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둡고 좁은 고해소 안에 흠뻑 비에 젖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후드를 눈 밑까지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착용한 이 남자는 천천히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반투명 가림막 너머에 앉은 사제의 실루엣이 답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굳게 믿으며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세요." 그러자 남자는 처량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부님... 사실 내가 죽으려고 했는데, 지옥 가기가 겁나서 이렇게 왔수다." 사제의 부드러운 음성이 남자를 안심시켰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니 통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고백하면 사죄경을 읽어드리지요." 남자는 그제야 결심이 섰는지 지난 죄를 말하기 시작했다. 2013년 7월부터 2020년 10월까지 여신도를 성폭행하고 강제 성추행 한 사실에 대해. 그리고 봉헌금 명목으로 십억 원가량의 돈을 편취한 사실에 대해. 남자는 범행 날짜와 시간 그리고 피해자 이름들과 부당 편취한 돈의 액수의 십원 단위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의 죄를 모두 털어놓은 남자는 끝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래도 용서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가림막 너머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던 사제는 전과 다른 투로 물었다.
"너 누구야?"
남자가 후드와 마스크를 벗었다. 호기로운 인상이 드러나고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 "너 잡으러 지옥에서 왔다, 이 새끼야!" 동시에 가림막을 발로 차서 박살 낸 남자는 도망치려는 사제의 멱살을 잡고 신자석으로 끌고 들어왔다. 남자의 이름은 박호찬. 나이는 35세. 마포서 강력 1팀 소속이다. 사제는 사이비 교주 행세를 하다가 전라남도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성당에 숨어든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 호찬이 고해한 내용들 모두, 지금 멱살잡이를 당하고 있는 사제가 저지른 범죄 혐의들이었다. 비좁은 고해소 바닥에서 서로 뒤엉켜 몸싸움을 벌이다가 사제는 악다구니를 쓰며 고해소를 기어이 뛰쳐나갔다.
예배실로 도망 나온 사제는 허들을 타 넘듯 신자석 벤치를 뛰어넘고 호찬은 그 뒤를 바싹 쫓았다. 창 밖에서 낙뢰가 번쩍일 때마다 어두운 예배실은 사이키 조명을 켠 것처럼 깜박였다. 사제는 촛대부터 성경책 등 각종 기물을 잡히는 대로 던지며 계단을 뛰어올랐다. 호찬은 사제가 밟고 달리는 러그를 잡아당기고, 사제는 굴러 떨어지고 성스러운 공간에서 난리 부루스가 벌어졌다.
숨이 턱까지 닿은 두 사내는 어느새 성당 옥상에 올라섰다. 검은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내렸고 멀리 바다가 무섭게 포효했다. 비에 흠뻑 젖은 사제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 난간까지 몰렸다. 승기를 잡은 호찬이 다가섰다. 그리고 반으로 접힌 체포 영장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김원배 판사님께서 써주신 체포영장이니까 잘 들어. 너를 여신도 성폭행 및 강간 미수 그리고 특수 사기 혐의로 긴급 체포하러 온 거야. 지금부터 입 다물어도 되고, 변호사 불러서 실드 쳐도 무방해."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데, 등 뒤에서 우당탕-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건장한 체구에 험한 인상을 한 남자 넷이 몰려와 있었다. 남해 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이었다. 호찬은 표정을 바꾸고 반장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아이고, 장경오 경감님 또 뵙습니다. 마포서 곰(* 강력반 형사를 이르는 은어)입니다." 장경감은 썩은 얼굴로 응수했다. "마포서 곰이 이까진 또 뭐 하러 오셨어?" 호찬은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아 지나가다, 지나가다." 너스레를 이어간다. 팀원 하나가 투덜대며 나섰다. "아- 왜 자꾸 남에 관할지에 껴들어? 마포서가 뭐, 남해서 샵인샵이야?" 호찬이 외쳤다. "아, 나쁜 놈 잡는 데 니꺼 내꺼가 어딨 어?" 옥신각신 말들이 오가는 가운데, 장경감이 막내 형사에게 눈짓을 했다. 그러자 막내 형사는 품에서 체포 영장을 꺼내더니 사제를 향해 읊기 시작했다. 호찬이 읽었던 것과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이게 지금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사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호찬을 바라봤다. 호찬은 방금 전 자신이 읽은 체포 영장을 사제에게 들어 보이며 윙크했다. 호찬이 읽은 영장은 손으로 개발새발 쓴 가짜였다. 농락당했다는 사실에 눈 뒤집힌 사제는 허리춤에 끼워둔 십자가를 꺼내 외쳤다.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썩 물렀거라, 이 사탄! 간교한 것들아!" 호찬은 어이없다는 투로, "야야- 십자가로 처 맞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일루 와." 하는데, 사제는 한술 더 떠 단상을 밟고 올라섰다. 그리고 십자가 쥔 손을 하늘로 뻗어 올리더니 홍해라도 가를 기세로 소리쳤다. "오, 주여!! 입만 살았고 영혼은 죽은 자들이 여기 있나이다!!" 사제는 난간 위를 아슬아슬하게 뛰기 시작했다. 발을 헛디디면 바로 사망각. 형사들 일제히 쫓았다. "야! 야! 저, 저 새끼 튄다! 잡어!" 소리소리 지르며 달리는 사제를 형사들이 우르르 따라 뛰었다. 영빨인지 약빨인지 발악인지 모를 사제의 외침이 하이를 친다. "끊임없이 더러운 것을 솟구쳐 올리는 저 악함을 하감 하옵시고! 오직 욕망에 눈이 먼 죽은 영혼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호찬의 손이 막내 형사 허리춤에 꽂힌 테이저 건을 뽑았다. 그리고 대각으로 가로질러 사제와 거리를 좁히더니, 정조준했다. 3분 같은 3초가 흐르고... 작게 '아멘'이라 읊조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휘리릭- 사제를 향해 뻗어나가는 오만 볼트 전극.
봇물처럼 터져 나오던 사제의 방언이 멈춘다. "내 안에 주의 평강이 넘치게 하시엌!!" 가랑이에 테이저 건의 전극이 박히는 동시에! 먼 하늘에서 거대한 낙뢰가 떨어지며, 콰쾅!! 고전류로 부르르- 몸을 떠는 사제. 기절한 참치 마냥 난간 밑으로 몸이 기울었다. 아차- 싶은 호찬이 달려가 붙잡지만 무게를 이기지 못해 미끄러지고 형사들이 몰려가 붙잡았다. 이 과정에서 호찬의 옷이 찢어지고 상탈이 되는데, 형사팀은 이 악물고 가까스로 끌어올렸다. 마치 대어 낚아 올리듯 범인이 바닥을 굴렀다. 호찬이 재빨리 범인 등에 올라타 팔을 꺾고 수갑을 채웠다. 이때! 성당 옥상을 주변으로 산속에 숨어 있던 기자들이 일제히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렸다. 파바박! 십 수명의 기자들이 호찬을 향해 플래시 세례를 쏟아부었다. 낙뢰와 플래시가 한데 엉켜 어두운 옥상이 마치 무대처럼 보였다. 형사들은 어이가 없어 주변을 둘러볼 뿐이고, 장반장은 화가 나 소리쳤다. "어떤 놈이 현장에 기자들 불렀어!?" 그러자 형사들의 시선이 하나 둘 어딘가로 쏠렸다. 양팔을 하늘로 뻗고 비를 맞고 선 호찬은 마치 쇼생크 탈출의 그 포스터처럼 포즈를 취하며 자신을 향한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형사팀은 어이상실한 채 셔터음은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기자들 속, 한 오십 대 남성이 바주카포처럼 렌즈가 솟은 카메라로 호찬을 찍어대는 게 눈에 띄었다. 기자들과 나이도 행색도 다른 이 남자의 어깨에는 빨간색 확성기가 메어져 있었고, 카메라 가방에는 유튜브 채널 '진심의 확성기'라는 로고가 박혀 있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호찬을 프레이밍 하는데 집중하는 이 남자를 우리는 지금부터 운영자(남 52)라 부르기로 한다. 운영자의 렌즈를 통해 호찬의 상탈 된 모습이 연속적으로 포착됐다. 찰칵! 찰칵! 찰칵! 호찬이 천천히 돌아서면서 등과 허리가 클로즈업 됐다. 그간 범인 검거 과정에서 입은 온갖 상처들이 호찬의 온몸에 가득했다.
그로부터 일 년 뒤, TV에서 뉴스 데스크룸이 방송되고 있었다. 스튜디오 백을 가득 채운 LED 스크린에는 작년 이맘때, 성당 옥상에서 찍힌 사진이 크게 보였다. 경찰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긴 영광의 상처들이 고스란히 드러난 호찬의 등짝 사진. 거대한 LED 스크린에 이 사진들이 가득 채워지자, 마치 어떤 설치 미술 작품처럼 보였다. 그 앞으로 배치된 데스크에는 기품이 깃든 남자 앵커와 경찰 정복 차림의 호찬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호찬을 비춘 뉴스 화면 하단에는 '2014-2024 부동의 검거율 1위 박호찬 경위'라는 자막이 띄워져 있었다.
앵커는 차분한 음성으로 등짝 사진에 대해 설명했다. "발레리나 강수진 씨와 박지성 선수의 발 사진이 우리에게 전한 파급력에 맞먹는다는 평을 문화평론가 김갑성 씨께서 해주셨다고요?" 호찬이 쑥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과찬이고 영광이라고 답했다. 앵커는 LED 화면이 바뀌자 시선을 옮기며 물었다. "가운데 서 계신 저분이 사진을 찍어주신 분입니까?" 호찬은 보더니 입가에는 미소를 띠며 맞는 것 같다 말했다. 등짝 사진이 떠 있던 자리에, 유튜브 채널 ‘진심의 확성기’ 회원 단체샷이 올라와 있었다. 사진 중심에, 카메라 들고 선 운영자가 손 브이를 그리며 서 있다. 어깨에는 빨간 확성기가 메어져 있었다. 얼핏 산악 동호회 회장 포스가 느껴지기도 했다. 앵커는 사진 속 운영자를 지칭하며 호찬과 사적으로 만난 적이 있으신지 물었고, 호찬은 제가 공무를 수행하는 입장이다 보니까요,라는 말로 답했다. 앵커의 말에 따르면, 채널 수익금 전액이 사회에 기부되고 있었고 호찬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감사하고 영광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앵커는 진행 대본을 넘기고 호흡조절을 하더니, 다시 물었다. "2014년에 순경으로 입직하셔서 8년 만에 최단 경위로 경위가 되셨는데요. 내가 여기까지는 한 번 올라가 봐야겠다. 이런 생각도 하십니까? 솔직하게." 호찬이 즉답했다. "네 솔직하게 다 온 것 같습니다." 앵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네?라고 되묻고 호찬은 반복해 말했다. "다 올라온 것 같습니다." 앵커는 당황한 기색으로 그게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 달라고 물었다. 그러자 호찬은 카메라를 향해 자세와 시선을 옮기더니 중대발표라도 하듯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시민 여러분. 저는 이제 경찰직을 내려놓고자 합니다. 그동안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모두 건강하십시오." 호찬이 자리에서 일어나 카메라를 향해 꾸벅 구십도 인사를 시전 하자 스태프진 모두 얼음. 호찬의 정수리로 가득 찬 뉴스 화면에서 활기찬 무드의 CF 영상으로 급히 전환됐다. 고개를 푹 숙인 호찬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져 나가고 있었다. 아무도 이 미소를 볼 수 없었다.
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