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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시인을 파리에서 만나다

요제프 수덱 Josef Sudek - 사진에 새긴 고독의 미학

by JI SO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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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체코 사진가 요제프 자이델을 소개한 바 있다. 파리로 넘어갔더니, 체코 사진계의 거장 요제프 수덱(Josef Sudek, 1896-1976)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요제프 수덱은 한쪽 팔을 잃은 신체적 한계를 넘어 대형 카메라로 프라하의 영혼을 포착한 독보적인 사진가다.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중 입은 부상으로 우측 팔을 절단한 후, 그는 고립된 공간에서 빛과 그림자의 시적 대화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30×40cm 대형 유리건판을 다루기 위해 특수 제작한 삼각대와 장비는 그의 집요한 예술적 열정을 상징한다.


수덱의 대표작 <스튜디오의 창문> 연작(1940-1954)은 단순한 풍경 사진을 넘어 내밀한 정신세계의 투영이다. 그는 "창문은 나의 팔레트"라고 말하며,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 어스레한 새벽빛, 겨울나무의 실루엣을 20년간 집요하게 포착했다. 특히 1950년대 제작된 할로겐 램프 실험 사진에서는 인공광과 자연광의 교차를 통해 공간에 정신성을 부여하는 독창적 기법을 선보였다. 프라하 국립미술관 소장품 <비 내리는 창문>(1954)에서 볼 수 있는 흐릿한 유리 너머의 도시 풍경은 마치 몽롱한 기억의 조각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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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내 스튜디오에서> 연작은 수덱 미학의 정수를 보여준다. 커피포트, 유리잔, 악보책 같은 일상적 사물을 헤드라이트 하나로 조명한 이 작품들에서, 그는 "사물은 그 자체로 우주"라는 신념을 실험했다. 특히 1972년 제작된 <유리 컬렉션>은 빛의 굴절을 통해 투명한 유리들이 만들어내는 기하학적 환영을 기록, 물질과 빛의 경계를 해체하는 독창적 시도를 보여준다. 프랑스 사진평론가 앙리 카티에-브레송은 이 작품들을 두고 "고독한 알키미스트의 실험실"이라 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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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점령기(1939-1945)는 수덱의 작품 세계에 결정적 전환점을 안겼다. 전시 체제의 검은out(blackout) 속에서 그는 "불안한 밤"이라는 제목의 야경 사진을 제작하며, 프라하 구시가의 비어 있는 거리에서 역사의 침묵을 포착했다. <프라하의 밤>(1950-59) 연작에서 그는 8×10인치 대형 카메라로 30분 이상의 장노출을 시도, 어둠 속에 숨은 건축물의 윤곽을 유령처럼 재현했다. 이 시리즈는 전후 체코 사회주의 시기까지 이어지며, 정치적 억압 속에서도 변치 않는 도시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메타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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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덱은 전통적인 젤라틴 은염 인화 방식을 넘어 '푸리들로'(Puridlo)라 불리는 이중 유리 프레임 기법을 개발했다. 이 독창적 기법은 후대에 빌럼 플러시(Vilem Flusser) 같은 사진이론가들이 '기술 이미지'론을 전개하는 데 영감을 주었다. 그의 작품 속에서 빛은 단순한 조명이 아닌, 시간이 응축된 정신적 매개체로 기능한다. 오늘날 제프 월(Jeff Wall)이나 그레고리 크루드슨(Gregory Crewdson) 같은 현대 사진가들이 인공 조명을 활용한 서사적 구도에 집착하는 현상은, 수덱이 개척한 빛의 형이상학적 접근법에서 기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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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작업실에서 한평생을 보낸 이 사진가는 "나는 세상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환자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의 사진 속에 담긴 빛의 물리적 흔적은, 신체적 장애와 정치적 억압이라는 이중고 속에서도 예술적 진실을 추구한 한 예술가의 투쟁이자 위로다. 현대 디지털 사진이 넘쳐나는 시대에 수덱의 아날로그적 집착은 우리에게 '보는 것'과 '느끼는 것'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진정한 시각적 시(詩)가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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