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국밥이 그렇게 맛있다며?

by 마른틈

나는 꽤나 걸걸한 입맛의 소유자다. 보통의 여자애들답게 떡볶이나 먹다가 예쁜 카페에 가서 달콤한 케이크나 즐기면 인생이 좀 쉬웠으려나. 하여간 떡볶이는 불호 중에도 극 불호, 빵도 싫고 과자 같은 군것질도 글쎄 파였던 것이다.

그런 내가 공복혈당 118을 찍을 때까지 정신을 못 차리게 한 마성의 음식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하얀 쌀밥에 부드럽게 찢기는 묵은지와 살코기, 비계의 비율이 적당히 섞인 고기 한 점을 함께 올려 먹는 김치찌개였다. 한때 나는 일주일에 6일 동안 김치찌개를 먹으면서도 평생 김치찌개만 먹고도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치찌개만 좋아했냐고? 당연히 그럴 리가. 그 음식을 제일 좋아했을 뿐, 중요한 건 포슬포슬한 밥에 뜨끈한 국물을 살짝 말아 그들의 친밀함을 부드럽게 풀어준 다음, 푸짐한 건더기를 올려먹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환영인 것이다.

못 믿겠다면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 나는 스물하나, 사랑니를 뺀 그 당일날. 자극적인 것을 먹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마취도 풀리기 전, 얼큰 순대국밥 한 그릇을 완뚝했다. 나는 원래 의사말을 잘 안 듣는다.


하여튼 그런고로 국밥의 도시, 국밥의 성지라는 부산은 나에게 늘 부러움과 동경 같은 거였다. 부산은 길 가다 스러져가는 아무 국밥집이나 들어가도 맛있다며? 아ㅡ 좋겠다.


그런데 생각보다 부산에서 먹는 국밥은 늘 뭔가 아쉬웠다. 맛이 없진 않고, 굳이 따지자면 윗동네보다 맛있긴 해. 그런데 이게 내가 정말 기대했던 '부산까지 와서 먹을 국밥' 맛이 맞나? 여길 다음에 기억했다가 또 오고 싶을까? 하는 질문엔 늘 아니오였다.

그래서 나는 우리의 첫 점심메뉴가 어느 국밥집이라길래, 이름도 무슨 뭐가 '최고'니 하길래, ‘거참 퍽이나 그렇겠다’ 라며 무심코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 다만 나는 이 일정을 계획하는데 아무런 참여를 하지 않았으니 절대 그 속마음을 티 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이 J와 함께하는 여행백서의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렇게 얼마쯤의 반항적인 마음을 숨기고 쫄래쫄래 쫓아간 그곳에서 나는 그만 개안을 해버리고 말았는데, 그 경위는 이렇다.


나에게 확신의 취향이 있다면 라면은 꼬들면, 밥은 포슬밥이다. 마치 네 속내를 다 알고있다는 듯, 꾹 눌러담은 공기밥은 알알이 윤기가 감돌았다. 아주 사랑스러운 그 포슬밥 위에 갓한 겉절이를 얹어 입안에 살짝 머금었더니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문득 심상치 않은 기운에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 두 눈빛이 동시에 통하니 나는 단번에 그 욕망을 알아채고 말았다.


“언니 아직 안돼. 점심이잖아”

“너 대선 마셔봤어?”

“어? 음,, 저번에 마셔보긴 했는데 만취했을 때라 술맛까진 기억 안 나. 아니 근데 우리 저녁에 달릴 거잖아 그렇지? 그리고 나 아직 어제 마신거 덜 풀렸어”

“알겠어 알겠어”


알겠다며 대답하는 입과, 주문하는 손이 따로 노는 건 반칙이었다. 나는 이 황당한 광경을 어딘가에 고발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으나, 그래. 이곳은 부산이고 우리는 여행자니까. 행복하면 된 거야. 어 푸스스 흘려보내는 웃음에 른 척 해주기로 했다.


“딱 첫 잔만 같이 마셔줄게. 근데 언니도 딱 반 병만 하는 거야 우리의 밤은 기니까. 그렇지?”

“알겠어 진짜”


곧이어 나온 뜨끈한 뚝배기에 담긴 항정국밥에 우리는 홀린 듯 말이 없어지고, 그저 꼴깍ㅡ 침 넘어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묵직하게 담긴 뚝배기 속 구수한 돼지육수가 뜨끈하니 보글보글 끓어올랐다. 탐스럽고 수북하게 얹어진 파채는 붉고 뜨거운 국물 위에서 더 선명하게 빛났다. 부끄러운 듯 그 밑에 숨은 자태를 건져 올리니 얼큰한 국물에 푹 잠겨있던 뽀얗고 두툼한 항정살이 분홍빛으로 빛났다. 코끝을 찌르는 칼칼한 냄새에 홀린 듯 국물을 한입 삼키니 우리는, 나는.


“와”

“으아”

“허어..”

긴 말은 필요치 않았다.


“너 진짜 안 마실 거야?”


나는 눈만 도로록ㅡ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는 망연한 심정 되어버려서는, 못 이기는 척 그 잔을 받아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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