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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독일 1_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문, 소니센터)

이후 카를스루에로 향하다 - 여행이란, 이끌림이다. 내가 좋으면 가는 것

네덜란드에서의 3일째는 별로였다. 숙소에서 2시간 정도 걸리는 도시 아른헴 시까지 가서 <크롤러 뮐러 미술관>에 있는 반 고흐 작품들을 볼 예정이었는데,  다 도착해서야 미술관이 있는 <호헤 벨루베 국립공원>이 그날 사정상 문을 닫았다는 걸 들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만화 캐릭터로 유명한 '미피'의 고향이라는 위트레흐트 시에도 가서 시내를 둘러보았는데,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마음에 드는 날도, 들지 않는 날도 있다. 마음에 드는 날은 만난 사람이 좋거나, 갔던 곳이 좋아서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날은 만난 사람이 좋지 않았거나, 갔던 곳이 별로여서 기분이 좋지 않거나 그저 그랬을 것이다. 그날 난 후자였던 것. 하지만 지금 돌아보니 이런 날도, 저런 날도 있었으며 그건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좋으면 계속 추억하며 이따금 상기하면 되고 별로면 그냥 넘기면 되는 게 아닐까. 지나간 건, 지나버린 거니까...


그날도 난, 이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2개 먹었던 거 같다.

참 오래되었지만, 이 민박집 사모님은 과할 정도로 여행자들에게 친절하셨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 모습을 대하는 여행자들은 호불호가 있었던 거 같지만, 나는 그만큼 사모님께 정이 느껴져서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건 사모님께서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사람은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가 없다. 또한 요리를 잘하셨던 사장님은, 말씀은 많지 않으셨고 필요할 때만 적절한 행동으로 교양을 표현해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고 보니 사장님이 주재원으로 오셔서 그곳에 정착하시게 되었다고 하신 것을 들은 거 같다. 배울 게 많은 분이셨던 거 같다. 요리실력만이 아닌...


그날 아침 맛있게 식사를 하고 두 분께 작별 인사를 드린 후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 금세, 차려주셨던 맛있는 한식이 떠올랐었다. 여기에 세월이 꽤 지나 지금까지 더 생각나는 건, 바로 그분들의 '정'과 특히 사장님의 '교양'이다. 그리고 다시 뵙게 되면, 그 사이에 있었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암스테르담 인근 -> 베를린 중앙역(약 800km)
중간에 갈아탔던 역 주변

당시 9시 정도에 숙소를 출발. 중간에 어느 역에서는 정차, 갈아타는 등 거쳐서 저 베를린 중앙역(Berlin Hauptbahnhof)까지 꽤 먼 거리를 총 9시간 정도 갔던 거 같다.

다녀온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등의 내용을 독서하며 주로 시간을 보냈다

그중, 기차에서 보낸 시간은 대략 6시간 정도로 기억. 혼자 몇 시간을 대중교통에서 보낸다면 주의할 사항들이 있다. 결국 도난에 대한 주의다. 첫째, 옷 소지품에 신경 쓸 것. 보통 여행자들은 중요한 것들을 소지하고 다니는데 지갑, 돈 등이 열려있는 주머니에 있다면 도둑의 표적 대상이다. 여기서 졸기라도 하면 그 틈을 지나가는 도둑은 잘 놓치지 않는다고 한다. 둘째, 배낭에도 항시 신경 쓸 것.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깨 있을 땐 표적으로 안 보인 다지만 만약 졸 땐, 도둑이 잽싸게 훔쳐간다고 하는 사례도 종종 있었다. 난 정말 졸릴 때, 배낭을 내려 껴안고 잤고 깨면 다시 올려놓곤 했다. 혹은 철에 묶는 등 안전장치를 걸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난 6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독서를 하거나, 일기나 메모를 쓰거나, 촬영한 사진들을 정리하거나, 간식을 먹거나, 이따금 졸면서 시간을 보냈다. 지금이라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등이 있어 주로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을 거 같다. 하지만 난 다행히 그때 내가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고, 오히려 그 시간을 차분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알아냈다. 이 또한 여행으로 시간을 보내면서, 차분히 나를 마주하고 내면을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독일 [ Germany, 獨逸 ]
요약: 유럽 중부에 있는 나라로, 여러 개의 독립국이 1871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을 거쳐 독일제국으로 성립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나뉘었다가 1990년 통일되었다.

원어명: Deutschland
위치: 유럽중부
면적(㎢): 357,022 /해안선(km): 2389
시간대: CET (UTC+1) Summer: CEST (UTC+2)
수도: 베를린
종족구성
독일인(87.2%), 튀르키예인(1.8%), 폴란드인(1%), 시리아인(1%), 기타(9%) (2017년)
공용어: 독일어
종교
로마가톨릭(27.7%), 개신교(25.5%), 무슬림(5.1%), 정교(1.9%), 기타 기독교(1.1%), 기타(9%,), 무교(37.8%) (2018년)
건국일: 1949년 5월 23일 (1990년 10월 3일 동서독 통일)
국가원수/국무총리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2017.3. 당선, 임기 5년)/올라프 숄츠(Olaf Scholz) 총리(2021.12. 당선)
국제전화: +49 / 정체: 연방공화제/ 통화: 유로화(Euro)
인구(명): 83,783,942(2020년)/ 인구밀도(명/㎢): 232(2019년)/ 평균수명(세): 81.30(2019년)
1인당 명목 GDP($): 41,167(2012년)

유럽 중부에 위치한 연방국으로 정식명칭은 독일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of Germany)이다. 수도는 베를린이고 공식 언어는 독일어로 지역에 따라 여러 방언이 존재한다. 16개의 주(Länder)로 구성되는데, 여기에는 3개의 도시, 베를린·함부르크·브레멘이 포함되어 주(州)와 동등한 자치권을 갖는다.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창설국으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유럽 전체로는 러시아와 튀르키예에 이어 세 번째인 인구대국이다.

지리적으로 북으로 북해와 덴마크와 접하며, 동쪽으로 폴란드·체코,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스위스, 서쪽으로 프랑스·룩셈부르크·벨기에·네덜란드와 접한다. 국경선 안쪽으로 알프스산맥·라인강·도나우강·슈바르츠발트산맥이 자리하고 있다. 영토면적은 357,02㎢로 프랑스의 약 2/3 정도의 규모이며 유럽에서 일곱 번째로 크다.

독일의 영어명인 'Germany'는 로마의 정치인이자 장군인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라인강 동부에 사는 민족을 '게르마니아(Germania)'로 부른데서 유래한다. 또한 독일어 국명인 'Deutschland'는 '독일의 땅(diutisciu land)'에서 유래한다.

현재의 독일 지역에는 기원전부터 여러 게르만계 부족이 거주하였고, 서기 100년경 문헌에 게르마니아가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10세기에 이르러 게르만족은 신성로마제국의 핵심 민족이 되었고, 16세기에 북독일은 종교개혁의 중심지가 되었다. 1806년 나폴레옹 전쟁으로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면서 여러 제후국과 도시국가로 분열되었다가, 1871년 북부의 프로이센이 중심이 되어 독일제국(German Empire)을 형성하여 중부유럽의 강국으로 군림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1918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하였고, 이후 1933년 나치스가 정권을 잡아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1949년 종전과 함께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전승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다가,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서독)과 독일민주공화국(동독)으로 분리되었다. 이후 서독은 1950년대부터 '라인강의 기적(Miracle on the Rhine)' 으로 불리는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냉전이 정점에 이른 1961년에는 동독 측에서 일방적으로 베를린 시를 가르는 베를린장벽을 설치하여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으로 정치적 대치가 완화되고 경제적 교류가 진행되었고,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에 따른 동독의 공산정권 붕괴로 1990년 통일이 이루어졌다. 통일 후 독일은 유럽연합의 핵심 회원국으로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일 [Germany, 獨逸]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독일 국기 <두피디아>
독일 지도 <구글>
베를린 [ Berlin ]
요약: 독일의 수도

위치: 독일 동부/ 면적(㎢): 891.7
시간대: UTC+1, Summer: UTC+2
행정구분: 12개의 자치구(Borough)로 구성
행정관청 소재지: 미테거리(Mitte District) 붉은 시청사(Rotes Rathaus)
인구(명): 3,426,354(2021년)

독일의 수도로, 독일에서 가장 인구가 많다. 베를린의 외각 지역까지 포함하면 인구는 약 450만 명에 달하며, 남서부의 루르(Ruhr) 지역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광역권이다.

독일 동북부 브란덴부르크주의 중앙에 위치하며 주도(州都)인 포츠담과 인접해 있다. 체코와 폴란드의 국경지역에서 발원한 슈프레강 유역에 위치한다. 시 면적의 약 1/3이 녹지와 강과 호수로 구성되어 있고, 특히 호수가 많다.

중부 독일 방언을 사용하는 지역으로, 13세기부터 북유럽과의 무역을 위한 도시로 형성되었다. 1417~1701년 신성로마제국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Margraviate of Brandenburg)의 수도였으며, 뒤이어 프로이센왕국(1701~1918), 독일제국(1871~1918),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 그리고 독일 제3제국(1933~1945) 등, 오랜 기간 독일의 여러 왕조와 제국의 수도였다. 이러한 지위로 1920년대에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인구가 많은 거대도시로 발전하였고, 1990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다시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

박물관과 역사적 유적지가 시내 전역에 산재하고, 전 세계 190여 개국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국제화된 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의 포격으로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으나 전후 신속히 복구되었고, 냉전 시기 낙후된 동독 지역은 1990년대 이후 도시재개발을 통해 현대적 도시로 변모하였다.

독일의 정치·경제·문화와 과학의 중심지로, 정부의 주요 기관이 위치하며, 이외에도 약 160개에 달하는 각국의 대사관이 자리한다. 또한 연구기관, 비정부간 기구, 로비그룹과 전문가 그룹이 포진하며 많은 미디어 기업과 IT·제약·생명과학·신재생에너지·전자 등 첨단산업 분야 기업의 본사가 집중되어 있다. 독일 내에서도 스타트업과 연구개발이 가장 활발한 도시로, 베를린훔볼트대학교·베를린공과대학교·베를린예술대학교 등 독일의 주요대학이 위치한다.

연중 각종 페스티벌과 전시회 및 박람회가 끊이지 않아 독일에서 문화적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랜드마크로는 베를린장벽과 브란덴부르크문,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공연장 등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베를린 [Berlin]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중앙역에 도착!

한 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세계를 호령했던 독일. 드디어 독일에 도착했다.

서유럽의 지하철은 이런 구조로 다 비슷했던 듯하다
이른 저녁에서야 도착한 베를린에서의 숙소

이번에도 소개를 받고 한인 민박으로 오게 되었는데, 말로만 듣던 그 옛날 한국에서 독일로 파독을 진행한 시절 간호사로 오셨다는 사모님이 주인이셨다. 숙소에 도착 후 인사를 드릴 때, 다행히 짧게나마 그 말씀을 듣고서야 그런 사연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마음 한 편에는 벌써 사모님께 감사한 마음부터 들었던 거 같다. 마침 그즈음 한국에서는 G20 개최로 우리나라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당시 국무총리는 한국이 G20에 들 수 있었던 게 바로 이렇게 옛날에 어려운 시절에 해외로 파견을 나가신 분들 덕분이라며, 한국에 계신 그 관계자분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행사로 베풀기도 했다.


아무튼 숙소에 짐을 푼 뒤, 바로 베를린에서의 야경을 보러 나갔다.

포츠담 광장(Potsdamer Platz). 큰 빌딩에 써 있는 DB는 독일철도 주식회사, Deutsche Bahn AG

당시 베를린에서 가장 번화하는 거리라는 포츠담 광장 주변을 돌았다. 유명한 야경 명소로 소니센터, 브란덴부르크 문 등이 있어서 그곳으로 걸어갔다.

소니센터 [ Sony Center ]
요약: 독일 베를린에 있는 건축물 군으로 쇼핑몰과 극장, 국제 회의장 등이 있다.

독일 베를린의 포츠다머 플라츠(Potsdamer Platz)에 있다. 부지에 모두 일곱 개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일본 소니(Sony)사의 투자로 독일계 미국인 건축가인 헬무트 얀(Helmut Jahn)이 설계했다. 약 4년간의 건축 기간을 거쳐 2000년에 완공됐다.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2000년 1월 문을 열었고 전체적으로 개장한 것은 2000년 6월이다. 건물 사이에 삼각형 모양으로 조성된 소니센터 플라츠(Sony Center Platz) 광장이 있다. 광장을 덮고 있는 돔의 모양은 일본의 후지산을 상징한다. 이 광장의 한쪽 끝 부분에는 103m 높이의 초고층 건물인 반 타워(Bahn Tower)가 있다. 건설 비용으로는 약 6억 유로가 사용됐다. 소니센터 내부에는 수 많은 상점과 레스토랑이 들어 선 쇼핑몰이 조성되어 있다. 국제회의를 위한 콘퍼런스 센터와 고급 호텔, 콘도, 사무실 등이 있다. 또한 예술, 영화 박물관과 극장, 아이멕스 영화관등이 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기간에는 소니센터 플라츠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축구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소니는 2008년에 독일과 미국 합작 투자사에 소니센터를 매각했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니센터 [Sony Center] (두산백과)


SONY 사는 2000년대 전까지도 건실한 기업으로써, 이렇게 해외에까지 위상을 떨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삼성전자 및 LG전자가 초격차의 디스플레이 기술을 개발하고 앞세워 소니 등의 일본 가전이 세계 각지에서 패권을 두었던 TV 시장의 점유율을 빼앗아오기 시작했다. 이후 다른 생활가전제품들까지도 삼성전자, LG전자 등에게 점유율을 빼앗기며 쇠락의 길을 걷는 듯싶었다. 하지만 근래 10년 사이, 떠오르는 미디어 분야로 집중 투자를 를 한 결과 다시 최고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디지털로 급 변화하고 있는 지금, 또한 코로나19를 마주하며 한층 더 성장 중인 이 미디어 시장에서, 우리 한국 기업들이 그 분야에서 다시 선점해주길 바란다.

또한, 의미가 깊은 브란덴부르크 문까지 인근이라 걸어서 갔다.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 Gate)
브란덴부르크 문 [ Brandenburg Gate ]
동쪽과 서쪽 베를린 사이의 상징적인 관문

베를린의 중요한 상징 중 하나인–에펠 탑이 파리를 상징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가 짓게 한 것이다. 그리스 고전주의에 대한 독일의 새로운 관심을 반영하여, 이 건물은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관문인 프로필라이아의 영향을 받았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의 삼각형 지붕은 두 줄로 늘어선 여섯 개의 도리스식 기둥 위에 얹혀 있고 기둥 사이로 다섯 줄의 차도가 나 있는데, 약간 더 넓은 중앙의 길은 왕이나 그의 손님들만이 이용할 수 있었다.

문 위에 있는 것은 고전적인 '콰드리가'–네 마리 말이 끄는 전차에 탄 여신상–인데, 원래는 평화를 형상화하여 조각했던 것이다. 이 콰드리가는 1806년 프랑스에서 빼앗아 갔는데, 다시 돌아오면서 여신이 지닌 올리브 나무 관은 철로 된 십자가로 대체되고 조각상은 승리의 여신상이 되었다. 19세기 동안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의 군사적 막강함을 상징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관점은 나치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었는데, 나치는 전쟁터로 행군하는 군사들이 이 문을 지나는 모습을 영화로 촬영해 두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전쟁이 끝난 후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의 핵심적인 관문으로서 더한 중요성을 얻었는데, 이러한 중요성은 아이러니하게도 1971년 이 문이 폐쇄되면서 더욱 강조되었다. 1989년 동독이 무너지자 브란덴부르크 문은 다시 열려 통일의 상징이 되었다. 서독의 수상 헬무트 콜은 이 문을 통해 걸어가 동독의 총리 한스 모드로우의 환영을 받았던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이 닫혀 있는 한, 독일 문제는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서 베를린 시장, 리하르트 폰 바이츠재커, 1980

[네이버 지식백과] 브란덴부르크 문 [Brandenburg Gat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
굉장히 거대했던, 독일 연방의회(국가 의회) 의사당 [Reichstag]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 Reichstag ]
제작시기: 1894년
건축가: 파울 발로트, 포스터 & 파트너스
양식: 네오-르네상스, 하이테크
재료: 돌, 알루미늄, 글라스

독일 의사당의 다채롭고 파란 많은 역사는 이러한 종류의 건축물의 상징적인 힘에 대한 증언이라 할 수 있다. 독일 의사당은 1894년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건축가 파울 발로트(1841~1912년)가 지은 제2제국의 제국 의회 의사당이었다. 독일의 국가적 자부심을 강력하게 표현하고자 한 건물로, 각 지방의 대표들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나 1933년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그 책임을 공산주의자들에게 덮어씌우려 한 나치당 과격분자들에 의해 불타버렸다. 간발의 차로 완전히 무너져버리는 대참사는 면했으나 이어진 연합군의 공습으로 또다시 심하게 파손되고 말았다. 정부 청사로 사용하기 위해 1958년부터 1972년 사이에 어찌어찌 복구를 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제국 의회 의사당은 다시 하나가 된 독일의 입법부, 연방 의회의 본거지가 되었다. 1995년 환경 설치 예술가 크리스토와 진-클로드는 의사당 건물 전체를 하얀 폴리프로필렌 직물로 모조리 싸버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그 거슬리는 공명이 알려지게 하였다. 1999년 영국의 건축가 포스터 경(1935년생)은 벽만 남기고 건물을 모두 뜯어낸 뒤 내부의 안마당 위로 가벼운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만든 돔을 덮었다. 그 양옆으로는 나선형 경사로를 매달아서 공사 중에도 의회가 여전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했다. 포스터의 진정한 위대함은 빛의 활용에서 드러난다. 거울로 덮은 환기통이 돔에서 내려와 아래층의 조명과 환풍을 동시에 해결해준다. 밤에도 조명을 환하게 밝힌 돔은 독일 민주주의의 횃불처럼 빛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Reichstag]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 2009. 1. 20., 마크 어빙, 피터 ST. 존, 박누리, 정상희, 김희진, 위키미디어 커먼즈)
귀소 하면서 빛이 예뻐서 찍었는데 정확히 어딘지는 모르겠다.

숙소로 돌아와서 다시 책의 베를린 편을 열심히 보았으나, 당시에 내가 더 보고 싶은 곳은 찾질 못했다. 베를린에 온 이유는 독일 통일의 상징이자 베를린의 장벽인 브란덴부르크 문,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Holocaust) 관련 장소를 보고 싶었던 것인데 기념관들은 3일 내내 문을 닫는다고 했던 거로 기억한다. 그 사실을 알고, 거기까지 갔는데 너무 아쉬워했던 기억 또한 역력하다. 그렇게 늦게까지 자료를 찾다가 잠이 든 나는, 다음날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아마 그렇게, 오후에 사모님께 그런 사정으로 떠나게 됐다는 인사를 드린 후 독일 남부로 가기 위해 역으로 향했다.

열차 내에서 본 폭스바겐 차 관련 공장인 듯.

그곳은, 바로 남부에 있는 도시 카를스루에. 유럽을 여행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종종 소통한 분이 있었는데 그분이 거기서 호텔을 운영하신다고 하셔서 가기로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혼자 다녔던 여행에서 사람이 그리웠고, 편하게 쉴 곳이 필요했기에 그곳이 날 이끌었던 듯하다.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던 듯. 이따금 흔적을 남겼지만, 가는 길에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았다


베를린 중앙역 -> 카를스루에 약 670km

이곳도 6시간 내외의 상당한 거리였다. 그래도 난 어디든 갈 수 있는 유레일패스가 있었고, 그땐 쉬면서 같이 대화하며 같이 보낼 상대가 필요했던 거 같다. 아마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이따금 찾아오는, 외로움이었을 것.

카를스루에(Karlsruhe)
요약: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에 있는 도시.

'Carlsruhe'로 표기하기도 한다. 슈바르츠발트 지역 북쪽 끝 라인 지구대의 중부에 위치하며, 운하를 통해 가까이 있는 라인강(江)에 면한 항구와 연결된다. 1715년 바덴두를라흐의 후작 카를 빌헬름(Karl Wilhelm)에 의하여 궁전 소재지로 건설되었다. 1771년 이후 바덴 공국의 도읍지였다. 바덴은 나중에 대공국이 되었다가 1919년부터는 주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격심하게 손상된 구도시는 반원 모양이며 거리는 방사상으로 뻗어나 있었다. 1945년 이후 복원되어 교통, 산업,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연방헌법재판소 및 연방재판소의 소재지이다. 전기 제품, 건축 장비, 자전거 및 오토바이, 향수, 보석, 제약, 기계, 정유 등의 제조업이 활발하다. 프랑스의 마르세유와 스트라스부르, 도나우강에 면한 독일의 잉골슈타트 등으로 이어지는 송유관이 건설되어 있다.

1825년 기술학교로 설립된 대학교와 미술대학, 음악대학, 그리고 원자력연구소, 극장 및 미술관, 1953∼1954년 건설된 대규모 회의장 슈바르츠발트할레(Schwarzwaldhalle) 등이 있다. 1938년에는 인근의 두를라흐(Durlach)를 흡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카를스루에 (두산백과)


내 상태가 그러했으니, 이렇게 커플이 포옹하는 장면을 포착했을 것이다.
역에서 사먹은 맛있었던 케밥!
역에서 한 번 더 갈아타서 사장님의 호텔로 향했다
역으로 마중을 나와주신 사장님을 만나, 밤에 호텔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아 청년, 드디어 만났네요. 먼 길 오느라 수고 많았어요.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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