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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귤밭창고

제주 귤창고와 함께한 시간

by JI SOOOP

겨울이 되면 제주의 귤창고를 찾아다녔습니다. 귤이 열린 귤밭의 풍경 속에 고즈넉이 자리 잡고 있는 귤창고는 귤을 그냥 보관하는 장소를 넘어 어떤 문화적 장소로서의 기능으로 바뀌어 가기도 했습니다. 구불구불한 제주밭길을 지나면서 만나는 귤창고들의 건축양식은 참으로 다채롭고 흥미로웠습니다.


귤창고를 찾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한 여정은 제주 풍경의 기록을 넘어, 제주 감귤의 뿌리 깊은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삶을 되새기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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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감귤은 약 천 년 전 고려 시대부터 재배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1052년 고려 문종 때에는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100포로 정한다"는 문헌이 등장하며, 이는 이미 그 이전부터 감귤이 재배되고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 감귤은 더욱 체계적으로 관리되었으며, 왕실에 진상되는 귀한 과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당시 제주도에는 관영 과원이 설치되어 감귤 생산이 장려되었지만, 과도한 공납과 관리들의 횡포로 인해 도민들에게 큰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감귤은 단순히 먹거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약용과 제사용으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특히, 감귤 껍질과 씨앗은 한약재로 사용되었으며, 그 효능 덕분에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제주 감귤이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제주의 문화와 생태를 상징하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제주의 감귤나무는 제주의 온화한 기후와 화산토양은 감귤 재배에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하며, 이러한 자연조건 덕분에 제주는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감귤 산지가 되었습니다. 특히, 도련동에 위치한 250년 된 네 가지 토종 귤나무들은 제주 감귤의 유전자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나무들은 단순히 오래된 나무가 아니라, 제주 고유의 생물학적 다양성과 농업 역사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각각의 품종은 독특한 특징을 지니며, 전통적으로 의례나 약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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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창고는 귤만을 저장하는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절마다 반복되는 농민들의 노동과 자연의 선물이 담긴 장소이며, 동시에 제주의 경제와 문화가 교차하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1960년대 이후 온주밀감이 도입되며 제주 감귤 산업은 급속히 성장했고, 귤창고는 이러한 변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요즈음 많은 귤창고들이 현대화되거나 다른 용도로 변모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곳에는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귤창고 안에는 농민들의 땀과 노력, 그리고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들어낸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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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귤창고를 찾아다니며 남긴 사진들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며, 동시에 현재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되새기는 작업입니다.


제주 귤농사와 귤나무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문화적, 생태적 유산입니다. 귤창고라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이 만들어낸 역사를 만날 수 있으며, 그 기억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이제 온난화로 인해 귤생산지가 육지의 남해로 옮겨지고 있는 상황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주의 귤밭과 귤창고는 여전히 오래도록 본연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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