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
때는 2021년,
11월 24일(수) 2학년 전국연합학력고사가 끝나고 종례 후 아이들을 보내고 있는데, 한 학생이 다가오더니 뜬금없이 통보를 했다.
"선생님, 저 자퇴하려구요."
엥?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데리고 나와서 사정을 들어보았다. 요약하자면, 정시 준비를 하는데, 학교에서는 정시 공부를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시에 집중하기 위해서 자퇴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1학기까지 내신도 나름 잘 챙기고 공부도 좀 하는 녀석이어서 종합전형을 준비하던 녀석인데, 1학기 시험을 망치고 난 뒤에 본인의 꿈인 서울 상위권 대학 진학이 쉽지 않다는 것을 상담 때 알고 나서 정시를 하겠다고 상담을 했던 녀석이기는 하다. 그래도 일단 충동적인 판단인지 충분한 고민의 결과인지부터 판단하기 위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들어도 충분한 고민의 결과는 아닌 거 같았다.그냥 자퇴하고 검정고시 보고 수능 봐서 대학 가겠다는 큰 틀만 있지, 어디서 어떻게 어떤 공부를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나한테 이야기를 안 할 걸 수도 있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집에 일단 보내고 학부모님과 통화를 했다. 어머니랑 통화했는데, 어머니도 아이가 강력하게 원해서 동의는 했지만, 게획이 뚜렷한 것도 아니고,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믿어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셨다...
'하...어쩌지'
아이와 진지하게 다시 이야기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끊었다.
다음날. 부모님과 다시 상의했는데 자퇴를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상담실에 의뢰를 해서 상담을 받게 했다. 그런데.... 상담선생님께 쪽지가 왔다. 학생이 자퇴에 대한 의지는 강한데, 자퇴 후의 생활이나 학업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계획도 막연하고 추상적이라는 내용의...(내가 느낀 바와 다르지 않다. 평소에도 뭔가 본인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친구였다.) 그러면서 정시에 대한 정보를 주는 상담을 진행해주시면 어떻겠다고 제안하셨다. 단, 자퇴를 반대하는 뉘앙스가 되지 않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해달라고 하셨다.(역시 전문가는 다르군요!)
그래서 수업시간을 할애해서 상담을 했다. 표준점수, 백분위와 같은 정시 성적을 보는 방법부터 원하는 대학이 어느정도의 성적이 되어야 갈 수 있는지 등등 어쨌든 이것저것 알려주고, 공부방법도 이야기해줬는데, 그리고 상담선생님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원래 자퇴 전에 숙려제도를 통해 자퇴를 유예?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 학생의 경우 자퇴를 빨리 하지 않으면 내년 검정고시 응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내년 수능을 못본다는 것이다.. 헐! (참고로 자퇴 후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 응시를 할 수 있다. 그 기준일이 검정고시 시험 공고일인데, 8월에 보는 시험의 시험 공고가 6월쯤에 나기 때문에 기간을 잘 살펴야 한다.)
결론은 숙려제도 없이 바로 자퇴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학부모님과 다시 상의를 해서 진짜로 이렇게 바로 자퇴를 진행할지 상의를 했다.
자퇴 결정!
금요일에 바로 자퇴를 하겠다는 걸 말려서 주말동안 생각해보고 월요일날 결정하자고 했는데, 서류 작성할 거 있으면 미리 달라고 해서 학생편에 미리 서류를 전달했다. 그리고 월요일날 서류를 들고 학부모님과 학생이 왔다.
설명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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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그리고 작별인사. 그렇게 끝이 났다. 수목금토일월 자퇴가 이루어지는 데 6일이 걸렸다. 10년간의 교직생활에 처음 있는 일이라 나도 당황하고,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어쨌든 본인이 선택한 것이니 응원해주는 수밖에!
부디 원하는 대학이 갈 수 있기를! 부디 지금 이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기를!
그런데, 정시공부하겠다고 자퇴를 선택하는 게 말이 되는 상황인가? 공교육의 문제인지, 입시의 문제인지, 우리학교의 문제인지 혼란이 온다. 뭐가 되었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부모라면? 그 아이에 부모라면? 나는 자퇴는 못 시킬 거 같다. 물론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다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