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그해 1월 중순. 열일을 하다가 문득 그해 12월까지 달력을 다 봤는데 와, 2월 초 설날 구정 연휴가 가장 길었던 것이다. 휴가로 3일을 쓰면 11일을 쓸 수 있는...
보통의 한국 직장인들이 그렇듯이, 항상 1년 중 가장 길게 시간을 언제 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나였다. 일은 매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가니, 도중에 휴가기간을 이용해 나이가 더 들기 전 견문을 넓히고 쉬고 올 수 있는 곳으로 재충전하고 올 수 있는 짬은 꼭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직장인 은퇴 후 세계여행의 방법보다, 보다 젊을 때 틈틈이 해외를 다녀오는 방법을 택했다.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달려 더 많은 여행지를 다니지 못할 것이고,그 멋진 여행지들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꽤나 늙어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지금 충만한 내 호기심이, 나이가 들면서 더 줄어들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또한 그 근거들에 덧붙였다.
그런 이유들과, 11일 정도를 쓰면 효과적인 여행지가 어딜지 동시에 고민했다. 난 일반적으로 해외여행을 할 때 세운 기준이 있다. 가용시간이 일주일 이하로는 비행시간 7시간 이하인 동남아, 7~10일 사이는 비행시간 7시간 이상인 중동 등, 10일 이상은 되어야 미주나 유럽을 여행하는 게 최소 비행기 값은 뽑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족이나 연인을 만나거나, 비즈니스로 출장을 다녀와야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런데 터키가 마침 10일 여행하기에도, 날씨도 나쁘진 않아 딱이라고 생각했다! 프롤로그에 적은 대로 터키는 매력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하고 벼르고 있던 여행국가였다. 이때까지 동남아 몇 국가들, 유럽 몇 국가들은 여행했을 때의 어느새 비슷해 보이는 점들이 눈에 띄곤 했다. 그래선지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었는데, '유라시아 - 유럽의 서양과 아시아의 동양이 교차하는 곳'인 터키의 역사 및 문화유적들과 기암 바위가 있는 괴레메에서의 벌룬 탑승, 패러글라이딩을 타며 액티비티까지 다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었다. 그래선지 터키는 여행한 사람들이 대체로 후회가 없는 여행 국가로도 불렸다.
그렇게 전년 9월에 아프리카 대륙 여행을 다녀온 지 오래되진 않았음에도, 터키행 티켓을 31일 출발 5일 전에 발권해버렸다. 또한 11~12월에 열심히 일해서 수상도 했기에,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까지 여행지 도시 곳곳을 자세히 짜 놓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목적지의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는 것이고 준비는 비행기, 이동하는 차 등에서 다니면서 해도 크게 무리는 없다. 물론, 가족이나 연인을 데려간다면 미리 준비해야겠지만...
CF) 참고로 220728 현재, 아시아나항공에선 인천-이스탄불 직항 노선을 코로나 이후 28개월만에 다시 운항한다고!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경유하는 아스타나항공을 탑승
옆자리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던 젊은 러시아 여성을 만나다
그렇게 출국 당일, 카자흐스탄 알마티를 거쳐가는 이스탄불행 아스타나 항공편에 탑승했다. 여행 점검을 위해 좌석에 등을 켜고 책과 준비해온 자료들을 펼쳐놓고 보기 시작하던 차였다. 여행을 많이 해선지 수고가 많으신 승무원분들의 노고를 알기에, 간식과 음료를 주고 간 승무원분께 고맙다고 했을 때였다. 바로 그때, 옆자리에서
"한국인이세요? 어디로 가세요?"
하면서 정확하게 한국어로 묻는, 재미있는 여성을 만났다.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2014년 크림 위기로 러시아에 편입되어 러시아가 실효 지배 중) 출신 러시아 대학생 여성이었다. 크림반도라니, 신문에 나온 그 역사적인 곳에서 자랐다는 사람을 만나다니. 또한 우크라이나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러시아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강조하는 그녀를 보면서 '역시 국력은 국력이구나' 생각하며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튼 한류의 영향으로 어렸을 적 한국의 가수들을 보면서 한국에 오길 꿈꿨던 그녀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었고 또 석사까지 준비하러 부산에 왔다 간다는, 털털하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얼마나 한국어를 잘하고 유머까지 곁들이던지... 놀라움과 웃음이 종종 터졌던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중에 한자리할 거 같아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물론 농담이고! 어디에서나 인연은 소중하기 마련이다.
우릴 태운 비행기는 6시간쯤 정도 걸려 카자흐스탄의 이전 수도였던, 제2의 도시 알마티에 도착했다. 당시 온도가 영하 25도에 육박했던 거로 기억한다. 비행기를 옮겨 탈 때 잠시나마 1월 말의 한창 시베리아 기단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날씨를 체감했다.
카자흐스탄의 이전 수도였던 제2의 도시 알마티의 국제공항
여기서 1시간 정도를 보낸 후, 이스탄불행 비행기 탑승장으로 가면서 그녀와 인사를 했다. 그녀와의 짧은 만남 속에서 세계 역사의 한 편을 마주했고, 어릴 때 접한 한류를 통해 진로 또한 한국과 연관된 일로 준비를 한다는 외국인을 실제로 경험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일단 출발한 여행에서 누구를 만나 교류하는 것 또한 배움의 시작이다.
다시 6시간 정도를 비행하고, 착륙 후엔 아침에 바로 여행을 시작해야 했기에 적어도 착륙 전에 3시간 이상은 자야 했다. 그래서 3시간 동안은 마저 남은 전체 여행지의 점검과, 공항에 내려서 갈 이스탄불 여행 정보를 중점적으로 보곤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이스탄불에 있다가 날씨가 좋을 다음날에 바로 카파도키아로 넘어가서 벌룬을 타고, 그다음에야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페티예로 언제 가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그건 최소 그 하루 전날에야 판단 후 정해야 했다. 그런 정도로 '그날 어느 도시에서 여행을 할지' 정도만 계획해 놓고 나서야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 전 편히 잠이 들었다.
그러다 기내에서 곧 도착한다는 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곧 이스탄불 공항 땅을 밟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현지 아침 이른 시간으로 설레는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