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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이지 라마 Nov 18. 2024

4. 두 번째 살인, 교살(絞殺)

* 교살 (絞殺) : 목을 조여 죽임.


여자가 말한 주소지는 재개발이 예정된, 사람이 살지 않는 배드 타운이었다. 동네 곳곳에는 우후죽순으로 잡초들이 자라나 있었고 길냥이들이 안광을 번뜩이며 어슬렁댔다. 호찬은 '토끼 모텔' 앞에 차를 세웠다. 입구와 벽에 빨간색 스프레이로 '철거 예정'이라는 글씨가 휘갈겨 쓰여 있었다. 차에서 내린 호찬은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 안으로 들어갔다. 철거되다 만 로비를 지나 계단을 올랐다.


호찬은 여자가 갇혀 있다고 말한 657호가 위치한 6층까지 단숨에 뛰어올랐다. 눈앞에 좁고 어두운 복도가 펼쳐졌고 양 옆으로 각 호실의 문이 마치 교도소 감방처럼 마주 보고 있었다. 저곳 어딘가에 657호 푯말이 붙은 도어가 발견될 것이라 생각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때 어디선가 기계음이 들려왔다. 소리가 난 곳으로 빛을 비추자 천정에 설치된 시스템 에어컨 송풍구에서 바람이 새 나오고 있었다. 뭔가 이상했다. 철거가 예정된 건물에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니...  호찬은 홀스터에 꽂힌 권총을 뽑아 양손에 모아 쥐었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657호 문가에 다가섰다. 심호흡 한 뒤 천천히 노크했다. 똑- 똑- “배달이요. “ 문 안쪽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호찬은 조금 더 세게 그리고 크게 두드리며 말했다. 똑- 똑- ”배달이요. “ 그러자 잠시 후, 문 안쪽에서도 똑- 똑- 같은 소리가 들렸다. 당혹스러웠다. 화장실 에티켓도 아니고 지금 장난하나 싶은데, 호찬의 시야가 갑자기 탁해졌다. 호찬은 머리를 흔들며 눈의 초점을 맞추려 하지만 더 흐려지고 이젠 귀까지 먹먹해졌다. 호찬은 고개를 들어 천정에서 바람을 뿜어대던 시스템 에어컨 송풍구를 봤다. 정체불명의 허연 기체가 나오고 있었다. 순간, 함정이라는 사실을 직감하지만, 동시에 무릎이 꺾이면서 의식이 꺼졌다.  잠시 후, 657호 방문이 열렸다. 낮에 본 슈퍼카 차주이자 구조를 요청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독면 흡입구에 가려진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축 늘어진 호찬의 두 다리가 657호 방 안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쿵- 문이 닫히고 문틈으로 붉은빛이 새 나왔다.





기잉- 기잉-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모터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호찬이 신음하며 눈을 떴다. 657호 안이었다. 창 밖은 여전히 밤이었고 적요했다. 텅 빈 빌라의 창문이 모텔과 인접해 있었다. 호찬은 유리에 반사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팬티 바람으로 베드에 엎드린 채 팔과 다리가 뒤로 결박돼 있었다. 여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방독면을 벗은 여자는 도무지 감정이 읽히지 않는 창백한 얼굴과 청록색 컬러 렌즈가 뒤덮은 동공으로 호찬을 내려다봤다. 검정색 라텍스 장갑이 끼워진 손에는 타투 머신이 쥐어져 있었고 그 끝에 뾰족하게 솟은 니들(NEEDLE)이 회전하고 있었다. 이 소리가 호찬을 잠에서 깨운 것이었다. 여자 주변에는 타투 작업을 위한 박스와 잉크 카트리지 등이 세팅돼 있었다. 호찬이 고개를 틀어 물었다. “너... 누구야?” 호찬의 귀에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는 느리게 재생된 사운드처럼 둔중했다. 소리뿐 아니라 보이는 것들도 왜곡돼 있었다. 바닥에는 사용하고 남은 주사 앰플들이 굴러 다녔다. 동물 마취제였다. “뭐, 뭐냐고 너...?” 호찬이 외쳐보지만, 말투는 어눌했고 몸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여자는 타투 머신을 작업대에 잠시 내려놓더니 플라스틱 튜브를 거꾸로 쥐고 호찬의 그 유명한, 영광의 상처투성이 등짝에 투명 액상 젤리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펴 발랐다. 얼음장 같은 냉기가 온몸을 엄습하며 소름이 끼쳐왔다. “뭐, 뭐 하는 거야!” 호찬이 외쳐 보지만 여자는 제 할 일을 묵묵히 할 뿐이었다. 여자는 스텐실로 전사된 널찍한 레터링 타투 도안을 호찬의 등 위에 얹었다. 큼지막한 마스크팩을 올리듯이. 여자는 이동식 거울을 끌고 와 기울이고 호찬의 등에 새겨질 문구를 보게 했다. 다음과 같았다.


 



'나는 자뻑이라니... 이 여자 미친 게 분명하다.' 호찬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외쳤다. “뭔데... 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여자가 타투 머신의 전원을 켰다. 지잉- 다시금 날카로운 모터음이 들리며 뾰족한 니들이 회전했다. 몸부림치는 호찬의 외침 그리고 요동치는 심장 박동과 대조적으로 여자의 얇은 입술 사이에서 메마른 음성이 흘러나왔다. “따끄음-” 니들이 송곳처럼 레터링 도안을 살벌하게 뚫고 들어와 피부를 헤집기 시작했다. 으아악!! 호찬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마취제 때문에 무뎌져 있던 신경들이 일순간에 깨어난 것 같았다. 여자는 남는 손으로 버둥대는 호찬의 목덜미를 찍어 누르고 글자를 파내려 갔다. 피부에서 배어 나온 피는 호찬의 옆구리를 타고 흐르며 시트를 붉게 적셨다. "그만! 그마안!!" 호찬의 절규에 타투 머신의 회전이 멈췄다. 정적 속에서 호찬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호찬은 악에 받쳐  경고했다. “너, 내가 누군지 모르지?! 나 박호- 웁!” 여자가 호찬의 입 안에 양말을 쑤셔 넣더니 무감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퀴이즈… 숫자와 기호를 듣고 연상되는 걸 말해.” 이게 뭔 개소린가, 싶은 호찬은 혼란에 휩싸이고 여자는 알 수 없는 숫자와 한글의 조합을 읊기 시작했다. “팔... 가단... 오백 칠십팔... 이천 십육... 고합... 백이십삼...” 건조한 여자의 목소리 속에서 호찬은 문득 단서를 포착했다. 여자가 내뱉는 숫자와 한글의 조합은 호찬이 그간 해결한 사건 번호들이었다. 폭행, 사기, 절도, 강도, 방화, 살인까지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갇힌 자들의 흉악한 면면들이 스쳐 지났다. 호찬은 확신에 차 소리쳤다. “그만! 그마안!!“ 여자가 양말을 빼자 호찬이 거친 숨을 토하며 말했다. ”내가... 내가 감옥에 처넣은... 그 놈들이 보냈냐? 나 죽이라고오!!“ 자동 응답 기계음 같던 여자의 말투에 처음으로 감정이 실렸다. ”정답입니다! “ 여자는 빨간 고무장갑 낀 손을 머리 위로 올리더니 박수를 쳐댔다. 탁! 탁! 탁! 호찬이 경고했다. ”너... 후회할 짓 하지 마!  나 박호찬이야, 검거왕 박호-!! “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지잉- 날카로운 모터음이 들리며 다시금 니들이 레터링 도안을 파고들었다. 진피층을 뚫고 깊숙하게 바늘이 박히자 호찬의 외침은 절규로 바뀌었다. ”으아아악!!” 여자는 다시금 머신을 껐다. 호찬은 악에 받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 내가 반드시 잡는다!! 반드시!!” 여자는 동요 없이 말했다. “두 번째 퀴이즈…” 호찬이 곧바로 응수했다. “쌉 소리 집어 쳐!!” 여자가 다시 입을 막았다. “닥치고, 퀴이즈...” 여자는 정체불명의 적갈색 잉크 카트리지를 집어 들더니 호찬의 눈앞에서 흔들며 놀리듯 물었다. “이 안에 든 독은 무슨 독?” 호찬이 순간 귀를 의심했다. 제발 잘못 들었길 바랐다. '저 여자 지금 분명… 독이라고 말했다 씨바알…’ 여자는 힌트를 주겠다더니 미친 소리를 지껄였다. “역삼각형 몸매... 떡 벌어진 어깨... 곶추세운 허리” 호찬은 울고 싶었지만 정신줄을 놓지 않으려 죽을힘을 다했고 여자는 기행은 강도를 더해갔다. 두 번째 힌트를 주겠다더니 자세를 낮춰 호찬과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귓불을 날름날름 혀로 핥기 시작했다. 뱀처럼. 호찬은 소스라치며 기겁했다. “그만! 그만해!! “ 가오는 사라지고 얼굴은 눈물, 콧물, 침으로 범벅이 돼 갔다. 여자가 말했다. ”셋 셉니다. 셋... 둘... 하나. 땡! 정답은... 코브라입니다. “ 여자는 거침이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코브라 독이 든 잉크 카트리지를 타투 머신에 끼웠다. 그리고 ON 버튼을 눌렀다. 호찬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졌다. ”뭐, 뭐 하는 거야!! “ 여자는 예의 차분한 음성으로 클로징 멘트를 날렸다. ”코브라 독으로 마무리해 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호찬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안, 안돼... 안 돼!! “ 결박된 몸을 좌우로 흔드는데 순간 호찬의 시선이 창문 밖 건너편 빌라로 향했다. 창문 너머에서 작고 빨간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호찬은 이것이  카메라에서 점멸하는 램프이며 자신을 끈질기게 스토킹 해오던 ‘진심의 확성기‘ 운영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잉 징- 독을 머금은 니들이 호찬의 등으로 근접했다. 호찬은 남은 모든 힘을 쥐어짜 입 안의 양말을 뱉어내고, 운영자가 보이는 창문 너머로 외쳤다. ”도와줘!!!” 여자의 시선이 창문 너머를 향하는 순간! 657호 내부 조명이 꺼졌다. 타투 머신의 모터음도 끊겼다. 어둠과 정적 속에서 호찬의 거친 숨소리만 들려왔다. 끼익- 모텔방문 열리는 소리 들리고 전투화를 신은 발이 들어왔다. 또 다른 침입자였다.


불청객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감지한 여자가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는 순간, 퍽! 육중한 둔기가 얼굴을 내리쳤다. 여자는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더니 호찬이 누운 베드를 잡고 쓰러졌다. 매트가 뒤집히며 호찬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기물들이 그 위로 쏟아졌다. 여자는 니들이 꽂힌 타투 머신을 움켜쥐고 일어나 침입자에게 달려들었다. 침입자는 압도적인 힘으로 여자를 구석에 메다꽂아 버렸다. 고통스러운 여자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두운 가운데 창밖에서 비추는 희미한 달빛이 각자의 실루엣을 겨우 가늠할 수 있게 해 줬다.



바닥에서 버둥대던 호찬은 굼벵이처럼 몸을 굴려 문으로 접근하지만 뒤로 묶인 손으론 열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리자, 손 뻗으면 닿을 곳에 자신의 벗겨진 옷가지들과 권총 홀스터가 보였다. 다시 몸을 굴려 접근해 권총을 집으려 안간힘을 쓰는데, 침입자의 전투화가 다가와 뻥 차버렸다. 침대 프레임 밑으로 권총이 미끄러져 사라졌다. 호찬의 얼굴에 절망감이 스쳤다. 침입자는 먹잇감을 노리듯 다시금 여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침입자의 손에는 날이 선 회칼이 쥐어져 있었다. 단박에라도 여자를 끝장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무슨 일인지 침입자는 칼을 거뒀다. 그리고 공구용 장갑을 낀 양손으로 여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여자는 컥컥 대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구석에 처박힌 호찬은 뒤엉킨 침입자와 여자의 실루엣을 보며 경악했다. 다음 차례는 나겠구나 싶어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급히 찾는데…. 방문이 열리고 구원의 손길이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안으로 뻗어 들어왔다. 손은 호찬의 턱을 양손으로 잡고 깍지를 끼더니 힘껏 잡아끌었다. 배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미꾸라지처럼 호찬의 몸이 복도로 미끄러져 나왔다. 짓눌린 얼굴로 손의 주인을 올려다보니 야간 투시경을 쓴 운영자가 마스크를 쓴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리윤이 목을 조르던 침입자는 방을 빠져나가는 호찬의 발을 포착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자의 숨통을 마저 끊는 게 더 중요했다. 빠각- 설골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침입자의 팔을 부여잡은 여자의 손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침입자는 여자의 죽음을 확인한 뒤 복도로 나갔다. 같은 시각, 호찬을 등에 업은 운영자는 4층 계단을 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 호찬에게 헉헉대며 말했다. “형사님, 안심허세요. 진심입니다...!” 호찬의 흐릿해져 가는 두 눈은 운영자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흔들리는 계단을 보고 있었다. 보이는 모든 게 흐리게 번져나가더니 의식이 완전히 끊겼다. 657호에서 밖으로 나온 침입자의 실루엣이 텅 빈 복도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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