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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아 Dec 30. 2022

브런치 글쓰기에서 지키고 싶은 것

경계를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

한강 작가님의 소설, 희랍어 시간 중에서 아래의 내용을 첨부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아래의 내용은 제가 쓴 글이 아닙니다.  


읽어보시면 왜 제가 브런치 글쓰기에서 제 내담자분들을 지키고 싶어 하는지 철벽수비, 철벽방어를 외치는지 이해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고, 저도 이 부분에서 더 경계를 세워야 할 필요가 있기에 기억하고자 아래의 글을 첨부합니다.



자신의 감정을 잘 읽을 수 없을 만큼 어린 나이였지만, 그녀는 그 문장이 품고 있는 섬뜩한 차가움을 분명하게 느꼈다. 그녀는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세계는 그녀에게 당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캄캄한 암흑 속에서 수많은 변수들이 만나 우연히 허락된 가능성, 아슬아슬하게 잠시 부풀어 오른 얇은 거품일 뿐이었다. 떠들썩하고 웃음이 많은 손님들을 서름서름하게 배웅하고 난 저녁 무렵, 그녀는 툇마루에 쪼그려 앉아 땅거미에 묻혀가는 마당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최대한 숨을 죽이고 어깨를 웅크린 채, 그토록 얇고 거대한 한 꺼풀의 세계가 어둠에 삼켜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녀가 고백한 이 이야기를 심리치료사는 흥미로워했다. 혹시 그게 최초의 기억입니까,라는 그의 질문에 그녀는 아니요,라고 대답한 뒤 더 생각을 더듬었다. 햇볕이 드는 마당가에서 보낸 한나절의 기억-모국어의 음운들을 처음 발견했던-을 꺼냈다. 그 일화 역시 심리치료사의 마음에 들었다. 두 개의 기억을 신중하게 결합해 그는 결론을 만들어내려 했다. 최초의 기억으로 떠올렸을 만큼 당신이 언어에 사로잡혔던 것은, 언어가 세계와 결합되는 회로가 아슬아슬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 아닐까요? 말하자면 그 매혹은, 당신이 세계에 대해 가져온 위태롭다는 느낌과 무의식적으로 유사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심리치료사는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그럼, 최초로 꾸었던 꿈을 혹시 기억합니까?


어쩌면 그가 자신의 저서에 사례로 인용할 생각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는 문득 상상했다. 그 엉뚱한 상상 때문에 불안해져 그녀는 고백하지 않았다. 글을 깨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꾼, 이상하게 생생하고 차가웠던 꿈에 대해서. 낯선 거리에 눈이 내리고 있었고, 표정 없는 낯선 어른들이 그녀를 지나쳐갔다. 그게 전부였다. 어떤 사건의 전개도, 결말도 없었다. 오직 서늘한 감각뿐이었다. 눈이 내리는, 귀를 틀어막은 것처럼 조용한 거리. 처음 보는 사람들. 혼자인 자신의 몸.


그녀가 침묵하며 그 꿈의 세부에 집중하려 애쓰는 동안, 심리치료사는 처방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갔다. 당신은 삶을 이해하기에 너무 어렸고, 당연하게도 자립적으로 살아갈 힘이 그때에는 전혀 없었으며, 위태했던 출생의 과정을 들을 때마다 자신의 존재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위협감을 느꼈던 것이라고. 그러나 이제 당신은 훌륭히 자랐으며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위축하지 않아도 된다고. 목소리를 크게 해도 괜찮다고. 충분히 공간을 점유하고 어깨를 곧게 펴라고.


그 논리를 따라가면 그녀의 남은 삶은 하나의 투쟁, 자신이 이 세계에 존재해도 되는지 의심하는 가냘픈 내적 질문에 한 발 한 발 응답해가는 투쟁이 되어야 했다. 그 명석하고 아름다운 결론의 어딘가가 그녀를 불편하게 했다. 여전히 그녀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싶지 않았고, 자신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아왔다고도, 본성의 자연스러움을 억누르며 지내왔다고도 생각되지 않았다.


순조롭게 상담이 진행되고 있었던 오 개월째,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는 대신 말을 잃은 것에 심리치료사는 충격을 받은 듯했다. 이해합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이해합니다. 소송에 패했다는 사실을, 때마침 찾아온 육친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겠지요. 견딜 수 없을 만큼 아이가 그리웠겠지요. 이해합니다. 그 모든 것을 혼자서 버텨낸다는 게 불가능하게 느껴졌겠지요.


과장되게 간곡한 그의 어조에 그녀는 당황했다. 가장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그녀를 이해한다는 그의 말이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담담하게 알았다. 모든 것을 묵묵히 수습하는 침묵이 두 사람을 둘러싼 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요.


그녀는 펜을 집어, 탁자에 놓인 백지에 반듯한 글씨로 적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요.


From. 희랍어 시간 - 한강


한강 작가님도 심리 상담을 받아보신 경험이 있으신 것 같네요. 위의 글을 읽고 제가 추측한 것입니다. 그런데 심리치료사에 대해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하신 것 같아서 안타까웠고, 실제로 상담에서 좋지 않은 경험을 하신 분들이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여러 차례 상담을 받아보았고, 좋았던 경험도, 좋지 않았던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강 작가님은 또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멈추지 않고 좋아하는 작가님이시고, 소설 희랍어 시간에서 위에 첨부한 부분을 읽고, 나는 이러지 말자! 고 굳게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한 5~6년 전에 읽고, 이 부분을 키보드로 쳐서 저장해 두었습니다. 저 혼자 기억하기 위해서였죠. 그때는~


그런데 이제는 이 부분을 함께 나누고 싶어 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상담 선생님들도 이 부분을 고려해보시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에서요. 같은 현상을 이렇게 다르게 보는 두 사람(상담자, 내담자)을 소설에서 만나게 되어 공부가 되었습니다. 늘,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cream020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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