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종종 멈추지 않는 잡생각에 휘둘린다. 특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밀려올 때, 이런 말을 듣게 된다.
맞는 말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 말은 왠지 모르게 피상적으로 들리기도 한다. 왜일까? 우리가 어떤 생각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것이 나에게 중요한 문제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걱정 속에서 떠오르는 부정적인 시나리오를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곧 벌어질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마음 한편에서는 ‘혹시 정말 그렇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인지적 융합(cognitive fusion)이라 부른다.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그 생각과 하나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끊이지 않는 걱정, 불안, 잡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고대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다.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자세, 그 깊은 통찰이 담겨 있다.
우리는 날마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한다.
“지금 준비하는 일이 실패하면 어떡하지?”,
“이 선택이 틀린 길이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끝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가능성이 마치 곧 일어날 현실인 것처럼 단정해버린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가정, 하나의 해석일 뿐이다.
진실은 단 하나,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삶은 무수한 가능성의 연속이다. 진리를 탐구한 철학자조차 불확실한 세상과 삶에 대해 완벽히 예측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어떤 일을 ‘최악’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그 일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세는 이것이다.
이 말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다.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 이 생각이 또 왔구나.
반갑지는 않지만, 와도 괜찮아.
하지만 나는 이 생각을 진실로 믿을 필요는 없어.”
이것이야말로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힘이다.
우리의 마음은 바다와 같다. 파도는 치겠지만, 그 파도에 휩쓸릴 필요는 없다.
그저 바라보고, 흘려보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