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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Jun 19. 2019

태극기 휘날리며

나도 한국 사람이지.


pixabay - 태극기



아침부터 하늘은 잔뜩 골이 나있다. 일기예보처럼 비가 오려나. 창밖에는 불어오는 바람에 태극기가 이리저리 펄럭이고 있었다. 태극기가 지나간 시간으로부터 옛날이야기를 불러오고 있었다.   


우리 세종경찰서 관내에는 우리나라 사람과 결혼해 가정을 이룬 다국적 문화를 가진 외국인들이 많이 이주하여 살고 있다. 내가 만났던 외국인들은 20대, 30대 동남아 여성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조국(祖國)을 떠나 이방인과 결혼을 하고 머나먼 타국까지 와서 시집살이를 하는 그들을 보면 엄마 맘인지는 몰라도 애틋하고 뭐라도 도움이 돼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발령받아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경찰서 마당을 내려다보다 게양대(揭揚臺)에 걸려있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현충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인지 다문화 가정을 위한 좋은 기획안이 떠올랐다. 먼저 계장님께 기획하려는 취지에 대하여 보고한 후 내 자리로 돌아와 기획안을 작성했다. 


기획안 제목은 '나라사랑, 다문화 가정 태극기 배부 및 홍보'로 정했다. 홍보내용은 우리나라 태극기 유래와 의미, 그리고 올바른 국기 게양법 등에 대하여 팸플릿을 제작해서 태극기와 함께 배부키로 하였다. 


기획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문화가정의 현황이 필요했다. 그 가정의 유치원생과 초등학생 수(數)를 파악한 후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과 또는 엄마나 아버지랑만 사는 가정을 대상으로 선발한 후 태극기 구입에 필요한 예산을 산정(算定) 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였다. 태극기를 무료로 배부하는 곳이 있어 전화를 걸었지만 취지는 좋은데 자기 관내가 아니기 때문에 무료 배부는 어렵다는 답변이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고 있던 계장님께서 우리 경찰서에서 거래하는 인쇄소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기획안 내용을 간단히 설명하자 홍보 안을 가지고 방문해주기를 원했다. 홍보 안은 완료된 상태였기에 계장님과 함께 인쇄소를 방문했다. 인쇄소 사장님은 서울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다 세종시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분이었다. 


뜻깊은 사업에 동참하고 싶다며 태극기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지 확인한 후 경찰서로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약속한 대로 사장님은 홍보 팸플릿 시안(試案)과 태극기 구입 견적서를 가지고 경찰서를 방문했다. 시안 구성도 좋고 태극기 견본품도 맘에 들었다. 


타 부서의 협조를 받아 어린 학생들에게 선물할 크레파스, 연필 등을 하나하나 예쁘게 선물 포장을 하고 상자에 옮겨 넣었다.  


현충일이 오기 2주 전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시간에 맞춰 계장님과 다문화 가정을 찾아갔다. 어른들은 생활이 바빠서인지 태극기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선물과 함께 홍보 팸플릿을 전달하며 대문으로 나가 직접 태극기 게양하는 방법 등을 안내하자 달가워하지 않던 표정이 밝아졌다. 


다른 가정을 방문하고 마지막 가정을 방문했을 때였다. 할머니가 유치원에 다니는 손자와 초등학교 1학년인 손녀와 셋이 살고 있었다. 계장님과는 안면이 있었는지 오래된 쟁반에 두유를 가지고 마루로 나오셨다. 할머니와 몇 마디 나눈 후 아이들 방으로 들어가 홍보 팸플렛을 펼친 후 태극기를 함에서 꺼내 설명을 했다. 







처음에는 장난치던 아이들이 듣는 자세를 고치고 태극기에 대한 나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줬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이 더욱더 초롱초롱해지며 반짝거리는 것을 보자 나 자신도 기분이 새로웠다. 설명이 끝나고 학용품을 전달하자 할머니 손자가 태극기를 그리겠다며 크레파스를 찾았다.   


그동안 아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내 나라 국기에 대한 유래와 의미를 듣지 못하고 생활했지만 태극기의 유래와 의미를 들은 이상 오랫동안 기억해주기를 기대했다. 대문으로 나와 국기 게양법을 알려준 후 남매가 직접 게양하도록 권했다. 게양된 태극기를 바라보며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했다. 


태극기를 내리자 어린 손자는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태극기 깃봉을 들고 마당을 뛰어다녔다. 바람에 휘날리는 태극기는 사무실에서 바라본 게양대의 태극기를 바라보는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경찰서로 돌아오기 위해 돌아선 우리를 뒤따라 나온 할머니와 아이들은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대문 앞에서 배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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