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won Jan 26. 2022

부캐의 탄생: 번역의 로망

지난 여름, 문득 번역가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지난 가을과 겨울에 걸쳐 책 하나를 번역했다. 

올 봄, 빠르면 2월에 출간될 예정이다. 


이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무척 놀라워 했다. 

“직업을 전향한거야? 디자인 일 하는줄 알았더니?”

“번아웃이었다면서! 그냥 푹 쉬지."

"영어로? 한국어로? 어떻게? 어디서? 어쩌다?” 


그러나 가장 크게 놀랄 사람을 꼽는다면 바로 10년 전 과거의 나일 것이다. 


“오, 외국어를 전공하니 번역가가 될 수 있겠군요.”

대학시절 나는 외국어 전공자로서 사람들에게 이 말을 듣는 것을 너무나 싫어했다. 마치 무례한 말을 들은 것처럼 발끈해 했다. 번역가 만큼 지루한 직업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창의적인 사람이고, 창의적인 사람은 화려한 일을 해야한다고 믿었다. 예쁜 오피스룩을 입고 뷰가 좋은 세련된 사무실에서 예쁜 오피스룩으로 치장한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어 마음 떨리게 하는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그런 일 말이다.


집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조용히 번역에 몰입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눈빛을 반짝이고 있는 만 32세의 나는 이제 10여 년 전 내가 두려워하던 그런 종류의 지루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이를 들면서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기대를 쌓아보고 실망 혹은 성취감을 느껴보는 경험, 다양한 환경에 나를 내던져 보는 시도, 역할 갈등 속에서 우선순위를 다져가는 시간을 쌓아가면서 나라는 사람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스무살은 지루한 번역가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이제 막 성인이 된 어른아이가 인생의 화려함과 지루함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했을 리가 없었다. 홀로 고독하게 서재에서 책과 사전을 붙들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고뇌하는 일이 이제 막 하루 16시간의 공부 지옥에서 벗어난 학생의 눈에 즐거워보일 리 없었다. 


예쁜 오피스 정장을 입고 출근하면 무지 불편할 뿐이어서 (특히 점심 먹고 나서 앉아있을 때 허리 단추를 몇개 풀러야 한다) 사실 업무 효율의 최고 복장은 후드티에 청바지와 운동화 차림이고, 실제 업무에서는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탁구치듯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회의 보다는 회의를 위한 회의가 더 많고, 상상하던 그런 멋진 아이디어는 마감의 압박으로 저녁 10시 경 회의실에 꼭꼭 묶인 상태에서 아까 시켜먹은 저녁 배달 빈그릇의 쉰 음식 냄새 속에서 탄생하곤 한다. 그 어떤 사무실의 뷰 보다도 우리집 침대 뷰가 최고고 그래서 이따금 달콤하게 재택 근무를 즐겨왔건만, 그 마저 코로나와 함께 강제적 일상이 되면서 신물나는 현실이 되어 버렸다. 


한때 몸을 담았던 회사 뉴욕 오피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위치했었고, 그래서 출근길이 몹시 설렜다. 


이러한 현실에 실망해서 내가 하던 일을 내려놓은 것은 아니다. 이런 일련의 깨달음은 그저 개인이 '직장인화' 되어가면서 가랑비에 옷젖듯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지, 퇴사로 귀결되는 비극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배고픈 순간에 무얼 먹어야 하는지 식욕의 정체를 정확하게 집어내는 것처럼, 번역 일을 하고 싶다는 구체적인 욕망이 작년 여름 어느 오후 별안간 머릿 속에서 고개를 들었다. 번아웃에서 회복했지만 여전한 막막함에 발을 떼지 못하고, 간헐적 글쓰기의 짜릿함이 공허함으로 변해가던 찰나였다. 나이가 들면서 돌이켜 보니 나에게는 인생의 특정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아차리는 특기가 있었다. 이 역시 하나의 신호임을 직감했다. 번역은 내가 장기적으로 더 행복하고 건강한 직업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샛길이었다.  




몸이 허할 때 스테이크가 당기고, 스트레스 받을 때 매운 음식이 당기고, 숙취에 시달린 몸이 해장국을 당겨 하듯이, 우리가 본능적으로 욕망하는 모든 것에는 숨겨진 분명한 이유가 있다. 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부족한 것이 있다면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 일종의 방향을 제시하는 암시이기 마련이다. 끓어오르는 물 속 개구리처럼 타성에 젖어드는 우리에게 인생이 전해주는 선물이다. 


그러니 아주 작은 욕망이라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모든 욕망을 무조건 따르자는 뜻이 아니라, 그 욕망이 나에게 보내려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잠깐 멈춰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번역’에 대한 욕망이 마음에 불쑥 찾아온 후로 나는 오랫동안 이 욕망의 정체를 이해해보고자 했다. 그 

이면에는 아주 개인적이고도 섬세한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 




번역은 창의적인 일이 수반하는 불확실성과 모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였다. 

당장 책을 쓴다고 상상해보자. 

책의 장르에서부터 분량, 서술 시점, 서사구조까지 모든 것이 내 상상과 결정에 달려있다. 실제로 지난 여름 책을 써보려고 한참 시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막막함에 압도당하여 단 일주일만에 백기를 들고 말았다. 크기가 무한대인 완벽한 백지 위에 서있는 기분이었다. 애초에 본업도 마찬가지였다. 디자인이라는게 아무리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도 리서치의 결과물, 디자인의 결과물을 온전하게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다. 늘 변수에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좋게 말하면 열린 마음을 갖는거고, 나쁘게 말하면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다. 반면, 번역에는 확실한 작업 ‘대상’이 있다. 쪽수가 정해져 있고, 이야기가 완결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 어딘가에서


번역은 창의적인 일과 다르게 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측정할 수 있다.

창의적인 일의 치명적인 단점은 결과물의 속도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1시간 내에 반드시 광고 문구를 만들어 내겠어’라고 다짐한다고 해서 흡족할만한 무엇인가를 도출해낼 수 있는게 아니다. 브랜드 마케팅 회사에서 일할 때, 면도기 이름 하나를 짓기 위해서 팀원 네명이 3개월을 투자했던 기억이 난다. 야근도 정말 많이 했었다. 반면 번역에는 완벽한 정답이라는 것은 없을지라도, 종이 위에 적힌 단어 하나 하나를 번역해 나가면서 내가 완성에 가까워지고 있구나 하는 일종의 성취감을 매일 느낄 수 있다. 규칙적인 성취감을 얻어보고 싶었다. 



번역은 고독하게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고독이라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고독의 시간은 나의 역량을 더 끌어낼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작업하다가 막혔을 때 유튜브를 보거나 산책을 나간다고 나에게 눈치를 줄 직장 상사도 없고, 누군가를 설득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착수 계획서, 중간 점검 보고서, 최종 보고서와 같이 결과물을 위한 보조물들을 만드느라 시간을 소비할 일이 없다. 번역은 오로지 나와 작업의 대상 간의 순수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경험이다. 회사의 협업이 탁구처럼 빠르고 리드미컬하다면, 번역가와 편집자간의 협업은 해리포터의 올빼미의 전보처럼 느릿하고, 신중하고, 어찌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계속 이유를 파고 들다보니 마지막 이유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 이유가 나에게 무엇보다 간절하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번역’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강주원이라는 세계관의 한국어와 영어 두 언어 사이의 탄탄한 다리를 구축하고 싶었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생활한다는 것은 채우지 못할 공허함과 좌절감을 언제나 가슴에 안고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얼마만큼 외국어를 잘하고 못하느냐와는 다른 종류의 문제다. 남편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친구들에게 은근한 속내를 밝히고, 직장에서 중요한 미팅에 동료들을 설득시킬만한 인사이트를 발표하고, 보험회사와 전화로 병원비에 대해 실랑이를 벌일 때, 언어의 장벽은 그 모든 크고 작은 순간에서 내 생각을 ‘할인’하거나 오해를 부를 가능성을 만들어 낸다. ‘그러면 내가 너무 무안하잖아’ 와 같은 마음은 아직도 어떻게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급한 상황 속에서 정제되지 못한 언어가 튀어나오면 스스로가 미워지기도 한다. 미국에서는 영어를 하는게 당연하고, 나는 그 당연한 일을 하기 위해 원어민보다 뇌용량을 더 써야 한다. 그 사실이 가끔 억울하다. 너무 드라마틱하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타고나기를 언어에 예민해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외국에 사는 이상, 일상이 어쩔 수 없이 번역 투성이다. 그래서 번역이라는 활동을 외국인이라서 어깨에 짊어질 수 밖에 없는 과업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해내는 일로 삼아보고 싶었다. 한국어와 영어의 간극을  ‘비극’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해석으로 채워낼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미국에 정착하고 외국인들과 소통하면서 자연스럽게 잘하게 된 일을 대놓고 뽐내고 하고 싶었다. 


지난 여름, 그래서 나는 번역가가 되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스타 @juwon.kt에 방문해주셔서 더 잦은 업데이트와 글조각들을 만나시고,
여러분들의 소식도 들려주세요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