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냉수드링킹하고 억지로라도 씩씩해지기
예전에 좋아했던 ‘또!오해영’이라는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었다. 주인공 해영의 대사였다.
“난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랬던 거지, 걔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라요.”
방영 당시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드라마였고, 이 대사 또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던 대사였다.
나 역시도 이 대사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을 만큼 이 말에 크게 공감했다.
그래 맞아, 나도 참 내가 애틋하지, 잘됐으면 좋겠고 잘되길 바라서 슬프기도 하지.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 얼마나 특별하고 애틋한 존재인가.
‘나’는 나의 서사의 모든 순간을 함께 지켜본 사람이며, 모든 감정을 함께 느끼고, 이별과 만남의 순간에도 어쨌든 자리를 함께 지켜온 존재이다.
스스로 자각할 수도 있고 크게 자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모두에게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각별한 감정의 존재일 것이다.
나를 향한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분노하고 상처 받는 것은 나에게 그 말과 행동이 미칠 파장과 슬픔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고,
어떤 순간이 소중하고, 또는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은 이 순간에 오기까지의 과정을 내가 모두 기억하기 때문이다.
나 또한 내가 애틋하다.
하지만 때로는 나를 너무 애틋해하지 않는 마음이 나를 위해 필요하다. 아무리 나에게 ‘애틋한 나’일지라도 말이다.
아니, 내가 애틋하게 느껴질수록 가끔은 더더욱 나에 대한 애틋함을 거두어야 할 때가 있다.
때로는 그 애틋함이 나를 더 슬프게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데, 혼자서 얼마나 외로운 순간들을 견디며 살아왔는데!’
이런 생각이 들면
내가 또다시 슬퍼야 한다는 게, 내가 또다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속상하고 화가 나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마음이 든다.
하지만 애틋하게 느껴지는 그 시간과 마음을 지나왔음에도 우리는 또다시 외롭고 슬플 수도 있다.
그러니 때로는 나를 너무 애틋하게 여기지 않아야 할 때가 있다.
냉수드링킹을 해서라도 억지로 씩씩해져야 할 때가 있다.
나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나의 슬픔을 더 크게 느끼게 만들지 않도록 말이다.
사실 나 또한 매번 이렇게 마음을 먹지만,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정말 한없이 씩씩하다가도 어떨 때는 작은 일에도 마음이 쪼그라든다.
사실 여전히 가끔은 도무지 모르겠는 마음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하지만 그래도 의연해지는 연습을 하려고 조금씩 노력 중이다.
‘애틋한 나’를 위해서 나를 애틋하게 여기지 않는 연습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