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잡생각이 계속될 때, 소크라테스가 알려주는 마음훈련법

by 크리터

우리는 종종 멈추지 않는 잡생각에 휘둘린다. 특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밀려올 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생각을 흘려버려라.”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왠지 모르게 피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왜일까? 우리가 어떤 생각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문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sticker sticker


우리는 종종 걱정 속에서 떠오르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곧 벌어질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마음 한편에서는 ‘혹시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적 융합(cognitive fusion)이라 부른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 생각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끊이지 않는 걱정, 불안, 잡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 그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날마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

“지금 준비하는 일이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 선택이 틀린 길이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끝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가능성이 마치 곧 일어날 현실인 것처럼 단정해버린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정,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진실은 단 하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삶은 무수한 가능성의 연속이다. 진리를 탐구한 철학자조차 불확실한 세상과 삶에 대해 완벽히 예측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어떤 일을 ‘최악’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그 일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세는 이것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설사 최악이 벌어지더라도, 어떻게든 되겠지.”


이 말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 이 생각이 또 왔구나.

반갑지는 않지만, 와도 괜찮아.

하지만 나는 이 생각을 진실로 믿을 필요는 없어.”


이것이야말로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힘이다.

우리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파도는 치겠지만, 그 파도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그저 바라보고, 흘려보내면 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