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요약본

나누고 싶은 마음

by 이아

곰쌤 소개드립니다. 저는 곰쌤, 다시 말하면 고미숙 선생님을 실제로 뵌 적은 없고, 또 덕질로 알게 된 분이십니다. 정말 멋진 분이십니다. 빠라밤~!


몇 년 전에 고미숙 선생님의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책을 읽고, 넘 좋아서 기억해두고 싶어서 손글씨로 요약해둔 것을 나누고 싶어서 여기 다시 올립니다.


♥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 ♥


21세기의 인문학의 화두는 몸! 몸이야말로 삶의 구체적인 현장이자 유일한 리얼리티다.

정보와 욕망의 혼연일체

생명이 원하는 것은 오직 순환과 운동뿐

문제는 앎이다. 앎이 곧 주권이자 평등의 원천이다.

단일한 척도 하에 모든 것을 포획하는 것이 자본주의 구사전략


성형=폭력적 동일성

양생: 병을 막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원기를 자양하는 것이 목표, 요절할 사람을 장수하게 하고, 장수할 사람을 신선이 되게!

몸을 생명과 우주의 교차점으로!

간/담: 목, 심/소장: 화, 비/위: 토, 폐/대장: 금, 신/방광: 수

아픔에도 불구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아파야 산다.


생명과 우주의 차원에선 아픈 것도 삶의 또 다른 과정

원초적으로 장애란 없다! 또 질병과 불행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질병은 생명의 능동적인 전략. 아픔을 통해서만이 삶의 새로운 질서가 창조

삶과 질병, 삶과 죽음은 대립 항이 아님. 오히려 질병과 죽음이야말로 살아있음의 표징이자 생이 선사하는 최고의 선물

소위 ‘운명적 사랑’을 하려면 정·기·신이 엄청 소모됨. 무의식까지 스트레스가 쌓이게 된다.

삶이 왜곡되면 생리적 리듬도 어긋나게 마련임



양생술: 무지로부터의 자유. 곧 내 안에 있는 지혜를 일깨우는 과정

지혜의 핵심은 소통

선은 맑고 가벼운 데서 나오고, 악은 무겁고 탁한데서 생기네.

소통하지 않는 삶은 그 자체로 병

앎=자유, 건강=지혜


공부는 양이 아니라 질, 질을 결정짓는 것은 집중력, 집중력의 원천은 몸!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은 안으로 향해진다(니체).

통즉불통: 통하면 아프지 않다. 아프면 통하지 않는다.

성숙은 곧 지혜고, 지혜는 화폐의 법칙으로부터 탈주하는 것

몸은 병원과 제도에, 마음은 가족과 사유재산 안에 갇혀 버렸다.


‘내가 제일 불행해’는 사실 “내가 제일 잘나가”고 싶은 욕망을 거꾸로 투사한 것임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한용운 「님의 침묵」) 날아가 버린다. 그것이 우주의 이치이자 원리이다. 사라지고 흩어져야 또 새로운 것이 생성될 수 있기 때문. 허무하다고? 아니다. 바로 그렇기에 here ane now를 오롯이 향유.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는다. 하여 인간은 어차피 ‘현재’를 살 수 밖에!

루쉰: 희망은 허망하다. 절망이 그러한 것처럼!

기존의 통념 따위는 일절 아랑곳하지 않는 자유와 배짱. 이것이 바로 지성과 야성의 눈부신 카리스마!!

왜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을 욕망해 주기를 욕망하는가?


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역을 다 치르고 나서 자신과 산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자신과 더불어 사는 최고의 길이 바로 공부다. 물론 이때의 공부는 자기 삶에 대한 탐구, 곧 지혜

질 들뢰즈: 노년기의 젊음이란 청춘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세대에 맞는 청춘을 매번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라고~

꿈은 병이다. 결국 꿈은 생명의 활동이 아니라 자본의 명령일 뿐.

나무의 목표는 열매가 아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고, 잘 살다보니 열매가 달렸을 뿐이다.

부질없는 욕심 덜기


지식과 몸의 완벽한 소외! 그럴수록 심장은 뜨거워지고 집중력은 약해진다.

조기교육의 광풍은 생로병사의 힘을 깡그리 무시하는 욕망의 덫

배우는 것은 강렬한 쾌락이다. 몇 살을 먹었든 간에 배우는 자의 육체는 그때 일종의 확장을 체험한다.

즉 문이 없었던 곳에서 갑자기 문이 열리고, ‘문’자체와 함께 육체가 열린다. 지성을 향한 ‘육체의 문’이 열린 것이다.

지혜: 지식과 삶의 능동적 교감. 자기에 대한 탐구, 자기에 대한 탐구가 우주적 비전으로 통하는 것

양생: 수련을 위해서는 사회적 윤리를 닦는 수양과 생사의 관문을 넘는 수행이 필요

화의 기운을 많이 쓰면 허화가 망동하여 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가 발생

서사와 유머야말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최고의 다리!

사람에겐 사람만이 필요하다.

주고받는 말, 함께 하는 행동, 어제와 다른 사고방식

프리랜서는 말 그대로 ‘길 위의 인생’이다. 어떠한 조직, 지위, 보장도 없지만 그렇기에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표현 할 수 있다. 욕망과 능력의 일치


병은 일상의 표현

밝고 명랑하게 살고 싶다면 인테리어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디지털 문명은 모든 고정된 것을 연기처럼 날려버린다.

따지고 보면 가장 안정적인 상태는 죽음

학벌, 직업, 결혼을 지배하는 숨은 신은 화폐, 그러나 세상에 돈만큼 불안정하고 돈만큼 변덕스러운 것이 또 있을까?



부를 일구려면 그 잠재적 파괴력을 다스릴만한 내공이 필요

돈이 불러들이는 운명의 인과를 깊이 통찰하라!

생존을 위한 필요인가? 소비를 위한 욕구인가?

소비의 핵심은 타인들과의 차별성, 이때의 기쁨은 행복(평화)이 아닌 쾌락(슬픔)

돈의 맛은 절대 거저가 아니다. 반드시 그 맛을 본 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함


몸을 쓰면 마음이 쉬고, 몸을 쓰지 않으면 마음이 바쁘다.

생명은 전적으로 자율성에 기반한다.

부귀는 유한하지만, 지혜는 무궁하다.

걷기가 일상화되면 잡념과 번뇌가 사라진다.

보리콜라쥬의 경제학: 몸과 공간, 사람과 사람 그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것


노예에겐 평화가 없다. 하여, 많이 벌면 벌수록 결핍과 불안의 양 또한 증가

돈이 삶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삶의 창조성에 복무하는 곳이 공동체

부처가 되는 건 이적이나 설법이 아니라 얼마큼 ‘소유로부터 자유로운가’에 달려있다.

시간은 공간의 휘어짐이고, 공간은 시간이 주름. 시공간의 리듬, 그것이 곧 차서

팔자: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되풀이하는 엇박



리듬을 타고 강밀도를 높여라

핵심을 앎: 아는 만큼 걷고, 걷는 만큼 열린다.

이 대책 없는 ‘팔자타령’의 고리를 끊고, 어떻게 자기 운명의 ‘능동적 용법’을 터득할 것인가

철학을 하고 사유를 해야만 비로소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무엇을 더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온전한 주인이 되고 싶은가, 아닌가 일 뿐이다.


봄(see)=앎=사랑

운명이 주인이 된다는 것은 존재와 세계에 대한 해석을 온전히 자기 힘으로 할 수 있음이며, 오직 스스로의 힘으로 생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를 수 있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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