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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을 만나다

인간을 해부하는 두 개의 시선

by JI SOOOP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작가들의 작업은 나에게 많은 사유를 갖게 한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내 작업의 원천이었을 만큼 큰 영향을 주었다. 베이컨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작품이 인간정제소(Human Refinery)다. 그의 작품을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 만났다.




인간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


20세기 중반,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은 이 질문을 붓과 캔버스로 풀어냈다. 그가 그린 인간은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하는 초상화 속 얼굴이 아니다. 그것은 비명 지르고, 찢기고, 뒤틀린 살덩이이며, 고독과 절규의 덩어리였다. 육체를 그렸지만, 그 안엔 정신의 갈기갈기 찢긴 조각들이 숨어 있었다. 베이컨은 인간 존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하려 했다. 아니, 차라리 그 ‘있는 그대로’라는 환상조차도 벗겨내고자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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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의 사진작가 지성배의 작업을 보며 다시 베이컨을 떠올렸다.


지성배는 회화가 아닌 필름 기반의 사진 작업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해부한다. 그의 시리즈 중 하나인 『인간정제소(Human Refinery)』는 제목부터 충격적이다. 인간을 정제한다니. 마치 공장에 투입된 원재료처럼 인간을 처리하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한 핵만을 추출하겠다는 의도처럼 들린다.


그의 사진 속 인물들은 분명히 실재하는 몸이지만, 낯설고 기이하다. 그것은 인체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감정과 존재의 흔적에 가까운 형상들이다. 찰나를 붙잡는 것이 사진이라면, 지성배의 사진은 그 찰나 속에서 인간의 실존을 짜낸다. 그리고 그 필름에 각인된 존재들은 마치 정제소를 통과한 후 남겨진 결과물처럼, 묘하게 절제되어 있고, 동시에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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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컨이 붓질로 사람의 내면을 뒤흔들었다면, 지성배는 필름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을 분해하고 다시 조립한다. 둘 다 어떤 방식으로든 ‘형상’을 해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차이는 분명하다. 베이컨의 그림이 날것의 감정과 혼돈을 캔버스 위에 쏟아낸 것이라면, 지성배의 사진은 정제되고 통제된 필름의 감광 안에서 그 감정을 밀도 있게 압축한다.


‘정제소’라는 은유는 현대 사회에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점점 더 기능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직장에서는 역할로, SNS에서는 이미지로, 통계 속에서는 숫자로 살아간다. 감정과 고통, 불완전함 같은 것들은 시스템에 의해 정제되고 다듬어진다. 지성배는 바로 이 사회가 우리를 어떻게 ‘정제’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남는지를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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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베이컨과 지성배. 한 사람은 고통을 폭로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정제했다. 그러나 둘 다, 우리가 누구인지 묻는 방식으로 예술을 사용했다. 그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리고 그 정제의 끝에,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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