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도둑
정민의 어린 시절, 거리를 지나다 보면 ‘자수하여 광명 찾자’ 같은 방첩 관련 표어나 포스터가 자주 눈에 띄었다. 전방 군부대 담벼락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살벌한 내용도 있었다. 그만큼 온 나라가 반공정신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실제로 북한군 도발이 빈번하여 1968년 1월 김신조 등 북한 124 군부대 소속 무장게릴라 31명이 대통령 암살을 목표로 청와대를 습격하려 하였고, 11월에는 간첩 90여 명이 울진 삼척에 침투하여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는 이승복 어린이를 처참하게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반면, 이러한 반공 이념 및 간첩 이슈는 정권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동백림 간첩 사건이었다. 1967년 7월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형욱은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 대남 적화 공작원 사건의 전모를 발표하였다. 교수, 의사, 예술인, 유학생을 포함하여 구속된 인원만 107명이었을 정도로 대규모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다른 배후가 있었다.
동백림 사건 직전인 1967년 6월 총선에서 박정희 정권이 행정력과 경찰력을 동원하는 등 부정 선거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에 시민은 대통령의 하야와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였고 당국으로서는 이런 분위기를 가라앉힐 이슈가 필요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일시에 사로잡을 이벤트를 기획한 것이다. 결국, 대법원에서 전원 무죄 확정이 되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려는 소기의 목적을 이미 달성한 이후였다.
간첩이 정민이 살던 시골 마을에 나타날 리 없었지만, 무려 20만 원이었던 간첩 신고 포상금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당시 20만 원은 현재의 포상금인 5억 못지않은 큰 금액이었다. 사람들은 내심 주변에 수상한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품고 다녔다. 정민도 어떤 날은 간첩 신고 포상금을 받는 꿈을 꾸었고, 또 어떤 날은 형들을 따라 금강 변을 하릴없이 순찰(?)하기도 했다. 간첩이 배를 타고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고 형들이 '추정한' 지역이었다.
정민에게는 위로 형이 둘 있었는데, 틈만 나면 형들을 졸졸 쫓아다녔다. 혼자 있을 때 몰래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훔쳐보기도 했지만, 형들을 따라다니면 간식거리를 얻어먹거나, 이런저런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었다.
어디서 빌려 왔는지 사냥용 산탄총으로 참새를 잡으러 가는 날이 가장 재미있었다. 그렇게 들판을 쏘다니며 잡은 참새는 마당에 장작불을 피워 구워주었다. 특히, 정민의 형들은 금강에 나가 낚시를 자주 했는데, 그런 날이면 붕어나 쏘가리 같은 민물고기로 끓인 매운탕이 저녁 밥상에 올라왔다.
정민은 형들이 낚시 도구를 챙기면 숙제를 하다말고 후다닥 따라나섰다. 사실 정민에게는 낚시 말고 다른 목적이 있었다. 형들은 배가 출출할 때쯤 정민에게 만두를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마을에 있는 만두집까지는 정민의 걸음으로 왕복 한 시간이 걸렸다.
이 먼 거리를 뛰다시피 다녀오면 주먹만 한 크기의 잡채 만두 한두 개가 정민에게 주어졌다. 당면이 꽉 차게 들어 있는 그 만두의 맛은 그 무엇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정민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형들이 정민에게 만두 심부름만 시킨 것이 아니었다. 물고기 입질이 없어 괜히 심통이 나면 정민을 괴롭히며 놀렸다. 물론 명분은 수영을 가르쳐 준다는 것이었지만 실상은 극한 공포 체험이었다. 둘이서 정민의 팔다리를 붙잡는다.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흔들다가 멀리 던진다. 정민이 허우적거려도 모른 척한다. 알아서 헤엄쳐 돌아오라고 손짓을 한다. 물을 한가득 먹고 숨이 꼴딱 넘어갈 때쯤 건져낸다.
수영을 가르치려는 획기적인 시도(?)였는지는 모르겠으나, 형들의 못된 장난질로 트라우마가 생긴 정민은 물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또래의 아이들이 강에 뛰어들어 물장구와 물놀이를 하면서 놀 때 정민은 구경만 하였다. 참으로 짓궂고 무모하기 그지없었지만, 정민은 그런 형들을 마냥 좋아했다.
때로 장난을 심하게 치기는 했어도, 형들은 막냇동생인 정민을 끔찍이 아끼고 보살펴 주었다. 그런데 한 번은 그런 형에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흠씬 두들겨 맞는 일이 있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 커다란 붉은 해가 노을빛으로 물든 강을 건너갈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타고 다니던 빨간색 자전거 뒤에 정민을 태운 작은 형은 금강 둑 인적이 드문 곳에 정민을 내려놓았다. 형은 그러고 나서 한참을 말없이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인지한 정민은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형이 입을 열었다.
"정민아, 더우냐? 어머니도 그 돈 벌려면 너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려야 돼."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정민은 엿판의 엿가락처럼 데굴데굴 굴러다니면서 맞았다. 어머니의 지갑, 형이 이러는 것은 아마도 그 일 때문일 것이다. 아팠든지 아니면 아프지 않았든지 둘 중의 하나였겠지만 처음 겪어보는 낯선 충격들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형이 주저앉아 있는 정민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아프지? 어머니, 아버지도 우리 먹여 살리려면 항상 이렇게 힘들고 아프셔."
그러니까 이 모든 일의 발단은 어제 점심때였다. 어쩐지 오전 수업 시간에 시큼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 같았지만 무시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꺼내려고 가방을 여는 순간 코를 찌르는 김치 냄새가 올라왔다. 도시락 반찬으로 김치를 담은 작은 유리병의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던 것이다.
밭에서 농사를 지은 감자나 호박 같은 것이 없을 때는 대부분 도시락 반찬이 김치였지만, 그날 따라 김치가 꼴도 보기 싫었다. 가방 바닥과 책 모서리에 벌겋게 물든 김칫국물의 흔적을 대강 닦아낸 다음 정민은 교실을 나왔다. 그리고 친구들이 밥을 먹는 동안 학교 운동장을 하릴없이 배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청소 시간에도, 그리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배에서 연신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온통 주변의 먹거리들만 보였다. 특히, 학교 정문 앞 구멍가게 좌판에 쌓여 있는 건빵 봉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정민이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열심히 부채질하고 있던 주인 할머니가 별사탕이 들어있는 새로 나온 과자라며 헐거운 웃음을 흘렸다.
그 별사탕이 추가된 신상품 건빵은 한 봉지에 25원이었다. 정민은 괜스레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보았지만, 당연히 뭐가 잡힐 리가 없었다. 특히 그게 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구멍가게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건빵과 별사탕이 정민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집에는 식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이대로라면 어머니가 밭에서 돌아오시고 저녁밥을 차려줄 때까지 배를 곯아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사악한 생각이 정민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언젠가 어머니가 옷장 구석 깊숙이 지갑을 밀어 넣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바로 그거였다.
등에 달라붙은 뱃가죽과 콩닥거리는 가슴을 달래며 옷장으로 향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옷장 속에 손을 넣어 몇 번 뒤적거리자, 어머니의 지갑이 잡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지갑의 똑딱단추를 여니, 몇 장의 지폐와 동전 몇 개가 보였다. 정민은 잠깐 망설이다가 100원짜리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모를 거야. 지폐 한 장이 없어진 것을 어머니가 어떻게 알겠어. 아마 이곳에 지갑이 있는 것도 잊어버렸을걸? 맨날 일하러 나가느라 바쁘니까. 이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어머니 돈을 훔치는 거야. 왜냐하면, 지금 너무 배가 고프고 건빵이 눈에 아른거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김치병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은 어머니 잘못도 있는 거야.
건빵 한 봉지를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그리고 한 봉지를 더 샀다. 이번에는 텅 빈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철봉이 늘어서 있는 가장 외진 곳에 앉아 건빵 한 개 먹고, 별사탕 한 개 먹고, 그러다 목이 막히면 수돗가로 가서 물을 마셨다. 시간이 흐르자 뱃속에 들어간 건빵이 점점 불면서 포만감이 밀려왔다.
아니 밀려온 것은 포만감뿐이 아니었다. 공포와 두려움, 뭔가 해서는 안 될 큰 잘못을 저질렀고 이제부터는 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불룩해진 배를 압도했다. 해가 뉘엿할 무렵, 정민은 청설모처럼 눈알을 굴리며 대문 안을 살폈다. 식구들이 보였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식구들이 마루 끝에 앉아 무언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고 어머니는 그 옆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절대 들키지 않을 거라는 정민의 기대와는 달리, 어머니가 그날 땅콩밭에서 일하고 받은 품삯을 넣어두려고 지갑을 여는 순간 여지없이 들통나고 말았다. 지갑에 돈이 많았으면 모르되 몇 장 되지 않은 지폐 중에서 한 장이 빠진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범인은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특정되었다.
해가 넘어가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지자 형은 정민을 일으켜 세워 옆에 앉혔다. 그리고 이번에도 한참 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또 한 번의 긴 침묵이 지나고 형이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했다.
"지금부터 학교 운동장에 가서 네가 손에 들을 수 있을 만큼 나뭇가지를 꺾는 거야. 그리고 어머니에게 가서 그게 다 부러질 때까지 회초리를 맞는 거야. 알겠지?"
하지만 그날 정민은 회초리를 맞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더는 혼나지 않았다. 다만, 회초리를 한 아름 안고 나타난 정민을 끌어안고 어머니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다. 다친 데는 없는지 정민의 팔다리와 몸 구석구석을 살폈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셨을 것이다. 막내아들이 배가 고파서, 단지 건빵 한 봉지가 먹고 싶었던 것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도시락 반찬으로 소시지 볶음이나 계란프라이를 해주지 못하고 배를 곯게 한 당신을 자책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날 정민의 일탈은 자신에게 지울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다행히 그 바늘 도둑은 소도둑이 되지는 않았다.
나중에 정민이 다시 건빵을 마주한 것은 전방 부대에서 군 생활을 할 때였다. 보급품으로 건빵이 자주 나왔는데, 병사들은 이걸 반합에 넣고 끓여서 죽처럼 먹거나 살짝 데쳐서(?) 말랑말랑해진 상태로 먹었다. 하지만 정민은 '그날' 이후로 다시는 건빵을 먹지 않았다.