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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만11_ 타이베이 근교 가족여행(6)

에필로그 - 시간이 가기 전에 부모님, 가족과 여행을 자주 다녀야 한다!

[희랑의 세계여행 에세이#83] <아시아> 대만; 타이완 11_ 가족여행 4일 차(6편)
마침 이 글을 적을 때 보인 <항저우 아시안게임 2022>에서 나온, 대만 국가소개 화면

몇 년 전부터 대만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중국인데, 세계의 여론이 있어선지 이렇게 대만을 하나의 국가로 인정해서 참가를 시켜준 모습이 나에겐 흥미롭게 보였다. 그래선지 홍콩과 마카오도 역시 따로 국가로 인정해 참가한 모습도 같이 볼 수 있었다. 중국 정부의 이중성이라 할 수 있는 점을 엿볼 수 있는 게 않을까 싶다. 정확한 내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승인과 위의 중국 의견을 반영해 홍콩 및 마카오의 국기 반영, 대만은 허용된 국기문양만 반영이 된 것.

4일 차 일정 - 석식까지 기내식으로 포함돼 알차서 부모님 식사 대접에 더욱 수월

*어제 3일 차 고궁박물관 일정과 바뀌었는데, 바로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꽤 알찬 조식 - 우유와 삶은 달걀만 들어가도 든든하게 기본 영양 섭취 가능

마지막 4일 차. 그날은 오전에 중정기념당을 방문 후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일행은 조식을 먹고 다 짐을 싼 후 조금 일찍 집결했다. 그 이유는 중정기념당에서 오전 10시에 하는 장제스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해서.



버스로 가는 길에 시내에서 멋진 건물이 보여 찰칵
중정기념당 [ Chiang Kai-shek Memorial Hall , 中正紀念堂 ]
중정기념당은 타이완의 역사와 국민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꼭 둘러보아야 할 타이베이의 명소다. 타이완의 초대 총통이자 타이완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추앙받는 장제스(蔣介石)를 기리는 기념당이다. 1975년 장제스 총통이 서거하자 그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기념당 설립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고, 1980년 4월 5일 중정기념당이 정식 개관했다.

‘중정’은 장제스의 본명이다. 2007년 '타이완의 국부'로 국가적 존경을 받는 장제스의 영향력을 없애려 한 민진당의 주도로 '타이완 민주기념관'으로 잠시 명칭이 변경되었으나, 타이완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에게는 여전히 '중정기념당'이 더 친숙하다.

25만 m2에 이르는 자유광장에 우뚝 선 높이 70m의 건축물이 중정기념당이다. 웅장한 외관이 시선을 압도한다. 중정기념당에 입장하려면 총 89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89라는 숫자는 장제스가 서거한 나이를 뜻한다. 계단 위에는 거대한 장제스 동상이 서 있다. 동상 앞을 지키는 근엄한 표정의 근위병들을 볼 수 있으며 매 시각 정시에 근위병 교대식이 이루어진다. 장제스 동상의 아래층에는 그의 집무실을 재현해 놓았다. 1층 전시실에는 장제스의 생애를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자유광장'이라는 현판이 걸린 아치형 정문은 명나라식 건축이다. 타이베이 관광 엽서나 기념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재다. 자유광장에는 중정기념당 외에도 연극과 콘서트 등이 개최되는 ‘국립희극원’과 ‘국립음악청’이 있다. 중정기념관과 가까운 거리에 삼각형 구도로 하나씩 배열되어 있으니 함께 둘러보자. 드넓은 광장의 나머지 공간은 시민 공원으로 이용되어 다양한 야외 행사나 대규모 집회가 열린다. 또한 조경이 아름다워 산책하며 천천히 둘러보기에 좋다. 꽃밭, 정원, 크고 작은 연못, 조깅 코스 등이 조성되어 타이베이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중정기념당 [Chiang Kai-shek Memorial Hall, 中正紀念堂] (저스트고(Just go) 관광지)
상당한 규모의 중정기념당
1층에 있는 중정기념당 건물들 조형물
중정기념당 장제스(장개석) 근위병 교대식 - 실제 장제스 동상의 크기는 압도적

한국에서도 임시정부를 세운 이승만 전 대통령 및 이를 계승한 박정희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듯이, 어느 나라나 그렇지만 대만에서도 좌/우파 등의 이념들로 평가가 엇갈리긴 한다고. 하지만 대만인들 전체적으론 실질적으로 대만을 세워 국부라 할 수 있는 장제스에 대한 존경심이 크단다. 1975년 장제스 총통이 서거하자 그의 위업을 기리기 위한 기념당 설립이 범국가적으로 국가 및 국민의 도움으로 준비, 1980년 4월인 5년 만에 정식 개관했다고 한다.

 사견이지만, 내가 두 번이나 가보고 느낀 대만은 꽤 잘 살고 여행 인프라 및 국민들이 합리적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그런 내용을 종종 여행기 중간에 적고 있다. 중국도 여행해 보고 중국인들도 겪어봤기에 비교가 더욱 잘 된다. 1인당 GNP가 최근 20년 이래 다시 한국을 넘어선, 잘 산다고 할 수 있는 대만. 이 기틀을 잘 세운 것이 난 장제스라고 생각한다. 장제스가 대만 정부를 세운 후, 경제 및 사회 시설 등을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은 한 점은 이견들이 없다고 한다. 대만 주요 박물관인 어제 다녀온 국립고궁박물원도 장제스가 세운 것이나 다름없는 듯하다. 본래는 유물들이 본토인 베이징 고궁(자금성)에 있었으나, 국공내전 시기인 1948년 장제스의 명령으로 대부분 대만으로 실어와 타이중 등지에 일시 보관하다가 1965년 11월 12일 타이베이에서 재개관했다고 하니...


[장제스에 대한 평가]

{전체적}
오늘날 장제스에 대한 평가는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부터 중국을 구한 항일 영웅 또는 민주주의를 탄압한 독재자, 심각한 부정부패로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도 대륙을 중국공산당에게 빼앗긴 무능한 지도자,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학살자라는 다양한 평가가 공존한다.

<경제 분야>
국민당 일당독재 하 南京國民政府(남경국민정부)의 정치적 성격에 관해서 평가가 다양한 데 비하면 경제적 성취에 관한 근래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 한세 대학교 강명희 교수, <남경 정부 시기 국가 주도하 국민 경제 건설>(2006년)

세간의 통설과는 달리, 장제스 정권의 업적이 평가되는 분야 중 하나다. 일각에서 황금 10년이라 부르기도 하는 1927년 ~ 1937년 시절 장제스의 국민당 정권은 관세 자주화, 통화 일원화, 국내 통행세 철폐, 조세 개혁, 조계 회수 등 경제 성장을 위한 정책을 펼쳤고, 성공했다. 또한 이 시기에 중국의 공업화가 이루어졌으며, 저장을 비롯한 국민당 직할지의 농민 생활환경이 개선되었다. 이 때문에 1936년 런던 채권 시장에서는 중국 국채의 이자가 일본 국채의 이자보다 더 저렴한 조건으로 발행되었었다. 이런 개혁들을 바탕으로 장제스의 난징 정권은 위안스카이의 중화제국 이래 가장 풍족한 재정을 보유했다.
장제스 - 나무위키


요즘 더욱 느끼는 것은, 나라가 힘이 있으려면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경제력이 높으면 이 문제가 보다 수월하게 해결된다. 그건 또 그 나라의 군사력과도 직결되니 그러는 것이다. 자본을 토대로 막강한 군사 장비들을 구입하여 전력을 구축하는데 보다 수월한 것이다. 미국, 일본, 그리고 독일을 포함한 여러 서유럽 국가가 이를 증명한다. 대만(타이완) 정부는 정부 구성 이래, 중국과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핵 등을 보유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 추측된다. 하지만 우수하게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유수 산업인 반도체 등 IT 핵심 분야의 패권을 쥔 TSMC, NVIDIA(엔비디아 창립 회장이 대만 출신), AMD 등의 알짜 회사들이 있고 이런 경제적인 보이지 않는 힘도 있어 중국이 더욱 통합하려 한다고도 본다. 여기서, 그런 회사들이 있는 대만의 경제 기조를 다진 사람 역시 장제스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만약 중국처럼 사회주의 체제를 대만에서도 이어갔다면, 합리성을 중시하는 대만 사회와는 맞지 않아 저런 회사들이 나오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

 반면, 군사력 증비를 우선으로 하면서 사회주의 체제에서 최상위 군사력을 유지하는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핵을 가져서 쉽게 대처하긴 어려워진 북한 등의 국가도 있긴 하다. 우선순위로 군사력을 보강해 온 나라들이지만, 이들 국가 역시 자본이 여유가 있으면 군사력을 더 강하게 보강할 수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가 없는 게 아닐지...


이후 우린 11시 전에 기념당에서 나와서, 마지막 일정인 점심을 먹으러 대만 현지 식당으로 갔다.

중식 - 대만 현지식

이 음식들도 원조는 결국엔 중국에서 넘어왔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마무리 조리법은 확실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 먹었던 중식의 과한 역한 냄새, 넘쳤던 기름, 대부분 짰던 소금이나 간장으로 한 맛 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잘 먹었기 때문. 부모님을 포함한 다른 일행분들도 대체로 음식들을 남기지 않고 식사를 잘 하셨다. 한국 단체 관광객이 갔으니 이 입맛에 맞춰서도 조리했겠지만, 이 정도가 크지 않았을 거라 예상하며 대만에서 먹은 음식들은 대체로 나쁘지 않고 맛있었던 좋은 기억들로 쌓였기에. 이렇게 당분간의 마지막 대만식도, 내 머리에는 맛있는 기억으로 현재 남아있다. 먹은 현지 음식 또한, 그 나라를 기억할 수 있는 대표적인 요소. 한류 붐으로 일었지만 한식의 인기가 시들지 않고 계속 올라가는 이유 또한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타이베이에서 타오위안 공항 가는 길

오후 4:10 인천행 비행기를 타야 했고 국제선이라, 3시간 전쯤 타오위안 공항으로 가이드님은 일행을 마지막으로 이끌었다. 또한 가이드님은 탑승장에서 보딩패스를 끊을 때도, 외국에서 직접 외국인인 대만인에게 수속하는 게 다소 익숙하지 않은 몇 일행분들을 직접 도와주셨다. 이후 면세점으로 나가기 전 인간 검색대로 우리 일행이 가는 것을 보시고는, 손을 흔들어 인사해 주시며 끝까지 마지막 임무를 완수해 주셨다. 난 좋은 가이드님을 만났다고 생각했고, 남은 나머지 대만 돈 등을 약소하게 드리며 잘 인솔해 주신 감사의 성의 표시와 인사 및 말씀을 드렸다. 가이드님은 웃으시며, 잘 따라줘서 고맙다고 하셨고 그렇게 우린 헤어졌다.

나머지 대만 잔돈으로 공항 자판기에서 산 커피. 잔돈 처리하기 좋다
쇼핑하러 가는 우릴 두고, 아버지가 차창으로 바라보며 보시던 풍경.jpg

이후 비행기 탑승까지 시간이 좀 남아, 공항 상점들을 둘러보기 원하시는 엄마를 데리고 주변을 다녔다. 아버지는 짐을 보면서 쉬겠다고 하셨고... (이는 불변의 남녀가 쇼핑할 때의 대부분의 모습.txt)

16:10 탑승인데 딜레이 돼서 17:30쯤 탑승. 중화항공(CHINA AIRLINES) 연착은 잦다고 이렇게 나에게 기록
석식 - 맛과 양 모두 Good!
타오위안공항-인천공항




에필로그 2
같은 장소도 개인 여행과는 꽤 다르게 느껴지며, 가족 여행은 언제든 진리!


해외여행으로 1년 사이의 같은 국가 및 장소를 한 번은 혼자, 또 한 번 가족과 함께 오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누구와 같이 가는 여행은, 여행할 사람의 기호를 잘 체크하여 그중 여행지를 정하는 게 좋다. 예전의 나였더라면, 내가 안 가본 국가 또한 도시들은 제외하고 부모님을 설득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처음에 먼저 일본을 가자고 하셨지만, 난 부모님의 해가 갈수록 떨어지실 수 있는 체력을 생각해 동남아 다른 국가들도 여행지 리스트에 놓았었다. 먼저, 3박 내외의 일정으로 여행할 나라들은 편도 6시간 이내의 비행까지 가능한 동남아 국가 중에서 선택. 둘째, 음식이 잘 나오고 인프라가 괜찮은 선진국에 근접한 나라들인 일본과 대만 싱가폴 홍콩 중에서 선택. 셋째, 대만 싱가폴 홍콩 중, 대만이 현재 군사 등의 이슈가 있어 러시아처럼 나중에 가기 어려운 여행지일 듯했으며 넷째, 엄마가 중국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고 다섯째, 패키지 VS 내가 준비하는 여행 중 패키지가 장점이 많았던 여행지였으며 끝으로, 아버지는 이 사항에 다 아우르실 수 있었기에 대만으로 정했던 것이다. 결과는 꽤 만족!


같은 여행지를 다녀도 혼자 왔던 것과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것은 또 달랐다. 한 번 여행했기에 아는 것을 볼 때의 나의 시간과 노력을, 부모님께 오롯이 케어하면서 사진을 찍어드리거나 더 잘 안내해 드릴 수 있는 장점이 정말 컸다. 이건 가까운 지인들과 여행할 때도 마찬가지로 순기능이 아닐지.


또한 여행지에 따라 이렇게 패키지가 좋은 곳이 있지만, 직접 준비해 프라이빗하게 여행하는 게 좋은 곳들도 있다. 휴양지들이 주로 그렇다. 부모님이 오키나와를 가고 싶다고 하셨으면, 아마 내가 직접 여행을 준비하고 차를 렌트해 가고 싶은 곳만 정말 효율적으로 다니며 정말 휴양 여행을 했을 것.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부모님의 체력이 노쇠해지시기 전에 내 시간을 만들어서 미혼자는 더욱 결혼 전에 같이 여행 가서 추억을 많이 쌓는 것이다. 기혼 후엔 처가 부모님도 같이 챙겨야 하므로, 그전에 오롯이 부모님이나 가족을 챙길 기회가 지금이라는 생각에 나는 엄마가 여행 가자고 하셨을 때 바로 OK 했던 것. 이것도 내가 부모님과 가족을 챙길 수 있을 때 가능하며, 기혼 후에는 처와 구성한 내 가족을 챙기는 게 거의 우선순위가 되기에 쉽지 않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곧 맞을 긴 추석 연휴 또한 다가왔고 이것도 곧 시간으로 지나간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추억을 쌓아두는 것은 굉장히 소중하기에, 난 꼭 시간을 만들어 가족 특히 부모님과 해외든 국내든 여행을 다녀오시길 추천한다.




아마 다음 여행기는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이 될 듯하고, 그렇게 아시아 국가들을 다 적으면 드디어! 아메리카대륙의 북미 편도 쓰기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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