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 채우러 갑니다.
그 어떤 말보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말, 바로바로 엄마의 마법 같은 문장.
"밥 먹으러 안 올래?"
"이번 주에 안 올래?
닭볶음탕 기가 막히게 해 줄게."
엄마는 대단한 손맛의 소유자이다. 외할머니보다 외할아버지가 요리를 더 잘하셨지만 외할아버지가 요리를 전수해 주신건 아니니.. 후천적 노력형 손맛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항상 바쁘셨던 부모님을 둔 탓에, 정작 엄마의 어린 시절 기억에는 따듯한 집밥, 매일 먹는 집밥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다고 한다. 엄마의 학창 시절, 학교 가는 길에 친구 집에 들러 함께 등교를 하곤 했는데, 친구네는 매일 아침마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갓 지어진 따끈한 새 밥과 찌개를 먹었다고 한다. 밥과 정의 민족답게 친구의 어머니는 몇 번 식사를 권했지만, 숫기 없는 10대 소녀였던 엄마는 현관에서 친구를 그저 기다린 적이 더 많았다고 했다.
그런 날이 며칠이었을까. 엄마는 그때 다짐했다고 한다. 훗날 가정을 꾸리면 매일 아침 새 밥을 지어 푸짐한 아침상을 차리겠다고. 온 가족이 모여 아침밥을 함께 먹겠다고 말이다.
그 다짐은 성대한 아침밥상이 되어 나는 아침을 제대로 먹지 않으면 힘을 못 내는 어른으로 성장하였다. 저녁엔 늘 다음 아침밥 재료를 다듬으시던 엄마, 시간이 오래 걸리는 육개장 등을 하실 때에는 저녁부터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하곤 했다. 아침을 채 기다리지 못하고 엄마 옆에 쪼르르 붙어 육개장에 넣을 양지고기 등을 잘게 찢는 걸 돕는다는 명분 아래 몇 개씩 입으로 가져가곤 했었다.
집밥 귀신인 내가 독립한지도 벌써 만 3년 하고도 반년이 더 지났다. 밥을 스스로 해 먹는 행위는 어찌나 어려운지, 왜 하루에 세끼나 챙겨 먹어야 하는지. 야심 차게 장을 보고 요리를 해도 야채 등은 냉장고 안에서 금방 썩기 일쑤였고, 남은 음식은 냉장고 안에 한 번 들어가면 도통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배달 음식도 먹어보고, 외식도 해보지만 남는 건 가득한 허기와 텅 빈 통장뿐이었다.
'밥 해 먹는 일'에 지치고 또 지쳤을 때쯤, 엄마의 밥 먹으러 오라는 전화는 그 어떤 말보다 달콤하다. 한두 달에 한 번 본가에 방문할 때면 엄마는 일주일 내내 준비를 하신다고 한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국 종류부터, 맛있고 배부른 한 그릇 요리가 되어줄 각종 불고기, 제육... 냉장고에 두고두고 먹을 수 있는 마늘종 장아찌, 멸치볶음 같은 반찬까지. 본가만 가면 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삼식이가 된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푸짐하게 얻어먹고 양손 가득 코스트코에서 한 달치 장 본 사람처럼 무거운 음식들을 이고 지고 다시 나의 보금자리로 온다. 케케묵은 냉장고 속을 정리하고, 엄마 음식으로 가득 채우면 다시금 힘이 나곤 한다.
함께 살 땐 몰랐다. 밥상에 얼마나 많은 손과 품이 들어가는지, 매일 차려주시던 그 밥상이 하나하나 다 엄마의 정성이고 사랑이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