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MIYAMA TOKYO 사진책방
책 냄새로 가득한 도시를 기억해 봅니다. 도쿄 진보초, 헌책방 거리입니다. 저에게는 헌책방 하면 인천의 배다리가 먼저 생각납니다. 인천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참고서를 팔아서 극장을 가거나 야구장을 몰래 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글 쓰는 세계를 동경했고 작가를 꿈꿨으며, 수많은 책을 읽었고 결국은 문예창작과에 들어가서 시를 전공했습니다. 제 삶에 있어서 가장 친밀했던 동반자는 아마도 소설책과 시집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운명이란 것은 꿈처럼 모호하고 물처럼 예측할 수 없는 법이죠. 아무튼 요상합니다. 이십 대에 사진에 깊이 빠져서 급기야 사진을 전공하고 사진작가가 먼저 되어버렸습니다. 사진작가로 열심히 살았고, 작품발표도 십여 차례 했습니다. 이미지를 다루는 작가가 되었지만, 늘 가슴 한쪽에 문학에 대한 아련함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진비평을 하면서 전시글이나 잡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아주 가끔 소설도 써보고 시도 썼습니다. 하지만, 그저 그런 취미생활에 지나지 않았죠.
다시 책냄새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저는 여행을 계획할 때, 제일 먼저 책방을 찾아봅니다. 그리고 미술관, 갤러리들 순으로 여행 코스를 짜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는 로컬만이 가지고 있는 맛집들이 숨어 있겠죠. 암튼, 진보초에는 140여 개의 헌책방이 있다고 합니다. 1880년대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 공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다양하고 전문화되었다고 하는데요. 문학, 철학은 물론 연극, 영화, 사진, 외국 서적, 심지어 연예인 화보집, 포르노 소설, 미스터리, 바둑, 오컬트, 고양이 관련 서적까지 다양한 장르의 책들을 만날 수 있답니다. 작은 서점들은 헌책방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리가 아주 잘된, 정렬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반듯하게 꽂힌 책들과 그 책들을 대하는 종업원들의 자세를 보노라면, 경외감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부러움을 넘어선 감동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아카이브라는 단어가 뿌리내린 지 이제 겨우 스무 해 정도 되었을까요. 그러나 이곳은 이미 아카이브의 정석, 지식을 보존하는 성스러운 의식의 완성체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진보초의 수많은 서점 중에서도 KOMIYAMA TOKYO는 저에게 특별한 곳입니다. 1939년에 설립된 이 서점은 8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더군요. 1839년에 사진이 공표되었으니, 꼭 100년 후에 생긴 겁니다. 간다 진보초역 A7 출구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위치한 이곳은 사진 애호가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KOMIYAMA TOKYO에 들어서면, 빛바랜 사진집들과 희귀한 아트북들이 빼곡히 진열되어 있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서점이 단순히 책만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사진 인화지(놀랐던 것은 RC페이퍼)를 비싼 가격에 팔고 있기도 했습니다. RC페이퍼(resin-coated paper)는 작가들에게 연습용 인화지로 취급받았습니다. 전시용인 화이버베이스(Fiber Based Paper) 인화지를 오리지널로 쳐줍니다. 어쨌든, 오래된 일본 작가들의 인화된 작품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여행 중 취미 하나는 책을 사는 것입니다.(긴 여행에는 좀 고된 일이기도 합니다. 책 무게가 장난이 아니지요) 이곳에서는 사진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된 사진집 한 권을 샀습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은 책들로 <파려안사진책도서관>을 열기도 했습니다.
진보초의 헌책방들, 그리고 KOMIYAMA TOKYO와 같은 특별한 공간들은 책과 문화, 그리고 시간이 켜켜이 쌓인 도쿄의 보물 같은 곳입니다. 책의 향기와 함께 도시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진보초는, 우리 같은 여행자에게는 잊지 못할 최고의 선물이 됩니다. 도쿄 여행을 가신다면 꼭 한 번 들러보시기를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