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birthday.
나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하루'가 기대되는 아침을 맞이하는 게 얼마만인지. 이유 없이 설레는 맘을 가라앉히고 사무실 테라스로 나가 뒷짐을 지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건너편 산 밑 길가의 나뭇잎 색이 정말 예뻤다.
가을 햇살이 고운 탓일까 그 빛을 듬뿍 받은 길가의 작은 나뭇잎들은 봄꽃처럼 맑고 깨끗했다. 뛰어가 나뭇잎을 따와 예쁜 상자에 담아 선물하고 싶은 욕심에 갈등이 생겼다.
기관 탄력적 유연근무가 있는 날이라 그런지 전화벨도 울리지 않는 사무실에는 고요함만이 가득했다. 이따금씩 지나가는 차 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혼자는 못살겠구나 싶었다.
오늘은 우리 '형님'의 생일이다. 톡으로 '형님! 생일 축하드려요. 미역국은 드셨어요?.....'주저리주저리 맘까지 담아 입력하고 빨간 하트 하나를 점찍듯 입력해 날렸다. 나의 형님은 '남편의 누나'이다. 그런데 왜 남편의 '누나'를 형님이라 불렀을까. 여자인데. 언니도 아니고 '형님'이라 부르다니. 남자 형제들 간에도 형님이라 부르지 않는가.
나의 형님은 남편에게는 엄마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조카들에게 내 남편은 아빠 같은 존재였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서로를 의지하며 지금까지 지내왔기 때문인지 함께 생활한 여느 가정 남매보다도 누나를, 동생을 생각하는 맘이 남달랐다. 이런 맘을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기에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며 지내왔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 늦게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올케가 안쓰러워 매일 남편 손에 반찬을 만들어 들려 보내시는 우리 형님을 보면 시누이가 아니고 친정 언니 같은 생각이 든다. 표현은 못했지만 늘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마음뿐이다. 최근 들어 시아버님의 병세가 더 나빠지셔 요양병원에 모신 후로는 형님과 남편은 요양병원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시아버님을 뵙는 오늘은 더 마음이 무겁고 복잡하시리라.
언젠가 짧은 기간 동안 함께 근무한 직장 상사께서 '사랑'에 대하여 물으신 적이 있었다. 그때 왜 이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생각났는지 모르겠지만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고 대답한 게 기억난다. 상대방에 대하여 깊이 배려하고 아끼는 맘을 갖지 않고서는 이런 맘이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은 똑같다.
오래전 남편을 따라 처음 인사드리러 가던 날, 맑게 웃으시며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도 한결같이 때로는 여동생을, 또 때로는 엄마처럼 나를 걱정해 주시는 우리 형님과 남편을 볼 때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며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