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가 퇴사 여행이 되어버렸다.

by 마른틈

나는 지금 달리는 기차 안에서, 태블릿 하나에 달랑 의존해서 글을 쓰고 있다.

목적지는 부산. 1박 2일의 여정이고, 아마도 먹고 또 먹고, 또 먹다가 죽지 않을까? 아마 그런 여행이 될 것 같다.


사실 이 시리즈를 계획한 건 오늘 아침 6시다.

여행을 갔다 오면, 짧게 한 편정도의 글정도는 쓰겠거니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시리즈로 엮을 생각까지는 전혀 없었다. 정말 급작스러운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시리즈의 이름도 사실 가제다.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 초고가 형편없다. 수없이 읽고 또 읽어서 다듬은 끝에 내보낸 다음에도 수시로 고쳐내는 게 일상이건만, 어쩐지 이 여행은 매 순간마다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 글들은, 처음으로 퇴고 없이 내보내는 나의 아주 부끄러운 속마음이 될 것이다. 또한 달리는 기차 안에서, 어느 카페에서, 늦은 새벽 호텔방에서 쓰는 일기가 되리라.


아, 물론 그녀에게는 미리 허락을 구했다. 함께하는 여행에 재미없게 굴면 민폐니까.


“언니 나 중간중간 글 좀 써도 될까?”

“그럼 내가 스토리 아이디어 줄게”

“고마워 나의 뮤즈 ㅋㅋ”


물론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는 이 미완의 초고를 다 뜯어고치거나, 아니면 부끄러워서 삭제해 버릴 도 모를 일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극 성수기의 여행을 선호하지 않는다. 우선은 쓸데없이 비싼 데다 사람은 많고, 웨이팅은 넘치니 너무 춥거나 더운 그날에 돈은 돈대로 쓰고 만족도는 떨어지는 그런 비합리적인 행동은 굳이 싶은거다. 허나 사회의 톱니바퀴 같은 직장인에게는 그다지 선택지가 넉넉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정이었다.


허나 나는 어제 퇴사했다. 정확히는 퇴사'당했다'. 그것도 당일통보로. 직속상관과 인사담당자, 그리고 대표. 그들과 면담할때의 나는 당당하게 할 말을 다 했으나,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꽉 막힌 목구멍이 꿀떡꿀떡 넘어가는 기분에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두 달 가량을 내 옆에서 일했던 직속상사는 마지막 면담자리에서까지 내 이름을 착각했다. 그간 허허 웃으며 이름을 정정해 왔던 나는, 이제는 마지막임을 깨닫고 그에게 말했다.


“제 역량이 마음에 안 드셨던 건 유감스럽지만, 두 달 내내 아직도 제 이름 하나 제대로 기억 못 하시면서 저를 얼마나 아신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의 사람 좋은 가면이 처음으로 일그러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인정한다. 나는 그에게 꽤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았다. 그간 고분고분하게 굴어왔던 나의 사회생활 경험에 의하면, 결국 돌아오는 건 마음과 몸의 병밖에 없었으니 나는 나를 지키는 게 먼저였다. 어차피 이곳이 아니어도 회사는 많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그를 싫어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얼마쯤은 그가 말하는 비전을 존경도 했던 것 같다. 해서 그의 방식에 맞춰가려고 나름의 노력도 했다. 다만 나는,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의견에 피드백이 돌아오길 바랐다. 뭐 착한 말투에 그렇지 못한 꼰ㅡ 성격을 파악 못한 잘못이 내게 있다면, 그건 별 수없겠지만.


아마도 필터링 없이 냅다 아버린 대꾸에 제대로 긁혀버을까. 나의 당일 퇴사는 그렇게 결정되었다.


에 꼽힐 만큼 황당하고 불합리한 이 사고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은 함께 울분을 토해주었으나,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했다. 나는 정말 티끌의 부끄럼이 없나? 그건 아닌 거 같기도 한데. 하지만ㅡ 음.


어느새 가득 쌓였던 내 자리의 짐을 챙길 상자 하나조차 미리 준비 못하고 꾸역꾸역 챙겨 나와야 했던 나는, 목구멍이 턱턱 막히는 답답한 기분을 그저 삼켜내다 집으로 돌아와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와 동시에 처음으로 눈물이 단말마처럼 터져 나왔다. 내내 꽉 막힌 듯 답답했던 목구멍에 그제야 상쾌한 기분이 감돌았다.


하여간 나의 여름휴가 여행은 갑자기 퇴사여행이 되어버렸다. 생각만 해도 피로한 그 어떤 생각들은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나는 최근까지 너무 아팠다가 회복된 지 얼마 안 된 인간이라 다시 어떤 상처와 역경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사실 나는 이 여행의 일정을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사랑하는 그녀가 내가 좋아하는 맛집에 데려간다는 정도밖에는. 변명하자면, 주간에는 일하느라 바빴고 야간에는 글 쓰느라 바빴다. 그 계획에 나는 그 어떤 것도 동참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언니 내가 아무것도 안 해서 미안해. 내가 너무 P라 나랑 다니다가 언니가 짜증 나면 어떡하지?”

”아니 괜찮아 나는 오히려 P랑 여행하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을 때가 많아서 즐겁고 행복하더라”


나는 문득 그녀에게 물었다.


"언니 언제 임신할 거야?"


무례하기 짝이 없을 그 질문에 그녀는 푸스스 웃었다. 나는 숨겨뒀던 마음을 어리광처럼 내밀었다.


"나랑 조금만 더 놀아주면 좋겠어."


한 여름, 그것도 극 성수기의 여름휴가가 퇴사 여행이 되어버릴 줄은 나도 몰랐지. 이럴 줄 알았으면 1박이 아니라 훨씬 길게 일정을 잡을 걸ㅡ 이라 하니 그녀가 말한다.


"뭐? 내 의견은? 난 출근 해야 해."


뼛속까지 J 인 그녀와 될 대로 되라는 P 같은 나.

우리 이 여행 괜찮을까? 이 짧은 1박에 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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