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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이지 라마 Nov 13. 2024

2. 첫 번째 살인, 격살 (擊殺)

* 격살 : 손으로 때려서 죽임. 무기 따위로 쳐서 죽임.




1.

영등포 경찰서 서장실에서 고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너 미쳤어?!" 서장은 식식대며 분을 삼켰다. 책상 위에는 호찬이 제출한 사직서를 비롯해 각종 서류들이 널려 있고 그 앞에 앉은 호찬은 멀뚱히 앉아 있었다. 서장은 뉴스룸에 출연해 예고도 없이 은퇴 선언을 해 버린 호찬 때문에 본청으로부터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서장은 격앙돼 말했다. "검거율 1위라고 우쭈쭈 해주니까 경찰서가 니 놀이턴 거 같지?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전화를 몇 통을 받고 있는 줄 알어?!" 호찬은 별 감정의 동요 없이 말했다. "미리 말씀 못 드린 건 정말 죄송합니다... 만, 이렇게라도 해야 제 결심을 굳힐 수 있을 것-" 서장이 말을 끊었다. "됐어. 난 모르겠고 이런 식이면 안 돼. 위에다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해프닝이었다고 둘러댈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호찬이 대꾸했다. "공직자 근로 기준법에 따르면요.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아도 삼십 일이 지나면 자동적으루다-" 참지 못한 서장이 결국 화를 폭발시켰다. "새끼가 보자 보자 진짜!? 계속 그래봐. 넌 퇴직이 아니라 면직이야 마!! 나가!!" 서장이 눈을 부라리며 몰아세우자 호찬은 벌떡 일어나 구십 도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답답하다는 얼굴로.


분주한 강력팀 사무실로 들어온 호찬은 창가를 바라보고 선 강력 1팀 반장 진준엽에게로 다가갔다. 진반장은 어항 속 거북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호찬이 다가서자 그는 시선도 주지 않고 냉랭히 물었다. "너 지금 쇼하는 거지?" 호찬이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뭔 또 쇼를 해. 내가 연예인이야?" 진반장은 그제야 돌아서며, "인사이동 앞두고 어깃장 놓는 거잖아. 위에서 안달 나게 만들라고." 호찬은 짧게, "아니."라고 말하고 진반장은 따지듯 묻기 시작했다. "너 강력범죄 수사대 있다가 작년에 뜬금없이 우리 팀 오겠다고 조르면서 나한테 뭐라 그랬어." 호찬은 머쓱한 얼굴로, "뭐 잘해봅시다. 그랬겠지." 진반장의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송파 지구대 코찔찔이 시절에 잘 챙겨주셔서 은혜 갚는다며. 까먹었냐?" 호찬의 언성도 슬슬 높아지고, "형, 내 등 봤지? 그게 사람 등이야? 등만 그래. 목, 허리, 다리,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 호찬이 어깃장을 놓지만 진반장 물서서지 않는다.  "네가 해결하겠다고 갖고 간 사건이 지금 몇 개야. 그 똥 이제 누가 다 치우라고?!" 호찬이 응수한다. "거 참, 말 한번 깨꼬롬하게 하시네. 사건이 똥이야?" 진반장이 작전을 바꿔 타이르듯 말했다. "거북이처럼 살라고 형이 누누이 말 안 했냐?" 호찬은 기가 찬 얼굴로 거북이를 가리키며, "저게 산 거야? 죽은 거지. 쟤도 모를걸? 지가 살었는지 죽었는지." 어항 속 거북이는 목을 잔뜩 움츠르고 눈을 감는다. 식식대는 진반장에게 고경사가 다가와 불렀다. 진반장이 고개를 돌리자, 고경사가 말했다. "영등포 시장에서 사망 사건 발생했답니다." 호찬은 재킷 걸치고 일어나 혼잣말을 중얼댔다. "그래, 한 달만 버티고 떠나자. 중이 떠야지 중이."



2.

영등포 시장 내 낡은 건물 주변으로 경찰차와 과수대 차량이 세워져 있었다. 출입 제한선 밖으로 주민들이 웅성댔다. 호찬을 포함한 강력 1팀이 나란히 건물 계단을 올랐다. 맨 앞에 고경사 박호찬 반경위 진반장 순서로. 호찬은 눈앞에 보이는 고경사의 운동화 뒤축의 로고를 보며 말했다. 신발 샀네? 올~ 호카. 요샌 호카지. 고경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신나셨네요,라고. 호찬은 계속 장난을 건다. 삐졌구나? 똥차 빠진다 생각해 고경사. 그러자 뒤에서 따라 올라오는 반경위가 끼어든다. "요샌 슈퍼카로 똥 푸냐?" 호찬은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 "올~ 말에 막 뼈도 있고 살도 붙었다 형?" "대충 발라 먹고 버려. 뭘 또 그렇게 음미를 하시고."라며 응수하는 반경위. 가만히 듣던 고경사가 냉랭한 투로 물었다. "박형사님 근데 그거 진심이에요?" 호찬은 당당하다. "진심 아니면 내가 조희팔이게요? 왜, 서운해?" 고경사는 짧고 굵게 찬물을 끼얹는다. "창피해서요." 호찬은 후배가 귀여울 뿐이고. "역시 단호박. 고경사 짤 없대니까." 뒤를 휙 돌아보더니, "한 명 제껴서 형은 좋잖아." 이 말에 서광이 비추지라고 답하는 반경위. 호찬은 피식 웃으며, "물욕은 이빠인데 밉지가 않어요. 저래야 돼. 사람이 좀." 하며 계단을 마저 오르고, 가장 뒤에서 묵묵히 따라 올라오는 진반장은 호찬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얄밉게 눈을 흘겼다. 호찬이 마지막 계단을 딛고 올라서자, 90년대식 전당포가 펼쳐졌다. 먼저 출동한 형사들과 감식반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바닥에 엎드린 채 사망한 사체가 보였다.


 

사체를 내려다보는 강력 1팀 형사들의 표정이 숙연해졌다.  먼저 와 있던 차경장과 이순경이 다가왔다. 진반장이 CCTV 나온 거 있는지 묻자,  차경장이 답했다. "아뇨. 건물 관리인이 팔순 노인인데 카메라 꺼진 줄도 모르고 일주일을 보냈답니다." 진반장은 이 안에 따로 설치해 둔 게 있을 거 아니냐 다시 묻고, 이순경은 범인이 건물 배전함 차단기를 내렸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진반장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그럼 사전 답사를 했을 텐데 CCTV는 없고... 돈이나 물건 챙겨간 건?"이라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손도 안 댔다는 차경장의 답변이 돌아온다. 이때 사체 쪽에서 호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고야, 많이도 때렸다. 쯧쯧..."


호찬이 사체 앞에 변 보는 자세로 쪼그려 앉아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사체는 안면부 손상이 심각했다. 뼈 일부가 함몰돼 있기도 했다. 호찬은 계속해서 사체를 살피며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죽이는 게 목적이었으면 더 쉽게 했을 텐데... 굳이 이 난리를 피웠다는 건 참을 수가 없었단 얘기야." 진반장은, 일단 돈은 아닌 거 같으니 치정이나 원한 쪽으로 수사 방향을 잡아보자 말한다. 그러자 호찬이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형, 우리 관성으로 수사 안 하기로 했잖아. 벌써 잊은 거야? 순간, 진반장의 얼굴이 벌게지고 팀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호찬은 팀원들을 가리키며 반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수사 지시를 하기 시작했다. 이순경에게는 사체의 안면부를 가리키며, 입을 보니까 뭘 먹이려고 시도한 것 같으니 부검의한테 미리 확인하라 말했다. 그리고 고경사에게는, 전당포는 썩었는데 보관된 물건들이 젊은 사람들께 많다며 거래자들을 파보라 지시했다. 차경장에게는 건물 주변에 세워진 차량 블랙박스 빠짐없이 확보하라 말했다. '지금'이라고 덧붙이자, 장경장은 네! 하며 바로 뛰어 나갔다. 이어 주변을 쓱 둘러보더니 멀뚱히 서 있는 반경위에게 말했다. "반장님 모시고 가서 꿍한 속 좀 풀어 드리세요. 아주 중요해. 저러다 방귀 뀌면 다 죽어." "너 뭐라고 했냐?" 진반장이 욱해서 다가오자, 호찬은 진반장 얼굴에 두 번째 손가락을 세우며 침묵시켰다. "쉿! 안 끝났어." 호찬은 이순경의 어깨를 끌어안고 나랑 여기 좀 보자며 창가로 걸어갔다. 팀원들 모두 의아한 시선으로 이 모습을 바라봤다.


호찬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며, 맞은편 건물 창에 반사된 전당포 건물 가리키며 이순경에게 말했다. 반사된 거 보이느냐고. 이순경이 잘 못 알아먹자, 건물 이면에 환풍기 달린 게 안 보이냐고 다시 묻는 호찬. 그제야 이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입니다."


호찬이 이순경의 뒷목을 잡고 다시 안으로 들이면, 환풍구가 뚫려 있어야 할 벽이 막혀있었다. 이순경의 표정에 뭔가 이상하다는 기색이 번져 나가고, 호찬은 벽을 가리키며 팀원들에게 말했다. 저 뒤에 뭐가 있으니 가서 까보라 말했다. 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벽으로 다가가 진열대를 밀고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호찬은 팀원들과 반대 방향으로 계단을 걸어 내려가려는데, 진반장이 어디 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뚱한 얼굴로 답하는 호찬. "가라며?" 기가 찬 진반장은 "언제?"라고 짧게 답하고, 호찬은 한술 더 뜬다. "있어 그럼?"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손 털어내며 돌아서는 진반장. "가 새끼야. 낼부터 나오지 마." 이때 벽 뒤를 두드리던 팀원들이 외쳤다. "반장님!" 진반장이 시선을 돌리면, 벽 뒤에 감춰진 비밀 공간이 드러나 있었다. 붉은 조명이 새 나오는. 진반장이 달려가 내부를 들여다보면, 대마초 실내 밀경이 이뤄진 공간이 확인됐다. LED 조명과 온도계와 산도계 등. 사람은 없었다. 형사팀이 놀란 표정으로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바깥에서 호찬의 외침이 들려오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호찬은 승리한 파이터처럼 양손을 대각으로 뻗으며 소리 질렀다. "진반장, 승진 가즈아!!"



3.

호찬이 탄 구형 소나타가 도심을 달리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호기로운 사운드의 록사운드가 흘러나왔고 선글라스를 쓴 호찬은 광모 모델처럼 폼나게 코너링을 했다. 전면과 좌우측 차창으로 거리 곳곳이 스쳐 지나갔다. 호찬의 시선으로 보이는 각 건물과 골목 그리고 상점가와 유흥가에는 사건 번호들이 꼬리표처럼 붙어 지나갔다. 그리고 사건 번호가 붙은 자리마다 호찬의 과거 모습들이 스쳐 지나갔다. 일본도를 휘두르는 조현병 환자와 삼단봉으로 맞서 싸우는 열혈 호찬. 룸살롱에서 MZ 조폭 여럿을 줄 세워 끌고 나오는 일당백 호찬. 좁은 골목길을 뛰며 범인들을 추격하는 스프린터 호찬. 과거 추억이 하나씩 소환될 때마다 호찬의 입은 해당 사건 번호를 줄줄이 읊고 있었다. 도심을 가로질러 달리는 호찬의 차량 뒤로 멀리 다마스 한 대가 따라붙고 있었다. 그리고 차 안에는 '진심의 확성기'라고 이름 붙여진 유튜브 채널 운영자가 호찬의 차 뒤꽁무니를 쫓고 있었다.



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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