 세월만큼이나 크고 둥글어져 매일 아침 묵직하게 품에 안겨 온다. 그 무게는 퍽 버겁지만, 내가 그저 커다란 고양이라 믿고 비비며 내쉬는 숨결은 아주 작고 다정하다.
내게 있어 그 아이들을 책임지는 일은 때때로 버거운 데다, 살갑게 대하는 일도 여전히 서툴기 그지없다. 자잘하게 자주 아파 애태우는 첫째, 태어나 일 년 만에 유전병을 가져 그저 병의 진행 속도가 늦기만 바랄 수밖에 없어 무력한 둘째, 그리고 언제나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말썽꾸러기 셋째와 지지고 볶으며 나는 조금 늦게 사랑을 배우고 있다.
수많은 작은 생들과 함께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무지한 나는 여전히 온전한 생의 ‘끝’을 모른다. 그래서 눈물로 보냈을 그 생을 그리워하여, 입히지도 못할 케이프를 주문하고 사진을 찍어 후기를 써낸 그 마음을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저 나만을 종종거리며 따라와 적당한 거리에 몸을 동그랗게 만 채 코를 골며 잠든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다가 푸스스 김 빠진 웃음만 새어낼 뿐.
나의 고양이들도 이제 마냥 어리지만은 않게 되었다. 여덟 살과 여섯 살, 그사이에 걸쳐서는 길지 않을 그 생이 얼마나 남았을지는 모르지만, 어쩌면 절반쯤은 와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개들은 죽으면 천국에서 주인을 기다린다고 하였지. 너희는 도도하고 새침한 고양이라 미련스럽게 그러진 않을 테니 조금은 안도한다.
고양이는 죽으면 아픔과 슬픔이 없는 고양이별이라는 희망의 행성에 도착한다고 했던가. 사실 그 마음들을 위로하기 위한 거짓말임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 나는 그저, 너희가 내 품에서 가장 온전하고 온건하게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최소한의 아픔으로 떠나길 바란다. 그런 다음엔 아주 풍족하고 사랑받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적당히 길고 적당히 짧은 생을, 마구 어리광 부리고 충만히 사랑받으면서 다시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면 나는, 이생에서 처음 맞이할 ‘작은 생의 마지막 발자국’을 온전히 사랑하며 작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