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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Dec 05. 2020

어린 나의 슬픔이 오랜 나의 슬픔

어떤 마음은 괜찮아지지 않는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해주신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얘들아, 너네 어릴 때 꼭 여행도 많이 가고 해 봐. 너네는 마음이 지금 말랑말랑한 상태라서 뭘 보고 경험해도 느낌이 달라. 선생님은 20대 때 유럽여행 갔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지금 가면 그 느낌이 안 날 거 같아. 마음이 말랑할 때 뭘 많이 해봐. 책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가. 지금 해보는 거랑 나중에 하는 거랑은 다를 거야.”  


 이제는 학창 시절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거의 생각나는 것이 없지만 이 말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마음이 말랑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말랑한 마음에 이 말이 새겨져서 그런 걸까. 어쩌면 미술 선생님이 아니라 사회 선생님이 해주신 말일 수도 있다 어쩌면 국어 선생님일 수도. 그 말을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때 들었던 ‘말랑한 마음론’은 여전히 분명하게 기억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지금, 이 말에 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있다. 마치 옛날에 유명했던 가수를 회상하며 ‘정말 레전드였지. 시대를 앞서간 가수였어.’하고 그의 위대함을 재평가하는 것처럼, ‘맞아, 그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 정말 공감 가는 말이야. 너무 어릴 때 들어서 흘려들었었지.’ 하며 다시금 인생을 앞서간 이 말에 혼자 감탄한다.


 선생님의 말처럼 말랑한 마음일 때 경험한 것들은 나중에 경험하는 것과 다른 특별함을 가진다. 그동안 작고 소중한 내 월급(대학생이었을 때는 알바비)을 모아 나름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혼자 처음으로 돈을 모아서 떠났던 여행지인 제주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중국인 관광버스 6대와 함께 도착하는 바람에 여기가 중국인지 제주도인지 모를 만큼 많은 중국 사람들에게 떠밀리고 휩쓸려 정신없이 성산일출봉을 올라갔지만, 올라가는 내내 그냥 너무 좋아서 실실 웃으면서 계단을 올라갔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에도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사진을 보고서야 ‘아! 맞아, 이때 진짜 좋았어. 이 음식 진짜 맛있었어!’라는 마음을 떠올린다면, 혼자 처음 갔던 제주도는 그 날의 마음들이 너무 생생하게 새겨져서 사진을 꺼내보지 않아도 된다.


 말랑한 마음에 새겨진 순간들은 특별하고 강렬한 만큼 오래 기억된다. 말랑한 마음에 박힌 단단한 기억은 종소리의 잔음처럼 둥둥 마음을 오래도록 울린다. 행복하고 생경했던 순간들도 그렇지만, 슬프고 외로웠던 순간들도 공평하게 오래 마음에 남는다. 가끔은 내가 아직도 어릴 적의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여전히 그 마음들로부터 괜찮지가 않다. 아직도 덜 컸는지 ‘아휴 그때는 그랬었네. 참 어렸었네.’하며 훌훌 넘겨지지가 않는다. 아직도 마음이 말랑할 때 읽었던 책도 여행도 오래 기억에 남고, 그때의 슬픔도 기쁨만큼이나 마음에 오래 남는 것 같아. 선생님께서 이 말은 일부러 생략하셨던 게 아닐까.


초등학생 때, 학기 초에 늘 제출했던 기초조사표 종이를 제출하는 날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의 가정통신문은 손에 받는 사람은 학생이나 진정한 수신인은 학부모이므로 부모님께서 작성해주신 기초조사표를 파일에 곱게 넣어 학교에 왔다. 뭔지도 정확하게 모르는 안내장을 손에 쥐고 읽어보며 나에게 눈에 띄었던 칸이 있었다.


 인적사항을 적는 칸 아래 있던 “선생님께만 알려드리고 싶은 나의 고민!”이라는 점선 테두리의 칸. 정말 선생님이 내 고민을 들어주시는 걸까. 혹시 짝이 볼 새라 열심히 글을 적었다. ‘선생님 사실 저의 오빠는 장애가 있어요. 요즘 그게 조금 고민이에요. 마음이 슬퍼요.’ 짝과 바로 옆에 붙어있으면서 짝에게 들키지 않고 글씨를 적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는 아마 경험자들을 알 거다. 그래도 손 가림막 신공을 발휘하며 무사히 글을 쓴 나는 날벼락같은 말을 듣게 된다.


 “자, 조사표 갖고 온 친구들, 맨 뒤 친구가 앞에서 거둬오세요.” 아니, 이게 무슨 일이요! 선생님, 우리 둘만의 비밀 아니었나요. 나의 목표는 ‘짝 몰래 고민 쓰기’에서 ‘맨 뒤에 친구가 내 자리 오기 전에 지우기’로 긴급 변경되었다. 이번에는 지우개 신공을 발휘하여 무사히 글을 지우고 내 자리 옆으로 온 맨 뒷자리의 친구에게 조사표를 무사 제출하였다. 분명 목표는 성공적으로 완수했지만, 마음은 전혀 ‘미션 클리어!’의 후련한 기분이 아니었다.


 얼마 전 혼자 산책을 하다가 문득 혼자서만 긴박했던 그 날의 기초조사표 제출일의 기억이 났다. 아직 내가 마음 그릇이 크지가 못한가 보다. 갑자기 떠오른 그때의 기억에 벼락같이 조사표를 제출하던 초등학생 때의 나처럼 마음이 얼떨떨했다. 지금은 워낙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시대이기 때문에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기초조사표에는 정말 필요한 인적사항 외에는 아예 따로 무언가를 기재하는 칸이 없다. 아이들의 고민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교사와의 개별상담을 통해 이야기를 나눈다. 부모님의 직업을 적는 칸이 내가 어렸을 때는 왜 필요했던 걸까 조금 의아하기도 하다.


 선생님이 된다면 기초조사표는 꼭 내가 직접 걷어야지 다짐했었다. 나는 3월이 되면, 책상 위에 흰면이 보이도록 뒤집어 놓은 기초조사표를 교실을 돌아다니며 한 명 한 명 직접 걷는다. 선생님에게 적는 고민란이 없더라도, 혹시나 그때의 나처럼 벼락같이 지우개를 들고 고민을 지우는 아이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라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신공을 발휘하여 기초조사표를 제출했던 어린 기억은 꽤나 오래가서, 나는 그 이후의 기초조사표에는 어떠한 고민도 적지 않았다. 오래 전의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담담하지만, 그때의 마음은 성산일출봉을 올라갔을 때의 마음처럼 선명하고 분명하게 느껴진다. 말랑한 마음에 박힌 행복만큼이나 슬픔도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이겠지.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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