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자존감의 세계로
동아리에서 만난 친구 H는 초기부터 내 브런치를 꾸준히 구독해온 구독자이다. 한때는 대기업에서 화려하게 커리어를 시작한 적도 있지만, 조금 더 잘 맞는 곳에서 일하기 위해 수험 생활을 하고 있다. 모처럼 그와 일정이 맞아 가볍게 저녁을 먹기로 했고 내가 좋아하는 라멘집을 갔다. 수비드 닭가슴살과 진한 국물이 일품인 곳에서 식사를 마치고 커피빈으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 헤이즐넛 아메리카노. 우유보다는 덜 텁텁하고 시럽보다는 달콤한, 헤이즐넛 파우더만의 맛을 그에게 소개했다.
수험생과 취준생, 자연스럽게 주제는 미래와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다행히 우리는 둘 다 우울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상태가 꽤나 재밌게 느껴질 정도로, 각자의 현실에 만족하고 열심히였다. 몇 달 전만 해도 우울을 털어놓던 작가와 공감하며 울었던 독자였는데. 이토록 즐겁게 웃을 수 있다니. 오히려 현실은 그때보다 조금 더 나빠졌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우울하거나, 힘든 내색이 없었다.
"나는 요즘 내가 참 마음에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출근길에 인강을 듣는단 말이지.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향하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혹시 누군가 나를 본다면 꽤 멋지고 성실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오늘도 끝나고 집에 가서 강의를 들을 생각이야. 진짜 멋있지 않냐?"
"완전 컨셉에 잠식됐네요. ㅋㅋㅋㅋ"
우스갯소리로 주고받은 일상 속에서, 요즘을 되돌아봤다. 비몽사몽 한 정신을 이끌고 출근길에 인강을 듣고, 업무와 퇴근길로 지친 몸을 이끌고 문제집을 들여다본다. 다가오는 일정 속에서 압박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적당한 긴장감이 오히려 척추를 바로 세운다. 자세가 바르니 뭔가 솟아오르는 기분, 기분 탓으로 돌리기엔 하루가 너무 뿌듯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내가 꽤 멋지다고 생각하는 게 우스우면서 마음에 든다.
이전에 근무하던 회사에서 대표는 항상 "난 짱이야."를 달고 살았다. 연일 지속된 회의에서 답을 못 찾고 헤매고 있을 때면, 몇 시간을 가만히 쓱싹쓱싹 키보드를 두들기다가, 직원들을 모아놓고 시원한 해결을 보여줬다. 이 뿐만 아니라, 모두가 끙끙대며 포기했던 상황에서도 혼자서 뚝딱뚝딱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나라면 감당하기 힘들 스케줄과 업무량을 다 쳐내고 멀쩡한 모습으로 사무실에 앉아있는다. 그리고 여지없이 내뱉는 말은 "난 짱이야 역시."
사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반감이었던 적이 있다. '뭐 저렇게 자신감이 넘칠까.'부터 가끔은 너무 경솔한 것 아니냐는 생각까지 들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마음은 대표를 인정하기 싫은 내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녀는 잔혹할 정도로 일머리가 좋았으며, 남들이 포기할 만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해답을 만들어냈다. 폭주기관차 같아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최근에는 누군가를 이끌고 갈 정도로 여유까지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녀를 지켜본 지 만으로 3년이 넘었는데. 예전엔 일만큼은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요즘엔 차라리 인성이라도 나빴으면...이라고 바라보지만, 그녀는 인성마저 좋다. 사려 깊고 선하고 진솔하다.(물론 자기 울타리 안의 사람들에게만, 그런 면에서 울타리 안에 나를 담아줘서 고맙다.)
그런 그녀의 자존감이 궁금해 물었던 적이 있다. 어떻게 그리 단단하고, 강인하고, 긍정적일 수 있냐는 우리의 물음에 그녀는 답했다. "나는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이런 나를 자주 칭찬해 줘." 스스로 건네는 칭찬, 그녀의 자존감 비법이었다. 게다가 이성적인 성격을 더해 명확하고, 적확한 표현을 담은 칭찬을 스스로에게 건넸다. 당시 '인정'이라는 주제로 토론하며, 타인의 칭찬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던 우리는 그녀에게 또 한 번 물어봤다. 자신의 칭찬으로 충분하냐고.
"남이 하는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어. 내가 하는 칭찬이 가장 좋고, 정확한데."
남이 하는 칭찬은 남의 기준일 뿐이니까. 고마울지언정 큰 의미는 없다는 그녀의 말.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부정했고, 그다음엔 반박해봤으나 큰 효과가 없었다. 그 뒤로 가만히 지켜보다가. 최근에는 받아들이게 됐다. 변화하고 싶으면 만나는 사람을 바꾸라는 자기 계발서의 말처럼, 내게도 긍정의 삼투압이 작용한 듯하다. 6개월은 짧지만 거대한 시간이었다. 밀도 높게 들어온 긍정주의와 진정한 의미의 열정, 그리고 책임과 다정함에 대한 고찰들은 나의 울적함을 증발시켰다.
문득, 우울함으로 주변을 어둡게 만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오른다. 반복되는 실패, 의도하지 않은 고통... 갖은 요소를 끌어 붙여 봐도 같은 상황에서도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단지 그러지 못했을 뿐이고, 나의 우울은 또 다른 삼투압이 되어 주변인을 젖게 만들었겠지. 약간의 미안함이 들지만, 나는 알고 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때늦은 사과로 다시금 그때를 기억나게 하는 일이 아니라, 긍정과 단단한 자존으로 주변을 밝게 만드는 사람이 되어, 혹여나 그들을 다시 마주칠 순간에 언제 그랬냐는 듯 좋은 기운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제일 멋지고, 좋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