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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11. 2020

선택과 고민은 끝이 없지

선택의 고민은 끝나지 않았어




 ‘라떼는 말이야’와 더불어 꼰대 같음의 표상 격으로 쓰이는 말들이 있다.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회사입니다.’ ‘야, 지금처럼 공부만 할 때가 제일 좋은 거야. 사회 나가봐라 선생님 말 다 이해한다.’ 등 이제는 너무나 꼰대의 클리셰 격 대사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드라마에 나오면 ‘에이 뭐야 설정이 좀 진부하네’라고 느낄 말들.


 나 또한 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께서 정확히 위에 있는 말과 똑같은 말(공부만 할 때가~)을 했었다. 반 아이들이 8할 이상이 흐린 눈을 하고 이 말을 흘려들었지만, 사실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는 정말 쉽지 않았고, 망할 놈의 자이스토리는 풀어도 풀어도 모르는 문제가 계속 나왔지만, 그냥 왠지 사회에 나가면 장난이 아닐 것 같았다.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고, 그래도 같은 공간에서 같은 책을 보고 물론 고를 수 있는 대학의 선택지는 다르겠지만 고민해야 할 것도 같은 지금이 그나마 제일 공평한 시기가 아닐까.


 졸업 후에는 우리는 같은 옷을 입지 않을 것이고, 분명 서로 다른 출발선에 서게 되겠지. 학교를 다니는 내내 그렇게 생각했었다. 어쩌면 고민해야 할 것이 강제로 정해져 있는 지금이, 전국에 있는 내 나이 또래의 모두의 고민이 ‘입시’로 한정되어 있는 지금이, 고민하는 것이 당연하고 고민을 말하면 응원받는 것이 당연한 지금이 인생에서 고민이 제일 적은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고민이 어디 입시뿐이었겠는가. 입시라는 큰 고민에 가려졌지만 그 뒤에는 또 그때만의 고민들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리고 돌이켜서 생각하면 나는 오히려 학창 시절에 고민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고민하는 문제는 몇 가지 되지 않았으나 그 몇 가지가 안 되는 고민에 온종일 마음을 써가며 속앓이를 했었으니. 하지만 확실히 고민은 그때가 더 적었다. 해가 갈수록 고민할 거리는 늘어가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해진다. 고민에 대한 선택과 책임의 무게도 점점 더 무거워진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고민거리를 붙들고 온종일 고민하지 않는 건 이 고민들이 내게 크게 와 닿지 않아서가 아니라 고민이 있든 없든 우리에겐 해야 할 일과 정해진 일과가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돼서 생긴 고민들은 답을 찾기가 힘들고, 원하는 답이 있더라고 그 답이 너무나도 까마득히 멀어 보인다. 가까워지려면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도 멀리 보이는 그 빛에 시작도 전에 질리는 기분이다. 내가 믿는 답이 정답인지도 사실은 긴가민가하고,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걱정되고 불안한 마음이 든다. 울지 않은 척 불안하지 않은 척 잔뜩 쪼그라든 마음을 애써 펴가며 걸어가는 것이 어른이 해야 하는 모습인 걸까. 사실은 좀 벅차다.


 한 때 나는 막연히 고민과 걱정이 하나도 없는 상태를 내심 바랐었던 것 같다. 예전에 화제가 되었던 한 통신사의 광고 카피처럼 ‘선택의 고민은 끝났어!’ 하며 단호하게 선언하는 그 날을. 하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한 선택과 고민의 순간은 끝나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선택과 고민의 순간을 지나서 지금의 내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선택과 고민의 순간에는 도무지 초연해지지 못하고 마음이 일렁인다.


 사람들이 가진 마음을 물질화한다면 어떤 형상일까, 나의 마음은 액체 상태일 것 같다. 작은 바람에도 물결이 일고, 빛을 받으면 그 빛에 마음이 녹아 반짝였다가도 또 바람이 불면 울렁이고 흔들거리는 액체 상태의 마음. 바람은 매번 부는 건데도 그 불어오는 바람에 강물에는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매번 물결이 인다. 바람 앞에도 초연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에 선택과 고민이 계속되는 거라면 물보다는 조금 단단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불어오는 바람에 조금 덜 일렁이고 흔들릴 수 있도록 말이다.



<본문 커버 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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