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아 Aug 12. 2023

2023년 8월을 지내며

블랙미러, 악귀, 숲 속의 자본주의자 

어느덧 2023년이 절반이 지나고, 계절이 가을의 문턱으로 넘어오고 있음을 실감한다. 2023년은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또 한 번 체험했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에너지를 쏟아붓고, 그러다가 최근에 몸과 마음이 조금 편해지니 다시금 반복되는 '어두운 주제들'이 나에게 들이닥쳤다. 


덥고 습한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면 생생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이번 여름, 아주 습하고, 무더운 여름으로 기억될 것 같다. 습하고 무더우면 일단 뇌가 녹는 느낌이 든다. 머리는 멍해지고, 행동은 굼떠진다. 


나 자신을 객관화시켜 보자면 여름에 뭣이던간에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그냥 내려놓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듯하다. 그렇게 6, 7월을 무력하고, 습하고 우울하게 보냈고, 8월에 폭염에 절정을 찍고 어제부로 마음이 달라진 것 같다. 한 번에 달라졌다기보다는 조금씩 오르락내리락하며 왔다 갔다 했었다.


이번 여름에 나는 친구의 권유로 블랙미러(영국 드라마) 시리즈를 정주행 했고, 최근에 악귀를 신명 나게 빠른 속도로 봤고, 또 그 친구의 권유로 박혜윤 씨의 숲 속의 자본주의자를 읽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에게 반복되는 어두운 주제란 것은 우울과 불안,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다. 


나의 어두움을 원재료로 지금 나는 심리치료사가 되어있다. 그런데 바로 그 어두움이 또다시 변주가 되는 것이었다. 뱅글뱅글 도는 생각들, 결론이 나지 않는 물음들, 나에게 없는 것들에 대한 결핍감. 끈덕지게 달라붙어 질척대며 떨어지지 않았다. 이걸 끝내기 위해선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그러고 있는 와중에 정기적으로 만나는 내담자들 중, 두 명이 드라마틱하게 회복되는 과정을 함께 하게 되었다. 그 두 명의 내담자는 뱅글뱅글 도는 반복되는 주제들에서 최근에 빠져나온 분들이다. 그분들을 보면서 어떤 확신을 느끼게 되었다. 뱅글뱅글 돌아도, 결론이 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확신 말이다. 


그 두 명의 내담자들은 각각 다른 면에서 나와 비슷한 성향이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이 해낸 것들(외적인 성취가 아닌, 내면의 변형)을 보면서 나도 깨닫고 있다. 나의 '어두운 주제'가 도대체 해결되지 않고, 나아지지도 않으며 세월의 무게로 더 두껍고 밀도 있게 나를 짓누르더라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신기한 것은 이것은 외적인 성취나 상황의 변화로 되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변해야 된다는 것을 말이다.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에서는 디스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있고, 그게 진짜 현실이 될지라도(이미 현실이 된 것도 있었고, 현실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가 조금씩 욕심을 내려놓고(숲 속의 자본주의자 참고) 진짜 자신의 본성을 찾아서 재미있게 산다면 미래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숲 속의 자본주의자에서 저자 박혜윤 씨는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게으르고 나태하게 살고 있는데 그게 잘못은 아니지 않느냐고, 그 말이 이상하게 큰 위로가 되었다. 이번 여름 작심하고 게으르게 살아보려 했는데 막상 아무것도 안 하고 진짜 게을러 보기로 결심하니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싶어 진다. 이렇게 우리는 이상하고 모순적인 마음을 갖게 된다. 그 지점이 또 재미있는 지점인 것 같기도 하다. 


원래 이 글을 시작하면서는 나의 '어두운 주제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쓰려고 했었는데 지나치게 사적이고 낯 뜨거운 것 같아서 살짝 방향을 틀었다. 역시 나는 옆길로 너무나 잘 샌다. 목표대로 계획대로 잘 안된다. 목표를 세우면 오히려 옆길로 가버리니 나 원참. 기가 차서! 그런데 어쩌냐.. 이게 나인데!     

이전 12화 브런치에서 생기는 동지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