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로맨스 소설을 쓴다.
“계획을 세워 본 적이 있나요?”
“네. 그럼요. 지킨 적은 별로 없지만..... “
계획이 있던 삶은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면 딱 떠오를 정도로 명확하다. 그 이유는 계획 있는 삶을 살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왜 그런 삶을 살았나요?라고 자신에게 물어본다면, 계획을 세워서 그대로 되었던 적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계획을 세우고 그걸 지키지 못했을 때의 죄책감을 맛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시절엔 방학을 보내기 위한 학교 숙제였으니 계획을 세울 수밖에 없었고, 새 나라의 어린이가 되기엔 노는 게 너무 좋았던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방학 첫날이 시작함과 동시에 계획표는 머릿속에서 사라졌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고입 고사, 대학입시를 위해서 계획표를 짰었지만, 그날그날 공부하고 싶은 과목이 달랐으니 계획을 지켰을 리 만무하다.
매번 계획을 세우면서, ‘지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지면서도, 매시간뿐 아니라 때때로는 분 단위까지 계획을 세웠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참 다른 의미로 성실한 학생이었던 것 같다. 아니 미련한 것이었을까? 계획이 지켜지지 않았을 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계획을 세웠던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던 내가 계획을 세우고 거의 끝까지 지킬 수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바로 신혼여행 때였다.
”여행은 계획하지 않고 발길 닿는 곳으로 움직이는 게 묘미야. “
라는 남편의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배낭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신혼여행을 가는 건데 발길 닿은 곳이라니. 거기다 낯선 장소인데 아무런 계획도 없이 간다고 생각하니 무서움이 앞섰다.
그래서 거의 처음으로 ‘지킬 수 있을까?’ 하는 의심하는 마음을 버리고 ‘지켜야지.’라는 결심을 하며 계획을 짰었다.
신혼여행은 나에겐 무척 만족스러웠고, 남편도 ‘철저하게 휴양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라고 말했으니 만족스러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살이 하나도 타지 않았네. 남편 피부 걱정해 주는 최고의 부인.’이라는 말도 했지만 그건 비꼬는 게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소설을 쓰면서 나는 또 계획 세우기의 벽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아이가 3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보내야지 했었는데 코로나가 터졌고 시기를 늦췄지만, 걱정이 되어 아이가 4살이 넘어서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가정보육을 하고 있었다.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하면서 자리에 앉아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물론, 하려면 할 수 있었지만,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적었다. 계획이 필요했다. 마음껏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시간대를 찾기 위해.
고찰이라고 하니 엄청나게 중요한 연구를 하는 사람 같지만 어쨌든 나라는 사람에 대해 열심히 생각해 보고 탐구하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자. 일단, 나의 하루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에 대한.
아침 7시 30분에 시작한 나의 하루는 밤 9시 30분에 아이를 재우고 나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대부분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이 들곤 했는데-그만큼 잠자는 걸 엄청나게 좋아한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렇다면 몇 시까지 내가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언제 취침을 해야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지 않을 것인가? 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며칠 동안, 여러 시간대별로 잠을 자 본 결과, 나는 12시 이전엔 잠을 자야 아침이 편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에 대한 고찰이 있은 후 내가 느낀 건, 아이를 낳기 전과 낳은 후의 나의 삶의 변화였고 또한 나름 계획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것. 마지막으로는 나에게도 육퇴 후, 나만의 삶이 필요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밤 10시쯤 가만히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일이 생각보다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 시간 동안 이야기를 상상하고 만들며 내가 만든 주인공들이 그들의 무대에서 노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힐링이 될 만큼 신이 났다.
그렇다. 알고 보니 나는 밤을 즐기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