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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좐느 May 11. 2018

미스터리한 우노 할아버지

0511  (D-56)

미스터리한 우노 할아버지  


피렌체에 머무는 4일 동안 하루는 피사와 친퀘테레에 가는 일정을 잡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피사에 다녀오고 오후는 친퀘테레 가서 아름다운 해안마을을 감상했다. 여행 시작 전에는 하루 만에 그 일정이 가능할까 내가 혼자 다녀올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기차 티켓을 사전에 예매해 버려서 나는 가야만 했다. 

 모든 일정이 순조로웠고 마지막 관문 저녁 8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넘어오면 된다. 2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가야 한다. 친퀘테레 근처에 있는 라 스페치아 센트럴 (La Spezia Centrale) 역에서 피렌체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생겼던 일이다. 나는 트렌이탈리아 사이트에서 좌석을 선택하고 티켓을 구입한 상태고 티켓을 출력도 해왔다. 6번 칸의 18D 좌석. 열차의 맨 뒷자리이고 1인만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기차마다 좌석이 조금씩 다르지만 기차의 맨 앞과 맨 뒤에 창가 쪽에 붙은 1인 좌석이 있어서 혼자 앉아가기 편하고 옆자리에 캐리어를 놓을 공간이 있어서 꽤 좋은 자리다. 

지친 몸을 이끌고 6번 칸 기차에 올랐다. 풍채가 좋은 이탈리아 할아버지가 내 자리에 앉아계셨다. 할아버지께 내 티켓을 보여주고 내 자리다.라고 말했는데 할아버지는 이탈리아 말로만 한다.

" 아 그래? 그런데 난 캐리어도 있고 넌 앞으로가"

계속 "우노ㅡ우노, 하면서 손가락을 앞을 가리켰다. 할아버지가 5번 칸의 같은 자리여서 자리를 바꾸자는 뜻일까? 하고 펜을 꺼내서 기차 티켓에 [5]를 적어서 보여줬더니 할아버지는 [1]을 적었다. 그것도 한 번은 1을 쓰고 또 한 번은 1을 강조해서 적는 거다.


'1번 칸? 1번 칸에 가라고?'

당황스럽다. 옆자리 1인석에 앉은 다른 할아버지도 합세해서 계속 앞을 가리키며 [우노! 우노!] 하는 거다.
아니 도대체 우노가 모길래. 왜 나한테 1번 칸으로 가라고 하는 거지. 말도 안 통하고 답답하다. 하는 수 없이 1번 칸으로 갔다. 기차 출발 직전이라 여기저기 자리 찾는 사람들. 좁은 공간에 서있는 사람을 헤치며 1번 칸으로 갔다. 1번 칸으로 가는 중에도 

'아니 도대체 내가 왜 내 자리 두고 1번 칸으로 가야 하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가는 중간에 역무원이 보이지 않아서 무작정 1번 칸으로 이동을 했다. 자동문을 열고 1번 칸에 딱 들어가는 순간 엄청난 포스의 역무원을 만났다. 역무원 유니폼이 경찰 제복같이 생겨서 좀 무서운  느낌이다. 1번 칸은 딱 봐도 좌석이 넓직넓직한 1등석이었다. 내가 들어가는 쪽을 바라보고 역무원이 앉아있었는데 40대쯤 돼 보이는 여성이었다. 직급이 낮은 직원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서 무슨 서류 같은 걸 보고 있었으니까.

도움을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티켓을 보여주며 말했다.

" 마이 씻 어나더 맨"

정말 이 단순한 말을 다 알아들어서 감사하네. 그 직원은 나에게 말했다. 나를 혼내는 것 같이 화내는 느낌으로

" 넌! 너의 자리라고 말해야 돼. 가서 말해!"

알아듣기 쉽고 정확한 영어 발음이었다. 내가 우물쭈물

"올드 맨"

했지만 완전 나를 나무라듯

" 너의 자리라고 말하고 일어나라고 해! 너의 자리라고 말해!!"

이런 느낌으로 말했다. 역무원한테 혼나는 기분이다. 좀 도와주지.. 1번 칸에서 역무원에게 호되게 혼나고는 6번 칸 내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내 자리로 돌아가니 할아버지가 내 자리 옆에 서계셨다. 내가 할아버지께


"노 노"


하고 고개를 흔들고 1번 칸 쪽을 가리키니  할아버지가 뭔가 수긍하는 듯이 뭐라 뭐라 말을 하신다. 이 할아버지가 남에 자리에 그냥 앉아있었던 거란 걸 깨달으니 화가 났다. 뻔뻔하게 이유 없이 1번 칸으로 가란 소리만 하다니.


"잇츠 마이 씻!"

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가뜩이나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한데 할아버지 때문에 괜히 왔다 갔다 힘만 뺏다.
할아버지는 내 자리 옆자리에 캐리어를 치우지 않았다. 그냥 내 옆 6번 칸 끝 문쪽에 계속 서계셨다. 그러고는 앞사람들과 수다를 떤다. 내가 느낀 점은 분명히 일행이 아닌데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다는 거다. 이탈리아 사람들 수다도 장난 아니다. 말이 일단  매우 빠르고 분주한 느낌이랄까. 할아버지는 그렇게 1시간을 넘게 서계셨다.
이탈리아 기차도 입석이 있는 건가? 이 할아버지는 무임승차인 건가? 알 수없다. 이탈리아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역무원이 열차를 지나면서 티켓을 일일이 확인하는데 할아버지가 내리기 전까지 직원은 지나가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지나서 어떤 역에 정차하자 할아버지는 캐리어를 가지고 사라지셨다.

나중에 알게 된 건 [우노]가 1이란 거였다. 1,2,3,4, 우노,두에,뜨레,꽈뜨로 정말 이탈리아 말은 우시따[USITA] 출구라는 말 밖에 모르고 떠났는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수도 없이 왜 친 말이 숫자 1이었다니.. 상황 자체가 좀 황당하기도 하고 말이 안 통하니 참으로 답답했던 상황이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좀 웃긴 상황이기도 하고 평화롭던 내 여행에도 이런 에피소드가 생기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가면 글로 적어봐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젊은 사람이 앉아있었다면 좀 우기면서 내 자리니까 너의 자리로 가라고 했을지 모르겠는데 할아버지니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미스터리했던 우노 할아버지와의 일화는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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