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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06. 2020

세상에 왜 이렇게 쉬운 게 없니

네 그래요 가끔은 노력 없이 성공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등산을 갔다 왔다. 정상에서 먹을 참치김밥도 야무지게 챙기고 힘차게 산행을 나섰다. 그리고 등산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허벅지 너무 아프다. 우리가 꼭 정상에서 참치김밥을 먹을 필요가 있을까. 그냥 가다 보이는 평지가 있다면 거기야말로 참치김밥을 먹을 베스트 플레이스,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하지만 가다 중간에서 참치김밥을 먹으면 느낄 괜한 씁쓸함과 뭔가 진 거 같은 기분을 알기 때문에 꾹 참고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정상까지 꿋꿋이 올라갔다. 그리고 정말 세상사 쉬운 게 없다는 생각을 삼백 번 정도 했다.


 등산은 하기 싫지만, 내 두 발로 올라간 정상에서 야무지게 참치김밥은 먹고 싶다. 운동은 하기 싫지만, 복근은 생겼으면 좋겠다. 빵도 먹고 과자도 먹을 건데, 살은 빠졌으면 좋겠다. 복권 당첨돼서 대박 나고 싶다. 모은 돈은 없지만 독립한다면 원룸 아니고 화이트톤 투룸 신축에 살고 싶다.


 손가락 아픈 건 못 참겠지만 하이코드 잘 치는 기타 고수가 되고 싶다. 영어공부 지금 하나도 안 하고 있지만, 자고 일어나면 갑자기 영어 잘했으면 좋겠다. 영어단어 안 외우지만 넷플릭스 자막 없이 보고 싶다. 그림 연습 안 해도 그림 잘 그리고 싶다. 공부 안 해도 공부 잘하고 싶다. 인터넷에서 옷 귀찮게 비교 안 해도 내 사이즈에 딱 맞는 보풀 안나는 옷 사고 싶다. 열심히 안 해도 재능 있고 싶다. 첫 문장도 쓰지 못한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결의를 다지기 위해 등산을 한다고 하지만, 무릎을 짚고 한 걸음씩 내딛으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렇다, 노력 없이 성공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저렇게 길게 했다.


 뭐든지 노력해야 잘하고, 성공할 수 있다는 거 안다.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진짜 쉬운 게 없다. 사소한 일들부터 사소하지 않은 일들까지 어쩜 이렇게 하나도 안 쉽지? 잘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게 가끔은 너무 속상하다. 다들 쉽게 쉽게 척척 다 해내는 것 같은데 나만 모든 게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 막막할 때도 있다.


 '아냐, 저분들도 보이지 않는 노력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겠어. 세상에 그냥 얻어지는 게 있겠냐. 열심히 해야 해' 하며 마음을 다잡지만 그래도 가끔은 노력하기 지칠 때가 있다.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죽도 되지 못하고 밥도 되지 못한 쌀알의 기분이 이럴까. 칼을 뽑아 들었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 하지만, 칼은 뽑았지만 늘상 애매하게 찌개용 두부 정도를 썰고 있는 것 같아 괜히 찝찝한 마음이다.


 나는 세상에 정말 쉬운 게 없는 것 같은데, 나에게만 그런 것은 아닐까 가끔은 겁이 난다.




+) 정상에 올라서 참치 김밥을 먹었는데 참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이 올라와보니 별 거 아니네.'라는 말은 절대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음번에는 유부초밥을 싸들고 등산을 가보고 싶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멈추지 않는 것이 재능’이라는 구절을 읽었다. 책에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문장이었지만 그 말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다.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죽도 밥도 안되든 어떻게든 계속해보긴 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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