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소리들이 있다. 창문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일상이 속삭이는 게 들린다. 저 멀리 산에서 울려 퍼지는 부엉이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사각거림,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엔진 소리. 이 모든 게 어우러져 밤의 위안을 만든다.
처음엔 그저 소음이었다. 잠을 방해하는 짜증 나는 소리. 그래서 이사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근데 언제부턴가 이 소리들이 없으면 잠이 오지 않는다. 중독됐나 보다. 소리에 중독되다니, 참 웃기다. 그런데 소리에 중독된 것이 아니고 누군가의 일상과 무언가의 소리에 중독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은 일부러 늦게 잠들기도 한다. 소리를 더 오래 듣고 싶어서. 마치 어릴 적 엄마가 들려주던 자장가처럼, 이 소리들은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 특히 좋아하는 건 새벽녘에 들리는 부엉이 새소리. 그 소리를 듣고 나면 비로소 안심하고 잠들 수 있다.
낮에는 또 다른 소리들이 찾아온다. 집 근처 학교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처음엔 시끄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다. 주말이면 더 조용해지는 동네가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차를 몰고 나갈 때면 이 소리들이 그리워진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문득 산새 소리가 듣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온다. 귀를 기울이면 어디선가 들려올 것만 같은 그 소리를 찾아서.
밤이 깊어갈수록 소리는 더 선명해진다. 마치 누군가 볼륨을 높이는 것처럼. 가끔은 이 소리들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잘 있었니?" "오늘 하루는 어땠어?" 그럼 나는 속으로 대답한다. "응, 잘 지냈어. 고마워."
이런 밤이면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혼자 살지만, 이 소리들이 나와 함께 있어 주니까. 나의 작은 친구들, 나의 소리 동반자들. 그들과 함께라면 어떤 밤도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때로는 이 소리들을 녹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내 그만둔다. 아마 녹음된 소리는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함을 담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저 귀를 기울이고, 이 순간을 온전히 느낀다.
이제 이 소리들은 나의 일부가 되었다. 마치 심장 박동 같은 것. 내가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신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창문을 연다. 세상이 들려주는 자장가를 듣기 위해. 그리고 내일 아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