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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26. 2020

너에게도 다정하고 나에게도 다정하기

너도 그럴 수 있고, 나도 그럴 수 있어



예전에 이런 노래 가사를 들어본 적이 있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막대하고


 갑자기 이 노래의 가사가 생각이 났는데, 그리고 연이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이거랑 지금 완전 반댄데?

 그 날은 내가 사소한 실수를 한 날이었다. 공문으로 온 안내사항을 다른 담임선생님들에게 공지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혼선이 있었고, 다른 담임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바로 수정하여 다시 공지를 했다. 결과적으로 공지할 사항은 모두 공지를 했고, 안내할 내용은 모두에게 제대로 안내를 했다. 한마디로 큰 일은 전혀 아니었다. 큰 실수가 아니었다는 것도 알고, 잘못된 일이 없다는 것도 알고, 다른 선생님들도 종종 하는 사소한 실수라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 날 퇴근하는 내내 기분이 착 가라앉아 있었다. 왠지 바보같이 행동한 것 같아서 마음이 계속 쓰였고, 허둥지둥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 기분이 안 좋았다.


 나는 실수를 하는 게 겁난다. 실수에 따른 결과와 예상치 못한 상황이 겁나는 것도 있지만, 실수 이후 내가 느낄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우울한 기분이 더 겁난다. 그래서 더 실수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실수에 관대하지 않고, 허허 그럴 수 있지 하며 실없이 넘기지 못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팔꿈치로 물컵을 쓰러뜨리고, 지하 3층에 차를 댔으면서 지하 2층에서 차를 찾고, ‘아 맞아! 그거 안 들고 왔다’하며 출발하자마자 깨닫는 덜렁이 주제에 프로페셔널 완벽주의자가 할 말을 하고 있다니. 그래서 더 힘든 것 같다. 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데, 실수를 하기도 하고 엄마가 맨날 말하는 그 털팔이 인데, 털팔이는 사실 알파고를 꿈꿨나 보다.


 다른 사람에게 나의 의견을 말하는 것은 항상 조심스럽다. 다른 사람에게 불편한 말이나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은 더 어렵다. 돌아오는 길에 그 날 내가 했던 말을 다시 곱씹으면서 마음 불편해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괜히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가 걱정하며 말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상처 주고 싶지 않다. 누군가 생각 없이 던진 말과 행동으로 인한 상처가 얼마나 오래가는지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한 우울이 얼마나 느끼기 싫은 감정인지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기분은 걱정하면서 내 기분은 살피지 않을 때가 있다. 남에게는 안 할 말을 나에게는 가차 없이 해버릴 때가 있다. 나에게 다정한 말이 필요한 순간에 나는 스스로에게 더 다정하지 못하다.


  공문을 다시 안내하고 조금 늦게 퇴근을 하며 사실 마음속으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애써 외면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면 됐었는데. 왜 그랬지.’

만약 친구가 나에게 나와 똑같은 상황을 말했다면 ‘야, 그게 무슨 실수야. 다 잘 해결했구만. 실수 아니니깐 신경 쓰지 마.’ 이렇게 말했을 일인데 나한테는 ‘그래 너 바보같이 왜 그랬냐.’하며 불난 집에 부채질과 더불어 기름을 한 바가지 퍼붓고 있었다. 나한테도 그 위로가 필요했는데 말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자신을 채찍질하는 것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채찍을 맞고 달리는 말도 있는 반면 채찍을 맞고 엉덩이가 얼얼해서 주저앉는 말도 있을 것이다.(그렇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자신을 향한 채찍질 또한 진리의 케바케가 적용된다고 본다. 자신을 엄하게 대하며 더 열심히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내가 휘두른 채찍에 픽 쓰러지고 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친구가 실수한 일을 말하면 응원하는 라이언 이모티콘까지 야무지게 붙여가며 위로의 카톡을 보내면서 나의 실수에는 스스로 참 모질다. 나의 실수에도 다정해지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향한 채찍이 나에게는 위로도 그렇다고 다시 달리게 할 동력도 되지 않는데, 굳이 나에게 상처가 될 행동을 내가 나서서 할 필요는 없으니깐. 털팔이 같은 실수를 했을 때 위로의 카톡까지는 아니어도 치어리딩 하는 라이언 이모티콘 정도의 마음은 나에게도 보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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