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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과 고독 그리고 음악과 재즈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

by JI SOOOP

조금은 지난 일이지만, 도쿄 특파원으로 일했던 기자가 본인이 나온 학교를 소개해 준다면서 데리고 간 곳이 와세다대학이었습니다. 벚꽃이 막 피어오르는 날이었습니다. 학교 근처 식당에서 학생 때를 기억하며 라멘과 카레를 함께 먹고, 하루키 도서관을 찾아 갔습니다. 약간 칙칙해 보이는 학교 분위기에 비해 도서관은 경쾌해서 좋았습니다.


사실 저는 무라카미 하루키보다 무라카미 류를 더 좋아했나 봅니다. 류의 소설 <교코>가 오래도록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니까요. 하지만 책을 읽은 것으로는 하루키의 책들이 훨씬 많았을 겁니다. 하루키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를까요? 청춘과 고독, 음악과 재즈 등이 아닐까요? 어쩌면 인간 존재와 상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들을 풀어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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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가을에 문을 연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는 마치 하루키의 소설 속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 같은 느낌을 줍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거대한 계단 책장이 먼저 반깁니다. 양쪽의 높은 책장과 아치형 천장은 마치 동굴이나 터널을 연상시킵니다. 이는 하루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세계와 세계를 잇는 통로'를 상징하는 듯합니다.


이 도서관에는 하루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그가 기증한 책들, 세계 각국어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 그리고 그가 아끼던 재즈와 클래식 레코드들까지. 마치 하루키의 서재에 초대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오렌지 캣'이라는 카페입니다. 이름은 하루키가 직접 지었다고 합니다. 카페 안에는 그가 대학 시절 운영했던 재즈바 '피터 캣'에서 사용하던 피아노가 있습니다. 그의 자택에서 가져온 원목 식탁도 있죠. 이 공간에 앉아있으면, 젊은 시절의 하루키가 어떤 꿈을 꾸며 이 자리에 앉아있었을지 상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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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문학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듭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종종 우물이나 숲과 같은 상징적 장치를 통해 다른 세계로 이동합니다. 이 도서관은 그런 하루키의 세계관을 그대로 구현한 듯합니다. 책장 사이를 걷다 보면 어느새 하루키가 만든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와세다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고,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던 젊은 하루키.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 공간은, 하나의 소설 작품 그 자체로 느껴집니다. 하루키의 팬이라면, 아니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방문해볼 만한 특별한 장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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