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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Nov 18. 2019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가요.

의자와 나.

곱게 물들었던 단풍의 색이 미처 바래기도 전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자 불어오는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으로 인해 점점 제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이 아쉬운지 저 떨어지는 고운 나뭇잎들이 안타까운지 눈이 팔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얼마 전 커피숍에 앉아 창밖으로 보이는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커피숍 문이 열리며 훈남의 K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내게 미안했는지 멋쩍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대전에서 함께 근무하다가 먼저 발령이 났던 오랜 인연이었다.


금방 환하게 웃으며 큰 걸음으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오더니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난 그런 그가 고맙고 좋았다. 한 번도 그 누구한테도 말한 적은 없지만 나는 내 맞은편 자리가 비어있는 걸 참 싫어한다.


일행이 짝수일 때는 맞은편 의자가 비어있을 리 없지만 사람 수가 홀수일 때는 누군가는 빈 의자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원탁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의자가 비어 있는 게 나의 잘못도 아닌데. 어쩌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편한 상대가 아닐 수도 있기에 내 앞에 앉는 것을 피하지는 않나 싶어 생각이 많아지곤 했다.


이런 것이 나에 대한 평가인 거처럼 느껴지는 게 싫어 두 명이상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사람이 많으면 서로의 대화에 집중하기도 어렵고 나 스스로도 그 분위기에 적응하는 게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은근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싫었다. 그렇다고 내 입으로 내 앞에 앉으라는 말을 하기도 우스워 그런 자리는 처음부터 피하곤 했다.  


그러나 K는 식당엘 가도 커피숍엘 가도 마치 나의 이런 기분을 눈치라도 챈 사람처럼 늘 내 앞에 앉았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는데 그의 배려였음을 어느 날 우연히 깨닫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커피숍을 갔다가 나의 맞은편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본 후 그가 나를 생각하고 마음을 써주는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한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마음을 써주는 것에 취해 있다가 그렇지 않은 상황을 만나면 그때서야 깨닫게 되는....


이런 배려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으니 오늘은 날이 흐리고 비가 와도 감사하게 느껴진다. 먹구름이 밀려가고 비가 그친 뒤에는 분명히 맑은 태양이 우리에게 따뜻함을 가득 안겨줄 테니.


그리고 '배려'라는 글자를 잊지 않는 한 나로 인해 그 누구도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앞이기보다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따뜻한 시선으로 누군가 어색한 기분이 들지 않도록 나에게 그랬던 그의 그런 마음을 절대로 잊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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